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1948.10.31
BGM : 風のゆくえ
사랑하는 부모님께.
전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랑 아버지도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할아버지는 어제도 낚시를 가셨는데 오늘도 낚시하러 가셨어요. 지금 이 편지를 쓰려고 깃펜을 찾고 있으니까 낚싯대를 들곤 “다녀오마~!!! 할아버지가! 어이?! 이따 시만 한 물고기를 낚아서 올 테니까는! 카다이프랑 집 지키고 있어이잇! 누가 오거든 문 함부로 열어주지 말고 옆집 찰스영감탱이 오거들랑 나 호수갔다고 혀. 아니다 호수 말고 뒷집에 체스 두러 갔다고 해라 내 퍼뜩 다녀오그마!” 하고 가셨어요. 오늘은 또 어떤 … 새로운 ‘맛’ 없음이 식탁에 올라올지 기대가 되네요. 거긴 오늘 저녁 식사 당번이 누구일 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카다이프는 자신이 동물이라 이걸 안 먹는단 사실에 만족하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할아버지가 만든 스튜를 먹겠다고 얼굴을 그릇에 들이밀었거든요. 그냥 뒀어요. … 결과야 뻔하죠. 부엉이가 그렇게 처절하게 울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이후에 말린 지네를 챙겨줬는데 그 이후로 테이블에 얼씬도 않더라고요.
보내주신 편지는 잘 읽었어요. 콜레이랑 오스카가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요. 걔들은 어딜 가도 잘 지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종종 생각이 나곤 하더라고요. 함께 축구도 하고 도서관 청소를 하던 때가 떠올라요. 이제 마을에 알고 지내던 친구가 한 명도 남지 않았단 사실이 때때로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든든해요. 다들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갔다는 이야기니까요. 걔들은 제가 몰타에 있는 줄 모르겠지만… 나중에 시간나면 따로 둘에게도 편지를 보내야겠어요. 그러고보니 호그와트에서 지냈던 때의 이야기를 두 분에게 상세히 이야기한 적이 없었네요.
후플푸프 기숙사의 친구들과는 그럭저럭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냈어요. 반장인 애나 로런스는 … 신기한 친구라고 생각해요. 모르데카이 모워리라는 래번클로의 친구와 함께 어거레이 깃펜이라는 토론회 활동을 했거든요.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혈통 차별이 옳지 않음을 이야기했고 이를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토론회 활동을 지속했어요.—하지만 추후 토론회 활동이 중지되었지만 말이죠.— 제가 조금 더 현명하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때때로 생각해요. 하지만 시간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저는 둘과 함께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나중에 떠오르는 생각은 바보의 생각이다’ 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 저는 그저 둘을 응원해 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두 친구가 학교를 떠난 지금도 여전하기를, 그리고 무탈하기를요.
올리비아 그린이라는 친구는 처음 만났을 땐 이것저것 실수를 자주 했어요. 소심하고, 자주 말을 더듬던 그 친구가 졸업할 때 하던 얘기가 떠올라요. 제 의도가 궁금하다고 했어요. 공감할 순 없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요. 여전히 비정한 마법 사회에서 그 친구가 잘 지내길 바라고 있어요. 이런 저는 역시 이기적인 걸까요? 아니면 그냥 무른 걸까요.
오로라 브래드쇼라는 친구는 드루실라 헤인즈가 죽고, 호그와트에 잠시간의 평화가 찾아왔을 때 … 그 일을 독이 아니라 씨앗이라고 얘기했어요. 정확히는 ‘평화의 씨앗’이라고 했거든요. 새로 입학한 호그와트의 신입생은 과연 브래드쇼가 이야기했던 대로 평화가 무엇인지 느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브래드쇼, 그 친구가 확신을 가지고 내딛는 길이 밝길 바라요. 나중에 대학교 합격하면 그 친구에겐 편지를 보낼까 해요. 같이 바다에 가자는 말을 들었는데 아직 지키지 못했거든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면 가자고 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모두가 평화를 바라면 그것만큼 다정한 세상이 있을까요. 마법이 초월적 존재의 기적이라고 하던 친구가 있어요. 에드윈 J. 리 라는 친구인데 같은 기숙사 친구여서 기억이 나요. 십자가 목걸이를 늘 걸고 다녀서 사실 눈길이 갔거든요. 그 친구는 딱 선을 밟고 있어요. 모두가 하나를 고를 때 중앙에 서 있었거든요. 저와 비슷한 이유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원하는 바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 그 친구는 이제 둘 중 하나를 골랐을까요. 아니면 다시 그 선 위에서 양쪽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이전엔 저와 같이 차별이 옳지 않음을 이야기했던 친구가 있어요. 라기니 S. 아벨라는 저만큼이나 많이 변한 친구거든요. 제가 마법 사회에 진절머리가 나서 체념한 쪽에 가깝다면 아벨라는 순응하기로 한 것 같아요. 제가 매일 졸업을 기다리는 동안 이 친구는 자신이 아닌 … 타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요. 이 친구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졸업할 때 포기해 버렸어요.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좋아하는 것이 생겼길 바라고 있어요. 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행복을 찾았길.
에이드리언 밀러라고 학기 초엔 항상 다른 친구나 선배가 저와 헷갈려 하던 친구가 있어요. 저는 쨍한 붉은 머리카락이고 그 친구는 조금 밝은 갈색 머리인데도 말이죠. 졸업을 앞두고 저는 이 학우를 보고만 있었어요. 멈춘 채 보고 있으면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아드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지만 밀러는 특히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 친구라 기억나요. …그 웃고 있는 얼굴은 자신에게 확신이 있어서 나올 수 있다고. 이제 와 새삼 알게 되었지만요.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랭거스 티이와 절 찍어주었던 때가 떠올라요. 행복했던 순간을 찍어주었던 만큼 또 다른 곳에서 다른 ‘행복한 순간’을 찍고 있겠죠?
털 짐승을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요.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교수만 존경하고 성취욕이 높았던 친구는 과연 ‘슬리데린’ 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는데 그게 걱정되곤 했어요. 졸업하기 전 학교는 혈통 우월주의를 옹호했는데 이 친구는 기꺼이 분노했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그 분위기를 옹호했던 건 아니지만 그냥 지쳐있었어요. ‘화’를 내는 것도 힘이 소모된다는 걸 전 너무 뒤늦게 깨달았거든요. 제 모든 게 연소하였을 때도 에녹 리히텐다르는 여전하더라고요. 지금은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말이죠. 온건함이 해결책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 폭력의 효용성을 배운 친구가 … 저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크리스탈 윈터스 스노우. 슬리데린의 반장인데 얘를 보고 있으면 제가 슬리데린이 아닌 후플푸프에 들어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는 친구라서요. 졸업 직전에 걔한테 고백한 게 있어요. 전 사실 혈통 우월주의에 편승하는 사람을 싫어하는데 스노우가 그랬거든요. 네가 싫은데, 친구라서 또 온전히 미워할 수 없다고 얘기했어요. 저보고 미련 넘치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별 수 있나 싶어요. 영원히 손해 보고 사는 게 저일지 아니면 걔 일지. 아직 모르겠어요. 내기를 했거든요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유지된다면 누가 더 손해인지. 저는 … 제가 이길 거라 확신해요. 걔가 살고 있는 사회가 온전히 무너져 내렸으면 하니까요. 그렇다고 걔가 불행해지는 건 또 바라지 않고 … 어렵네요. 친구가 불행하길 바라는데 동시에 불행하지 않았으면 해요. 모쪼록 그 친구가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님을 그 친구가 알았으면 싶기도 하고.
로벨리아 힐은 슬리데린이 아니면 어느 기숙사에 들어갔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큰 야망을 가진 친구라 기억해요. 자신만의 사업을 구상 중인데 순수혈통이 아닌 혼혈 태생이거든요. ‘보험’을 들거나 위험한 선택지를 줄이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던 걸 기억하는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모르겠어요. 전 사실 얘가 퀴디치 선수를 노릴 줄 알았어요. 종종 빗자루를 타고 거꾸로 날기도 하고 퀴디치 경기는 꼭 챙겨보는 친구였으니까요. 근데 퀴디치 팀의 제안도 거절한 그 친구는 지금 원하는 걸 하고 있을까요? 혈통의 불리함을 상쇄할 만큼의 계획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뤘을지 궁금해요.
테일러 Y. 로한이란 친구가 있는데 놀라지 마세요. 전 사실 얘 이름을 2학년 때까지 테일러 Y. 요한으로 잘못 외우고 있었거든요. 당사자는 몰라요, 어쩌다 제가 잘못 외우고 있단 걸 깨닫고 정말 식은땀 많이 흘렸단 말이죠. 소심한 줄 알았던 이 친구는 이제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아가고 있어요. 그게 신기해요. 전 멈춘 채로 나아가는 친구를 보고만 있으니까 오히려 눈에 잘 들어오는 게 있어요. 각자 얼마나 노력하는지 보여요. 이 친구도 분명 많은 노력으로 한 걸음씩 딛고 있는 거겠죠. 물론 놀리는 재미가 있어서 졸업할 때까지 모르는 척 놀리긴 했지만 말이죠. 이 친구에겐 1학년 때 어떤 야망이 생길지 궁금하다고 했는데, 이젠 알 것 같아요.
두 분은 좋아했던 사람을 싫어하게 된 기억이 있나요? 저는 딱 두 명이 그러해요. 한 명의 이름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어보셨을 지도 모르겠어요. 네프 ‘폴렌느’거든요. 네, 그 ‘폴렌느’랍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이름은 다니엘 에버하트라고 해요. 둘 다 1학년 아니 4학년 때까지 제법 좋은 친구였거든요. 그런데 혈통 우월주의가 마법사 사회 전반에 깔리자 행실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지. 나름 아끼던 친구들이라 변모하는 모습이 달갑지 않았어요. 입에 모래가 굴러다니는 기분이었거든요. 폴렌느는 자신이 가진 권위, 권력, 권세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까요? 에버하트는 어째서 타인을 돕고 약자를 보호하며 사회의 울타리를 지탱하는지 궁금해할까요? 왜 사람은 악하지 않고 선의를 베풀며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이 두 사람은 모르는 것 같아요. 인간 본연의 천성이 악하지 않다면, 어째서 이 둘은 배운 적 없는 악의를 가지게 된 걸까요.
아델라이데 R. 몰포란 친구는 일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지 아닐 지를 계산하는 친구였어요. 본인에게 주어진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았고, 에버하트나 폴렌느와는 다른 의미로 그걸 쥐고 흔들 줄 알았죠. 혼혈이나 머글태생의 친구들은 천칭에 무얼 올릴 수도 없을 때, 이 친구는 올릴 힘이 있었어요. 네, 맞아요. 저랑 함께 계율부 활동을 했거든요. 손해가 없는 행동이라면 그것이 윤리를 져버린다고 해도 기꺼이 ‘옳음’으로 추를 기울이는 친구죠. 젤리를 싫어하는 이 친구는 졸업하고 미국으로 간다고 들었어요. 아마 지금 시기라면 미국에 가야 하는 일이 끝났을 것 같은데 … 다음 행선지가 어디이건, 무엇을 바라든 … 무탈하기를 바라요. 이 친구의 생각에 동의하진 않지만, 제가 지팡이를 내려놓을 때 이 친구가 기꺼이 주문을 외웠거든요. 결심의 순간에 나아가길 선택한 친구가 이후엔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요.
이 친구만큼 절 난감하게 하는 친구도 몇 없었다고 때때로 생각해요. 저 사실 4학년 땐 여러모로 교우 관계나 평판이 좋지 않았어요. 혈통 차별적 발언을 하는 자리엔 제가 늘 끼어 있었거든요. 무력을 사용했고, 다른 친구를 상처 입히는 것은 익숙하다 여겼어요. 그러다 … 지쳐서, 자리에 멈춘 채로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어요. 계율부에 들어가서, 그저 졸업만 앞두고 있을 때 발레리안 H. 헨슬리가 ‘재’밖에 없는 저에게 불씨를 열심히 튀겼는데 전 그걸 보고만 있었어요. 동생을 위해 마법사 사회에 남겠다고 하는 그 친구를 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때는 아직 드루실라 헤인즈가 살아있을 때였고 … 마법사 사회 전반이 순수혈통을 더 우월하다 여겼잖아요? 호그와트도 마찬가지였어요. 계율부가 있었고, 교장이 아 그러니까 교장의 탈을 쓴 드루실라 헤인즈가 이런 차별적인 분위기를 호그와트에 더 짙게 만들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마법사 사회에 진절머리가 나 있었는데 헨슬리는 여기에 남겠다고 했어요. 이 사회에서 자신의 동생이 있을 곳을 만들려는 그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 같아요. 이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요. 졸업할 때 동생의 나이가… 3살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동생과 함께 있겠죠? … 그냥 두 사람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누구의 모진 말도 듣지 않고 … 그저 일상을 살았으면 해요. 이젠 마법사 사회에서 살겠다고 하는 헨슬리가 아니꼽지 않아요. 그저… 얼마나 그 친구가 주변을 경계해야만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언제나 애매모호한 태도로 여상히 웃던 친구가 있어요. 로즈 F. 애덤스, 저랑 같이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오는 친구랍니다. 학기 초엔 밀러와 함께 친구들이 헷갈려하더라고요. 그래서 1학년 때 나온 제 별명이 있어요. 로즈 에이드리언 쉘던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이게 무슨 조합의 이름이지 싶네요. 애덤스는 모두에게 인기가 많지만 동시에 저와는 다른 의미로 ‘부탁’에 예민한 친구였어요. 제가 모든 이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 애덤스는 자신의 평화가 깨지지 않을 부탁만 선별해서 받아주는 친구였거든요. 마지막 순간 외면하지 않고 찰나의 희망을 거머쥐기 위해 주문을 외치던 애덤스가 기억나요.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할까요?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떠나겠다고 한 친구가 있어요. 이전엔 저와 비슷한 방법으로 무력을 믿던 친구인데 … 이름이 유수프 사빌이라고 해요. 전 언제나 떠들썩하고 소란스러운 곳을 좋아하지만 때때로 생각이 많아지면 종종 사빌에게 알려주었던 검은 호수 근처에 가곤 해요. 제가 생각에 침수되어서 멈춘 쪽이라면 이 친구는 어디로 나아갈지 고민하는 것 같았어요. 어디에 머물러야 할 지 어디에 머물러도 괜찮은 건지. 최선이자 최대를 선택한 이 친구의 여정은 어디로 이어질까요. 헤어지기 전에 꽃을 선물로 줬어요. 보라색 안개꽃의 꽃말은 기쁨과 우정이라고 했는데 모쪼록 … 서투른 이 친구가 여정의 끝에서 원하는 것을 찾길.
언제나 정직한 태도를 고수하던 친구가 기억나네요. 저와 비슷하단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굳건한 신념은 흔들릴 기세가 보이지 않았고… 아 한 가지 다른 점은 제게 없던 차분함이 이 친구에겐 있다는 거겠네요. 이름은 미아 N. 펜더가스트, 래번클로의 반장이고 서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거든요. 결국 마지막에 … 일을 잘 마무리해서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졸업했어요. 비록 끝에 ‘사건’이 있긴 했지만요. 아버지의 흔적을 찾겠다고 했던 친구가 모쪼록 단서를 얻었길 바라요. 추위를 잘 타는 친구라 … 언제나 돌고 도는 겨울이 매섭지 않고 조금은 포근하길.
휘둘리고 휩쓸리는 친구가 자신만의 선택을 하길 바랐어요. 이렌 헤레미아스, 좋아하는 것을 잘 드러내지 않던 친구가 언제 마지막으로 웃었는지 기억도 안 나거든요. 종종 호그와트의 주방을 털어서 함께 간식을 먹거나 초콜릿 잼을 탄 우유를 마시곤 했는데… 그 시간이 가장 마음 편했던 것 같아요. 수업 시간이나 복도에서 사람을 마주하는 시간은 사방에 가시가 돋쳐있는 것처럼 따갑기만 했거든요. 어쩌다 이렌이 아닌 ‘헤레미아스’로 불렀을 땐 사실 좀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불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텐데… 거리를 두고 싶었거든요. 그 친구가 나아가던 모습이 아직 떠올라요. 비록 그 선택이 모두를 위한 선택이 아닐지언정 후회 없을 ‘선택’을 하던 그 친구를 기억해요. 지금도.
잠깐의 평화임을 알지만 … 머글 사회로 돌아가지 못해 마법사 사회를 택한 친구가 있어요. 레이몬드 N. 홀든이란 친구가 그런 상황이었어요. 안심하지 못하고… 긴장감을 안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고 있어서 안타까웠어요. 드루실라 헤인즈가 죽었지만 그 평화가 닿은 곳이라곤 호그와트 뿐이었으니까요. 아직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홀든은, 제 친구 ‘라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자신이 옳다 생각한 길을 선택하고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어 ‘미래’를 외친 제 친구가 … 오늘 그리고 내일. 안심하며 지낼 수 있기를, 잠드는 순간에도 찰나의 걱정조차 스미지 않기를.
진리를 추구하고 지혜를 탐하며 앎을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자칼렉 에크하르트는 전형적인 래번클로의 면모를 보여주는 친구거든요. 사실 ‘친구’라는 단어로 호칭하는 것도 이젠 제 일방적인 주장일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에 보았던 그 친구의 눈이 떠올라요. 같은 개체가 아닌 ‘사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던 그 시선이요. ‘오늘’이 반복되지 않지만 지금과 비슷한 순간은 언제고 찾아온다던 말도 떠오르네요. 그 친구는 또 비슷한 상황이 도래해도… 같은 선택을 하겠죠. 그렇다면 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오늘’이 지나가면 또 같은 ‘오늘’은 오지 않아요. ‘오늘’이었던 과거가 무수히 쌓이겠죠. 새로운 내일, 그러나 비슷한 선택을 종용받을 때… 저는… 친구들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까 해요. 나아가는 방향은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이제 멈추지 않으려고 해요. 에크하르트도 마찬가지겠죠. 망설임 없이 지팡이를 휘둘러 행동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이 친구는 앞으로도 망설이지 않을 것 같아요. 의심할 여지가 없고 멈출 이유도 없으니까요. 이후엔 친구라는 호칭보다 타인에 더 가까워질 것 같지만 그런데도… 이 친구가 향하는 길이 무탈하길 바라고 있어요.
제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느냐 물어본 친구가 있어요. 첫인상은 고지식한 친구였던 것 같아요. 이름은 시에라 P. 델핀. 미들네임은 ‘펄시’라고 하는데 진주에서 따온 거라고 들었어요. 검은 진주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친구와 열차에서 처음 만나 ‘이름’으로 대화했던 때가 기억나요. 저는 할아버지가 왜 제 이름을 ‘아크’로 지어주셨는지를 말해줬거든요. 지금은 알아요. 제 이름이 왜 아크이고 부모님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포기하기를 선택했는지 알아요. 델핀은 저와 ‘같은’ 선택을 했어요. 지팡이를 내리고 주문을 외우지 않았어요. 그저 그 장면을 함께 목도했어요. 제가 신념으로 선택한 것처럼 델핀도 마땅히 선택한 것이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델핀은 왜 주문을 외우지 않았을까요. 저는 왜 더… 델핀을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너무 일찍 지쳤던 것 같아서, 멈춘 채로 더 알려고 나아가지 않았던 때를 후회하곤 해요. 이제는 물을 수 없는 질문만 안고 델핀을 추억하고 있거든요.
그 친구의 ‘진심’을 아는 친구가 있을까요. 그 친구의 ‘진의’를 아는 친구가 있을까요. 그 친구가 진정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호수에 비친 건 저뿐이었고… 그 친구와의 대화는 언제나 ‘반향’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자신의 본뜻은 철저히 감춘 친구… 이름은 포토시 버로우라고 해요. 1학년 때부터 제가 졸업하던 때까지 한결같지만 한결같지 않고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친구였어요. 손익을 따지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던 친구의 본심을 졸업할 때까지 알 수 없었던 게 내심 마음에 걸려요. 마침 오늘이 그 친구의 생일이거든요. 모쪼록 기쁜 하루를 보내고 있길.
저에게 ‘포기’한 사람 같다고 얘기한 친구가 있어요. 랭거스 티이, 어머니는 아마 기억하고 계실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어머니가 신발을 만들어주었던 그 친구랍니다. ‘몽총이’라는 부엉이와 함께 지내는 친구이고 그리핀도르다운 친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저는 여전해요. 여전히… 사람들이 내일을 꿈꾸고 희망하며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고 있어요. 일찍이 부모님이 제게 얘기해주신 것처럼 사회의 울타리가 약자를 감싸고 공정하며 공평하되 노력의 됨됨이를 인정해 주길 바라거든요. 그 친구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이렇게 외쳤던 것 같아요. ‘이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에요’라고. 저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그게 저의 ‘최선’이었으니까요. 티이가 최선을 택한 만큼 호그와트는 평화를 찾았어요. 일시적인 평화일지 길고 긴 평화일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사실만 두고 본다면 ‘최선’이 통한 거겠죠. 티이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하러 갈까요? 또 다른 최선을 찾으러 걸음 했을지 궁금하네요. 사실 티이가 데리고 다니는 크고 복슬복슬하며 귀여운 ‘몽총이’도 궁금하고요. 설산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나아가는 여정에 후회 없기를.
사람은 어떤 것을 두고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사람을 선하다고 판정하고 판별하며 판단할 수 있게 할까요? 대체 무엇이 사람을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까요. 루크 체임버스를 보면 늘 생각하고 말아요. 무엇이 저 친구를 나아가게 하고 망설이지 않게 하며 도전할 용기를 주는지요. 무심한 외침에 결심이 담겨있고, 망설임 없는 나아감이 훗날의 후배들에게 평화를 선사했어요. 포기를 모르는 수색꾼은 이제 어딜 향해 날아갈까요.
제가 가만히 서서 모두의 등을 보고 있을 때, 마찬가지로 함께 멈춘 채 친구를 지켜보던 이가 있었어요. 변덕스럽긴 해도 신념이 휘어지지 않는 그 친구가 사회의 통념을 져버리는 선택을 했을 때. 편한 길이 있음에도 멈춘 채 쉽지 않은 길을 고르는 걸 보았을 때. 저는 처음으로 그 친구가 궁금해졌어요. 줄리엣 S. 메이딜란드의 어떤 신념이 그걸 선택하게 만든 걸까요? 모든 혈통을 포용하고자 한 의지는 어디에서 퍼지기 시작한걸까요. 함께 멈춘 채로 있을 줄 알았던 메이딜란드는 저와 달리 지팡이를 들었어요. 그 꼿꼿했던 지팡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기억나요. 조금 더 일찍, 저와 같은 뜻을 가진 이가 학교에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저는 그때 다른 선택을 했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전 메이딜란드와 달리 일찍 지쳐서, 더 이상 타인을 설득하고자 할 여력이 없었거든요. 만약 과거로 돌아갔다고 해도 저는 분명….
렉스 H. 카르웨난은 조금 독특한 친구였어요. 이전엔 함께 모험하길 좋아했는데 졸업 전에는 조금 어색했거든요. 머글사회에서의 귀족이란 신분, 마법 사회에서의 순수혈통 마법사라는 신분. 양쪽의 신분 모두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했던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지금의 마법사 사회에서 카르웨난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어쩌면 선택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마법사도 귀족도 모두 본인의 정체성이라면 작금의 상황을 답답해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모험을 좋아하던 친구라 이후 어떤 길을 걸을 진 개인적으로 궁금해요.
아민 마데라, 프롬 때 네프 폴렌느와 제법 즐거운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어요. 유령들이 둘의 신청곡 때문에 바쁘게 연주했거든요. 한쪽은 클래식 다른 쪽은 재즈. 번갈아 가며 들리는 노래가 퍽 즐거웠어요. 참고로 전 마데라의 먼지 인형을 호그스미드 때 뽑아서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몰타에 가져오진 못했는데 제 방 서랍에 있을 거니까 이 편지를 읽는다면 한 번 찾아보세요. 무척 귀엽답니다. 마데라는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한결같았는데 아마 제가 이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재즈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고 보니 클레멘타인 바렌츠, 아마 제가 편지에 쓰는 이 친구를 부모님은 벌써 만나셨지 싶어요. 제 친한 친구이니 모쪼록 잘 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당부하지 않더라도 두 분이 잘 해주실 것을 알지만요. 보기와 다르게 바렌츠는 확고해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도록, 잘못되지 않도록 그리고 엇나가지 않게 신중히 몇 번이고 되뇐 뒤 주문을 외웠거든요. 마법이라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저는 바렌츠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무엇을 하더라도 즐거웠으면 하거든요. 그리고… 언제든 돌아갈 집이 생기기를,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따뜻한 밤이 무수히 찾아가길.
사지 멀쩡하게 사고 없이 졸업한다는 사실 때문에 너그러워졌던 친구가 있어요. 엘피다 R. 젠킨스라고 하는 친구인데… 그 말은 아쉽게도 마무리가 좋지 못했죠. 모든 게 잘 끝날 것 같던 졸업식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마 아버지는 예언자 일보를 통해 이미 접하셨을 것 같네요. 졸업 후엔 가문 사람들처럼 그림을 그리며 살 거라고 들었어요. 이 편지를 보내는 지금, 젠킨스는 꿈을 이루었을까요? 동생과 보통의 날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보내고 있을까요. 제가 마법사 사회에 발 들이지 않는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아요. 카다이프가 무거운 몸으로 열심히 예언자 일보를 배달해 주거든요. 새로운 총리가 결국 ‘죽음을 먹는 자’ 소속임을 밝혔다고 들었어요. 모쪼록 젠킨스에게 피해가 없기를 바라요. 그 친구가… 최선의 판단이라 생각하며 휘둘렀던 주문이 효용 있었기를.
호그와트에선 이런 친구들과 함께 지냈어요. 그리고 최근, 제가 지금의 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던 분의 연락을 받았어요.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했던 사람을 전 기억해요. 모두의 질타를 받고 사회의 포용을 받지 못한, 지은 죄 이상의 무게를 짊어졌던 사람이요. 하지만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그 사람이 새로운 선택을 했어요. 사빌이 이전에 이런 얘기를 했어요. 역사는 반복된다고요. 그렇다면 다음 장에 무엇이 적힐 지 저는 알 것 같아요. 이 굴레는 언제 끝이 날까요. 끝이 존재하긴 할까요, 모두가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며 포용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텅 비어있던 제 상자는 이제 사람이 가득해요. 어제 만났던 이웃 아주 오래전 스쳤던 호그와트의 친구. 그리고 내일이 되면 또 새로 만나게 될 사람으로 가득하겠죠. 멈춘 걸음을 다시 재개할까 싶어요. 언제까지 친구의 등을 보고 있을 순 없으니까요. 머지않은 시일에 시험을 치러 영국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대학교에 들어가면 아마 아주 오랫동안 얼굴 보기 힘들 것 같지만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라고 있어요. 할아버지께 안부 전해드릴게요. 아, 쓰고 있는데 마침 오셨네요. 물고기를 낚아오시겠다더니 갑자기 사과를 잔뜩 들고 오셨어요. “이 할아버지가~ 우리 손자에게 사과 스튜라는 걸 끓여줄게잉, 젊은 아가들은 요거 요거 맛있는 거를 못 먹고 이상한 정어리 파이 같은 거만 먹고 말이야. 내가 소싯적에는 이 사과 스튜를 억수로 잘 끓여서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했그만. 요즘은 인스턴트? 에잉, 영 파이다 파여.” 라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도와드리러 가야겠어요. 언제나 내일을 희망하며, 따뜻한 밤이 되길.
추신, 할아버지의 요리 실력은 왜 항상 그대로일까요?
아크 쉘던 드림.
*퇴고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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