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承花] 피어나는 마음
21.10.23 작업 완료
※공백미포함 4,644자.
※2021.10.23 작업 완료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의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이라 서술 방식이나 흐름이 불친절합니다.
피어나는 마음
1.
“들떴나? 카쿄인.”
“무슨 말이야? 죠죠.”
“내 이름을 부르면서까지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아.”
카쿄인의 보라색 눈동자가 슬 시선을 피하더니 이리저리 움직인다. 죠타로는 그 얼굴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딱히 추궁하려던 것도, 반드시 답을 들어야 할 만큼 알고 싶은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았으나, 그는 어쩐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곡이라도 찔렸던 걸까? 방황하는 눈동자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의 반증이다. 뜻밖의 반응에 죠타로로서는 궁금해질 법도 했다. 카쿄인은 어색하게 제 목덜미를 매만지면서도 쉽사리 알려주지 않았다. 남몰래 해야 하는 중요한 이야기라도 있는 것일까.
“…아아, 들켜버렸네요~”
한참 뜸을 들여놓고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민망하기라도 한 지 멋쩍게 웃는 카쿄인과는 대조되게 죠타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별것도 아닌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였나 싶어 김이 새다 못해 황당할 만도 했다. 또래인 게 덜 어색하지 않냐는 둥, 일본을 떠나온 이후 제대로 된 숙소에서 묵는 건 처음이지 않냐는 둥, 빠르게 말을 덧붙이던 카쿄인이 그런 죠타로의 표정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너와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이야.”
단순히 목적만을 함께하는 동료보다 더 가까운 사이 말이야. 죠타로는 눈을 깜빡였다.
“친구?”
“응. 친구란 그런 거잖아요? 서로에게서 배우고, 감정을 나누고, 시간을 할애하고.”
…아니야? 책이나 게임에서 나온 친구는 다 그렇던데. 카쿄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죠타로의 얼굴을 흘긋 올려다본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의도가 어쨌든 간에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옅게 웃으며 이내 사과한다.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면서.
“하지만 네가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어. 앞으로는 주의할게. 미안해, 죠죠.”
2.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폴나레프가 에보니 데빌의 습격을 받아 조금 소란스러워지긴 했지만, 죠타로와 카쿄인에게 딱히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황이 진정된 이후 그들이 한 일은 전날까지 치열하게 싸우느라 입은 상처들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스탠드사 특유의 강한 회복력 덕분에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주기만 하면 끝나는 정도로 아물어있긴 했지만. 그러던 중 죠타로가 카쿄인의 손에 깊게 베였던 듯한 상처를 여럿 발견하여 무엇인지 물으니 다크 블루 문과의 전투에서 회오리에 갇힌 너를 구하려다 다친 거라고 했다. 스트렝스와의 싸움까지, 전부 네게만 의존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했다.
죠타로와 친구가 되고 싶다던 카쿄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그들은 잠들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좋아 이야기지 죠타로는 ‘그런가.’, ‘그렇군.’ 등의 추임새만 넣을 뿐, 카쿄인이 일방적으로 떠드는 수준이었으나 그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듯했다. 폴나레프가 피투성이로 나타나서 깜짝 놀랐네, 호텔 식사가 맛있었네, 앞으로의 여행이 순탄했으면 좋겠네,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하지만 밤사이 그의 입에서 ‘죠타로’라는 단어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3.
“오늘 쓰러트린 옐로 템퍼런스라는 놈 말인데.”
“나로 변장하고 있었다는 녀석 말이야?”
죠타로의 팔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카쿄인이 답했다. 꼼꼼한 손길로 부상 부위에 연고를 다 발라주고 나서야 고개를 든다. 듣고 있으니 마저 말하라는 표정이다.
“네가 레로레로거리면서 체리를 먹는 것까지 따라 했더군.”
“으응?”
“체리를 먹는 습관까지 따라 할 정도로 너를 파악한 놈이 나를 죠타로라고 부른 건 어떻게 생각하지?”
“…그거라면 어제 사과했잖아, 죠죠.”
“그래? 다시 물어볼까. 적이라는 놈은 나를 서슴없이 불러제끼는데 정작 동료인 너는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 카쿄인은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죠타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묘하게 표정이 이상한 것이, 자기 생각에 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으러니까 죠죠, 네 말은….”
“이름.”
“…죠타로.”
“그래.”
“…너는 거리 두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해?”
“문제라도?”
“당당해서 좋겠네요.”
“그러니 너도 좀 당당해지라고, 카쿄인.”
친구가 되고 싶다며?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는지 카쿄인은 눈을 똥그랗게 떴을 뿐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이내 작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죠타로도 픽 웃었다.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죠타로.”
“관심 끄려고 했는데 네가 지래 겁먹고는 내 눈치를 보잖아.”
“…티 났어?”
“난 내 비위 맞추려고 빌빌 기는 놈들은 질색이야.”
너답다며 카쿄인이 쿡쿡 웃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죠타로 앞에 가 선다. 곧 악수하듯 한 손을 내민다. 평소의 단정한 교복이 아닌, 단추 몇 개가 끌러진 잠옷 차림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결의에 찬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럼…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죠타로.”
새삼스러운 인사말에 죠타로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이내 웃음기로 덧씌워진다. 내밀어진 손을 덥석 잡고서 말한다. 그의 말버릇을.
“못 살겠군, 카쿄인.”
4.
둘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또래라서 그런 건지, 함께 목숨의 위협을 받아 가며 여행하다 보니 돈독해진 건지. 어쨌든 확실한 건 죠타로와 이야기를 나누는 카쿄인의 모습은 전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점이다. 카쿄인은 종종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자신은 선천적 스탠드사라는 것이나, 자신이 스탠드사인 걸 알아본 것은 DIO가 처음이었다거나. 카쿄인은 DIO와 만났을 때의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엄청난 공포감이 전신을 짓눌렀다는, 압둘과 폴나레프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때의 이야기를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아도 죠타로에게 카쿄인은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스승이었다. 카쿄인에게는 능숙함이 있었다. 스탠드가 발현된 지 얼마 안 된 죠타로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실력의 차이가. 물론 죠타로도 스타 플래티나를 무리 없이 다루긴 했지만, 자신의 스탠드를 훨씬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도 카쿄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이에로펀트의 능력을 여러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강점은 뭐고 약점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 것인지를 전부. 그래서 카쿄인은 죠타로에게 스탠드의 활용법 등등에 대해서 이런저런 도움을 주곤 했다. 하이에로펀트와 스타 플래티나가 협력한다면 어떤 방식이 제일 좋을지에 대해 의논한 적도 있다. 둘의 합은 차차 나아졌고, 더 나아가서는 시선만 교환해도 무슨 생각인지 파악이 되는 경지가 된 듯했다. 휠 오브 포춘과의 전투에서가 그랬다. 서로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았는데 자신의 역할이 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태연자약하게 스모로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카쿄인.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죠타로의 등 뒤에서 카쿄인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휠 오브 포춘과 싸우느라 얻은 가벼운 화상들을 살피고 있던 탓이다. 죠타로는 카쿄인이 이런저런 부상을 봐주는 것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오히려 죠타로가 카쿄인의 부상을 봐주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물론 카쿄인은 너에 비하면 다친 것도 아니라면서 극구 거절했지만 죠타로의 집념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카쿄인도 몸 이곳저곳에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선천적으로 스탠드를 다룰 수 있다고 했지?”
“아마도요? 아주 어릴 때부터 하이에로펀트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너도 스탠드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적이 있으려나 싶어서. 난 스탠드가 처음 발현됐을 때 내게 악령이 붙은 건 줄 알았거든.”
“악령이라.”
“어이, 웃지 마.”
“네에, 네에. 나는 글쎄, 남들은 볼 수 없는 나만의 친구?”
“친구라.”
“처음엔 하이에로펀트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상한 건 나더라고.”
“…이상하지 않아.”
“빈말이라도 고마운걸.”
죠타로는 자신의 뒤에 있는 카쿄인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죠타로의 표정은 구겨진 모양이었다. 카쿄인이 그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한다.
“화내지 마. 너도 알잖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그럼, 지금까지 네 스탠드를 볼 수 있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건가.”
“그렇지? 네가 처음이에요, 죠타로.”
“그런 것치고 우리의 첫 만남은 영 그랬던 것 같은데.”
“그건 육신의 싹 때문이잖아.”
그러더니 짝! 소리가 나게 죠타로의 등짝을 때린다. 난데없이 한 대 맞은 죠타로가 험악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카쿄인이 뻔뻔하게 웃고 있었다.
“자! 연고 다 발랐어. 이제 자자고, 죠타로. 내일도 일찍 이동해야 하니까.”
5.
여행은 계속되었고, DIO가 보내는 자객들도 끊임없이 나타났다. 안개가 자욱이 껴서 머무르게 된 호텔은 사실 환상이었고 마을 주민은 스탠드가 조종하는 시체였다든가. 폴나레프는 또 화장실과 관련해서 험한 꼴을 당한 모양이었지만 죠셉만 신이 나서 놀려댔을 뿐, 죠타로와 카쿄인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죠셉이 인질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적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죠타로가 이런저런 수모를 겪기도 했다. 본인은 만족할 때까지 두들겨 팬 모양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DIO에 대해 유의미한 정보는 얻지 못한 상태였다. 정보를 위해 살려두고 있던 엔야 할멈까지 죽임을 당한 탓이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계속 싸우게 될 다른 자객들에 대한 정보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들은 꾸준히 나아갔다. 조금씩 이집트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우리는 반드시 이길 거라고 믿으면서.
“그러고 보니 죠타로.”
“음?”
“나, 너희 동네 지리를 잘 모르거든. 나중에 안내시켜줄래?”
“어려울 것 없지.”
그들은 종종 싸움이 끝난 이후를 가정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함께 등하교하고, 서로의 도시락을 나눠 먹고,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땡땡이도 쳐보고-여기서 카쿄인은 기함하고 말았다.-, 각자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가는 이야기들을. 카쿄인은 죠타로와 같은 학년이 아니라서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들어보니 자기만의 로망 같은 게 있다나 뭐라나. 하지만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쁘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카쿄인은 지금까지 봐왔던 표정 중에서 가장 밝게 웃는 얼굴을 해 보였다.
6.
밤의 사막은 추웠다. 일교차가 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보니 차원이 달랐다. 태양의 스탠드로 인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더위를 겪은 직후인지라 몸에 오는 부담이 더 컸다. 시간이 늦어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해야 했지만 잠자리의 불편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일행은 빠르게 잠들었다. 죠타로가 담배를 피고자 무리에서 조금 떨어졌을 때였다.
“죠타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카쿄인이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카쿄인? 안 자고 있었나?”
그리고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오늘 태양의 스탠드와의 전투는 거울을 눈치채는 게 늦어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지 너무나도 간단하게 끝났다. 스탠드사는 스타 플래티나가 던진 돌에 맞아 재기불능이 되어버렸으니까.
“…오늘은 딱히 다친 곳이 없는데.”
그러니까 이렇다 할 부상을 입을 정도로 싸운 사람은 없었다는 거다. 태양의 스탠드를 파악하기 위해 하이에로펀트로 접근하던 카쿄인을 제외하고는.
“그러고 보니 다쳤었군, 카쿄인. 이리 와. 좀 보지.”
“아, 괜찮아요. 가벼운 상처니까.”
“너도 별거 아니라는 내 말은 지지리도 안 들었잖아?”
그러더니 스타 플래티나까지 꺼내 든다. 오지 않으면 오게 하려는 심산인 모양이었다. 걱정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행동에 카쿄인이 눈을 깜빡이다 픽 웃었다.
“정말이야. 거의 다 아물었어. 왜 따라왔는지는 안 물어봐?”
“그렇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옆구리 찔러서 절 받는 기분인데.”
“대답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하고 싶은 말?”
죠타로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라이터를 키는 소리 사이로 카쿄인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좋아해, 죠타로.”
“…뭐?”
죠타로의 표정이 드물게 무너졌다. 당황, 혼란, 황당, 경악, 의아함? 반대로 카쿄인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했다. 이 표정은 고백을 하고 있는 표정이라고 소개했다가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 수준이었다.
“좋아한다고. 내가, 너를.”
죠타로도, 카쿄인도 이후로 아무 말이 없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적막 속에 담배가 타는 소리만 들렸다. 가끔 부는 바람은 건조했다. 밤공기가 무섭도록 차가웠다.
이 아래는 사담과 후기, 비화입니다. 결제하지 않으셔도 본편 이해에는 지장이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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