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마후]첫눈

카미시로 루이×아사히나 마후유

프세카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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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컾해석○

*아래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https://pnxl.me/b0cqn1


지금은 멀게 느껴지는 1학년의 어느 날, 비슷하게 흘러간다 느껴지던 일상 사이에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었다.

*

오랜만에 기계들을 데리고 쇼를 하러 나왔다. 하루 종일 맑을 것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흐린 하늘만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빛이 내려앉은 길거리에 그와 같은 표정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이야말로 천재 연출가가 활약할 때이다.

도구 케이스의 잠금을 풀고 안쪽을 들여다보면 정갈하게 들어있는 기계 배우들이 보인다. 너희도 세상에 나오고 싶었겠지. 하나씩 꺼내 정해진 위치에 내려놓으면 행인들의 시선이 서서히 모여든다. 조정을 마치고 고개를 들자 보이는 관객들 사이엔 호기심이 퍼지고 있었다. 나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쇼의 시작을 알렸다.

전선과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배우들은 나의 지시에 따라 걸어가고 뛰었으며 춤을 춘다. 관객의 반응을 의식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드론에 매달린 인형이 흔들리면 관객의 시선은 저절로 인형을 향한다. 반대편에서 소리를 내면 또다시 시선이 옮겨간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쇼에 저절로 웃음이 그려진다.

쇼의 중반부에 가까워질쯤 내 시선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신기해하거나 혹은 즐거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 그 얼굴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분명히 비가 세차게 내리던 그날, 진한 보랏빛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빗속의 유일한 관객이었었다. 지켜봐 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내가 유일한 관객으로 존재함으로써 쇼는 멈추면 안 된다. 멈추면 영영 끝나버릴 것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삐걱거리며 이어가던 연극을 끝까지 지켜봐 준 사람을 잊을 리가 없었다.

그는 빗속에 멈춰서 나를 지켜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끝에 가서야 그를 발견했기에 어디부터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우산을 놓친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집중해서 쇼를 봐주었다. 순간 빗살 사이로 그와 눈이 마주쳤었다. 인사를 하려고 했을 때 이미 그는 사라져 버린 뒤였다. 그럴 리 없지만 순간 귀신을 본 게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계속해 쇼를 진행하던 와중에도 그에게 계속 신경이 쏠렸다. 왜 나의 쇼를 보면서도 그런 표정을 짓는지 궁금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관객의 반응을 끌어내려 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미동조차 없었다.

어느덧 절정을 향해 가는 쇼에 마지막까지 집중하려던 차 볼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하늘을 바라보자 먼지처럼 작게 떨어지는 눈송이가 보인다. 첫눈이었다.

즐거운 감정에 설렘이 더해져 객석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꽤 괜찮은 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그 또한 하늘을 보고 있었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사이 순식간에 끝나버린 쇼였다.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박수를 치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람들 사이로 흔들리는 보라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뒤돌아 걸어가는 그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어떤 얼굴인지 예상이 갔다. 결국 저 한 사람의 웃음은 만들어내지 못한 거구나.

관객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홀로 정리를 하다가 문득 그가 첫눈 같다는 생각을했다. 미미한 양인 탓에 곧 녹아서 사라져 버리는 눈. 잠시 잊고 있다가도 다시 만났을 때 강한 인상을 주는 그런 첫눈 같은 사람이라고. 언젠가는 기억 저편으로 가버릴 테지만 지금만큼은 똑똑히 기억해 두고 싶었다. 그가 웃지 못한 건 내가 아직 부족한 탓일 테니 나는 그의 감정을 움직일, 더 나아가 세상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겨줄 쇼를 해내야 했다. 그러고 싶었다.

들고 온 짐을 들고일어났다. 도구 케이스에 묻은 눈을 손으로 털어냈다. 올려다본 하늘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엔 오늘의 하늘이 맑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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