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날들 2차 창작

이게 어딜 감히

갑자기 일일드라마 남주 된 필이 물벼락 맞음(1800자)

수납고 by 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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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하루였다. 아무 사건 사고 없이 심지어 의뢰를 처리하느라 필도 없는 여유롭고 조용한 하루를 보내던 멸은 빠삐용을 데리고 산책을 할 겸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맛있게 먹는 중이었다. 왠지 거리의 얼마 없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카페에 쏠려 있는 걸 느낀 멸은 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나른한 오후에 주변 거리를 구경하며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을 만한 세련된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 누군가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물론 카페의 모든 이들이 그들을 힐끔거리거나 아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이미 깊게 빠져있는 모양이었다. 점점 커지는 목소리에 멸도 그들을 자연스레 집중해 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야외 테이블이라지만 소리를 질러도 되나, 조금 민폐 아닌 … 아니 … 저거 … 소장님 아냐?!

착각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한 여성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테이블의 맞은 편에는 분명 멸이 잘 알고 있는 미남의 옆모습이 보였다. 미남, 아니 필은 바로 앞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의 멸에게까지 들릴 정도의 성량으로 필에게 고함을 치고 있는 여성을 태연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는 꽤 노골적인 지루함까지 보였다. 세상에… 상사가 이런 일의 주인공이라니. 무슨 일이지? 심각한 일인가? 의뢰를 처리하러 간다더니, 잘 안되고 있는 건가? 멸이 살짝 거리를 좁히며 조심히 카페로 접근하던 그 순간, 필의 맞은편 여성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앞에 놓여있던 잔의 물을 그대로 필에게 뿌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수군대던 카페 사람들 모두가 숨을 참았고, 멸은 그 자리에 멈춰 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필은 물을 맞은 자세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연한 색의 머리카락이 젖어 형태와 명암을 눈에 띄게 드러냈고, 앞머리가 앞으로 살짝 처져 물방울이 맺힌 이마와 속눈썹을 가렸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똑똑 떨어져 콧등을 타고 코끝에 맺혀 천천히 떨어졌다. 이윽고 필이 눈을 뜨자 짙은 속눈썹에 맺힌 물이 떨어져 뺨을 주르륵 타고 내려왔다. 촉촉해진 적갈색 눈동자가 그 사이에서 조용히 상대방을 응시했다. 어떻게 물을 뿌렸는지 상반신 전체가 흠뻑 젖은 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에게 다가갔고, 그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이는 듯했다. 여자는 그 말을 듣자마자 움찔하더니 그 자리에 굳어버렸고, 필은 그런 여자와 잠시 눈을 맞추다가 곧 자리를 떴다. 그리곤 곧장 멸의 방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놀라있던 멸은 다가오는 필을 보고 더 깜짝 놀라 필에게 무언가 들은 여자처럼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필이 성큼성큼 다가와 아이스크림을 든 손을 똑바로 붙잡아 줄 때 까지 멍하니 필의 얼굴을 쳐다봤다.

“야, 아이스크림 떨어진다.”

“…소, 소, 소장님?! 무슨, 아니, 괜찮으세요? 이게 무슨 일이에요?! 말씀하신 의뢰가 이거였어요?”

“그래, 그래. 아이스크림 똑바로 잡고, 옳지. 별일 아니야. 의뢰 끝내고 뒷정리를 하려는데, 관련인이 굳이 나를 봐야겠다고 해서 말이야. 나 참, 기껏 만나줬더니 자기 분을 못 이겨서 물이나 뿌리고. 같이 정리해주려다가 참고 살짝 경고만 해주고 왔어. 잘했지?”

“같이 정리해준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사람을 정리하면 안되죠! 그나저나 소장님, 정말 괜찮으세요? 옷 갈아입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근처에서 수건이나 휴지라도 구해서…”

“근처에 차 대놨어. 차에 휴지 있으니까 일단 쓰고 사무소 가서 씻으면 돼. 정리를 하진 않았잖아. 나 참았다니까? 아무것도 안 했다고.”

“…일단 물벼락을 맞고서 말로 ‘경고’만 한 건 잘 참으셨네요. 잘 참으셨어요. …나중에 다시 찾아가도 상해를 입히면 안 돼요. 대신 세탁비 청구하고 사과 안 하면 고소해버린다고 해요.”

“내가 알아서 처리하는 게 더 빠를 텐데. 아, 그렇게 보지 마라. 안 한다,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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