오필은 오필리아가 아닌 오버힐의 준말

오후의 정찬

보나베티, 레녹스 군.

 


오늘의 메인 재료라 할 법한 이 고기는 라플라스가 어제쯤에 선물 받은 것이다.

라플라스는 이 고기를 본 순간 손님을 초대해 먹기로 결정했다.

가을을 맞아 잘 자란 감자와 당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스튜에 넣었다. 우유와 생크림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국물에서 야채 향이 더해지자 제법 훌륭한 풍미라고 느껴졌다. 한입 간을 보고 적당히 싱거운 농도에 만족한 라플라스는 요리를 졸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2인분 정도 요리할 수 있어 기쁜 날이었다.

냄비 속에서 미리 볶은 고기는 그렇게 끓는 스튜 속에서 푹 퍼져 나갔다. 함께 식사를 할 만한 이를 머릿속으로 뒤지던 그는 전화번호부가 비즈니스로 형성된 사람밖에 없어 현대 사회 속 관계가 얼마나 척박한지, 약간 탄식했다.

그 중 레녹스가 떠오른 것도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최근 흥미가 생긴 인간. 좋아. 아끼는 스튜를 먹여볼까? 나쁘지 않았다. 라플라스는 내일이 레녹스가 올 날이란 걸 확인하고 그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다.

[와서 점심 식사라도 할래요? 제가 준비할게요.]

우연히 떠오른 즐거운 이벤트를 그가 부디 즐거워하길 바랬다.


라플라스는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였다. 그가 악마인지, 천사인지, 그 어느 것도 아닌 현상일 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레녹스는 그의 연구를 돕는 학부생이었다. 평범하게 군인으로 전직할 생각이었는데 이 기묘한 교수의 ‘연구’에 협력하게 된 것이다.

“어서 와요. 레녹스 군, 가방은 이리 주면 돼요.”

“아, 아니요. 제가 두겠습니다.”

레녹스는 정중히 거절하며 제 가방을 방 한쪽 서랍 위에 올려두었다. 가방엔 크게 무거운 물건이 들지 않았는듯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라플라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에게 테이블 옆 의자를 내어주었다.

레녹스는 이 남성의 호의를 받아들였지만 크게 달갑지만은 않아 그저 묘한 기색을 감추며 내어준 의자에 앉았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죠? 역시 10월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더라고요. 할로윈이 금방 다가올 것 같아서 기분 좋으면서도,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게… 아, 너무 노인 같은 생각이었죠.”

레녹스는 그의 잡다한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조용히 눈동자를 굴려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평소같으면 옷가지와 쓰레기들이 아무데나 나뒹굴고 실험도구들도 대충 놓여있을 연구실이 ‘쓰레기장’이라 할 만한 모양새는 벗어났다. 그는 라플라스가 식사를 준비한다 했을때 이 방에서 식사는 무리지 않을까요, 하고 생각했다.

‘조금 치우신걸까….’

쓰레기 몇 개를 서랍에 쑤셔넣고 옷가지는 옷장에 밀어넣어 치워둔 행색이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 있죠, 스튜 요리를 했거든요.”

“…그러셨군요.”

“어제 좋은 고기가 생겨서 해봤어요. 분명 맛있을 거에요. 크림 스튜는 예전부터 잘 만들었거든요.”

스튜는 실패하기 더 어려운 음식 아닌가. 레녹스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라플라스를 보며 생각했지만 라플라스는 아랑곳 않고 깨끗한 접시 두개에 스튜를 떠 그에게 한 접시 건네었다.

“먹어봐요. 맛있을 거에요.”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라플라스는 스튜를 직접 먹지 않고 레녹스를 쳐다보았다. 레녹스는 그의 푸른 눈 색이 어쩐지 굉장히 ‘불결하다’ 고 느꼈다. 알 수 없는 기분이었으나 그를 볼 때마다 종종 드는 이 기시감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애써 생각하곤 했다. 레녹스는 스튜를 건네 받고 휘휘 저었다.

“무슨 고기인가요?”

라플라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웃었다.

레녹스는 스튜를 떠 한 입 먹으려다 그의 웃음에 묘한 불쾌감을 느껴 스푼으로 스튜를 몇 번 더 휘적거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라플라스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녹스가 미묘한 표정으로 라플라스를 바라보자, 그제서야 그는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며 레녹스에게 물었다.

“무슨 고기일 것 같아요?”

먼저 물은 건 분명 자신인데, 그는 되려 쌩뚱맞은 질문만 해대는 것이었다. 레녹스는 눈만 빙글 굴리며 대답했다.

“저야 모르죠.”

“먹어보면 알 수 있을텐데.”

“…뭔지 모를 고기를 먹고 싶진… 않아서요.”

“아하. 저를 신뢰하지 않으시는건가요?”

“신뢰 이전의 문제입니다.”

“가족이 건네준 스튜는 쉽게 먹었을 거면서…”

라플라스는 크림스튜를 한 스푼 떠 입에 넣었다. 그는 소리 없이 감자를 입에서 씹고 삼켰다. 부드러운 식감이 수프에 녹아들어 입에 기분 좋게 퍼졌다. 역시 잘 만든 음식이었다.

“오늘 연구실에 있어야할 실험체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하하. 글쎄요. 제가 실수로 할당량을 못 받은 모양이죠.”

라플라스는 그리 대답하고 한 입 더 떠 입에 넣었다. 그의 입에서 다시 식사가 소화되어간다. 레녹스는 그 모습을 보며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에 시선을 피했다.

“이 고기가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돌려묻지 않는군요.”

“그건 교수님의 특기지 제 특기가 아니잖아요.”

레녹스의 대답에 라플라스는 말갛게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대답이라도 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입 안에 크림 스튜를 한 입 더 밀어넣었다. 어느새 그의 접시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스튜가 차게 식었네. 다시 데워줄까요?”

“대답하세요.”

“음… 무슨 대답을 원해요?”

“내가 원하는 답 말고, 진짜 성분을 묻는겁니다.”

“먹어서 맞춰보라니까.”

라플라스는 아쉽다는 듯 바닥까지 보인 스튜를 잘 긁어 입에 넣었다. 그는 레녹스의 올리브색 눈을 힐끔 본다. 한마디만 더 했다간 터지겠군…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 고기는…”


레녹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에서 몇 번 구토했다. 속이 계속 부대꼈다. 영 좋지 않았다.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여진 것마냥 괴로웠다.

분명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무언가 잔뜩 먹은것처럼 거북했다.

‘양고기랍니다. 순결한 양고기! 뭐라고 생각했어요? 하하.’

라플라스는 웃었다. 레녹스는 무심코 그의 입 속이 까맣다고 착각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 이미 고깃덩이인데, 뭘 무서워하는거에요?’

맞는 말이었지만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란 건 당신도 알고 있을거잖아요, 라는 말이 목끝까지 새어올라왔다.

하지만 라플라스는 여전히 가벼운 투였기에 레녹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마 이게 정말 사람 고기면, 그게 또 어때서…’

장난이에요, 장난. 그의 목소리가 불쾌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레녹스는 힘이 풀린 다리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이 교수의 연구 결과가 꼭 성공하길 기도해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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