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8)
더스크우드 / 제이크 * MC(f)
에서 계속됩니다.
에피10 이후 시점
후속 게임(MOONVALE)의 설정과 충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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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연재합니다.
8화 - 잘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 3
* 교통사고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열쇠를 힘주어 돌리자 두꺼운 쇳덩이가 밀리는 것이 손가락을 통해 느껴졌다. 나는 열쇠를 원위치로 움직이고는 살살 흔들어 빼냈다. 오늘은 손님이 많지 않고 불청객들도 찾아오지 않아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열쇠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따뜻한 온실에서 벗어나 거리를 걸으니 추위가 더욱 거세게 느껴졌다. 나는 코트의 옷깃을 더 움츠리고 팔짱을 꼈다.
이대로라면 새해는 코트로 버티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패딩을 구해야 하나.
나는 눈과 귀가 아려오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댄과 영화를 봤던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 나는 그 일을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내야 했다.
가게를 찾는 손님은 많진 않으나 꾸준히 늘어났다. 그리고 손님이 없어도 할 일은 많았다. 이번 달이 바로 크리스마스가 존재하는 12월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하는 조명을 구경하며 걸었다. 크리스마스를 한 달 내내 기념하는 더스크우드는 벌써 곳곳이 축제 분위기였다.
지난달 초부터 팔기 시작한 전나무 잎 화환은 12월 초를 지나자 무수히 팔려 나갔다. 사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화환은 작년보다 늦게 팔리기 시작한 편이었다. 아마 10월에 있었던 사건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나는 뒤늦게 치솟는 수요를 메꾸기 위해 하루 종일 손을 놀려야 했고,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신경 쓸만한 여유는 없었다.
게다가 일을 하지 않을 땐 클레오와 미란다를 도와 축제 일을 돕고 있었다. 미란다는 파인 글레이드 축제가 진행 도중에 무산된 것을 만회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축제를 더욱 성대하게 열었다.
그는 이 축제로 더스크우드의 사람들이 다시 화합하고, 경직된 마을 분위기가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길 바랐다. 이것은 리치 친구들의 뜻이기도 했고, 그 부모님의 뜻이기도 했다.
커진 규모 탓에 축제를 준비하는 일손은 항상 부족했고, 여유가 되는 더스크우드 사람은 대부분 희망의 문턱을 돕고 있었다. 모두가 화합하길 바라는 미란다의 뜻이 통하는 중이었다.
나는 제시, 한나와 함께 클레오를 도와 구운 케이크를 떠올렸다. 요리에 재능이 없어 처음엔 걱정이 많았지만, 클레오의 솜씨는 내가 만든 케이크도 멋지게 완성할 만큼 훌륭했다. 제시와 한나도 재능이 있었다. 익숙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아마 두 사람은 매년 크리스마스 축제 준비를 도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케이크를 구우며 제시에게 그간 듣지 못한 근황을 알 수 있었다. 자동차 무덤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제시는 오로라에서 필의 일을 돕고 있었다. 그 사실은 댄의 퇴원 파티에서도 들어 알고 있었는데, 제시가 콜빌에 취직하기 위해 비서 업무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더 알게 되었다.
더스크우드를 떠날 것이라는 제시의 말은 내 마음을 술렁였다. 아쉬움은 아니었다. 나는 제시가 이전에 하려다 못했던 말이 이것과 관련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나는 몇 달 전보다 훨씬 생기가 돌고 있었다. 교회에서 봉사하며 마음이 많이 치유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 느껴졌는데,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리고 한나가 불편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리치에 대한 것을 눈치챘을까. 그것을 묻고 싶은 충동과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케이크를 굽는 내내 소용돌이쳤다.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가 보였다. 2층으로 구성되어 한 층씩 입주가 가능한 이곳은 사실 아파트보다는 주택을 개조한 빌라에 가까웠다.
위층에 월세를 받으며 아래층에서 생활하려 했던 집주인은 내게 위층을 팔아버렸고, 아래층은 끝내 거래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버리고 떠나버렸다.
집주인은 원하면 1층도 써도 된다며 흔쾌히 열쇠를 주고 갔지만, 나는 현재 2층만 사용하는 중이었다. 한 층만 거래했을 뿐인데 아래층까지 덤으로 주려는 집주인의 호탕함을 떠올리며 나는 작게 웃었다. 이 기묘한 곳엔 좋은 사람이 많았다.
내 아파트는 일직선으로 난 계단의 끝에 현관이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피곤한 몸을 한 단씩 끌어올렸다. 건물 열쇠로 문을 열고 2층의 열쇠로 바꿔 잡으며 오르자, 내 현관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무 단보다 조금 안 되는 계단을 절반 이상 오른 나는 현관문 쪽으로 고개를 올렸다. 그러자 나는 현관문이 이전과 달라진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문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컸으니까.
액정 모니터로만 봤던 검붉은 문양. 그것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르기 전에 흘러내린 액체는 바닥까지 얇은 선을 그리고 있었고, 아까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비린내가 건물에 진동하고 있었다.
바깥의 날카로운 바람이 더 크게 요동쳤다. 누군가가 열라고 두들기는 것처럼 문이 덜컹거리고, 허름한 문틀로 공기가 새며 내는 소리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것을 바로 세우고 난간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문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전등 기능을 켜 그것을 비추자 문양이 번들거리며 빛을 반사했다. 색도 훨씬 빨간색에 가까웠다.
나는 중지를 뻗어 문양의 끄트머리를 건드렸다. 끈적이는 질감이 손끝에 묻어나왔다. 나는 내 손가락에 찍힌 붉은 자국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직 마르지 않았다. 혈액이 실온에서 굳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것을 그린 자가 아직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생각을 마치자마자 다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주택이 밀집된 주거지역의 골목을 벗어나자, 차가 드문드문 다니는 이차 도로가 나타났다. 나는 왼쪽부터 시선을 움직이며 샅샅이 살폈다. 그 어떤 작은 단서도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곧 흔적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도로 건너편에 나를 바라보는 것이 있었다. 저자가 아니면 누가 표식을 남기겠는가.
얼굴 없는 남자가 내 시선을 삼켰다.
한나의 집에서 처음 발견한 그때부터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를 따라다니던 그것이 기어코 내 집까지 쫓아왔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몸에 힘을 줘도 쉽게 움직이질 않았다. 마치 운동화가 녹아 보도블록에 늘러붙어 버린 것 같았다. 이 자리에 묶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발을 떼는 것을 포기하고 나를 바라보는 저 눈빛을 노려봤다.
그때, 한 트럭이 건너편 차선을 달리며 그것을 가렸다. 그리고 차가 지나가자 남자가 종적을 감췄다.
나는 다시 여기저기 시선을 움직이며 그를 찾아 헤맸다. 전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나타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어디서 마주칠지 모른다는 감각에 내 심장이 북처럼 울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리고 바닥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던 발이 떨어졌다.
정확히는 누군가 내 등을 밀어 몇 발짝 걸어나가 보도를 벗어났다. 갑자기 움직인 탓에 균형을 잡지 못한 나는 비틀거리며 도로 위에 섰다. 동시에 내 왼쪽으로 묵직한 충격이 가해졌다.
세상이 빠르게 쏠리며 시야가 흐트러졌다. 반짝이는 작은 조명들이 꼬리를 그리며 빙글 돌았다. 다시 어딘가에 부딪히는 감각이 느껴졌을 땐 온몸이 화끈거렸다.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여러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일으켜주는 힘에 지탱해 몸을 바로 세우자, 퇴근 중인 것 같은 사람들이 보였다. 나를 친 미니밴에서도 운전자가 내려 내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나도 앉은자리에서 내 몸을 확인했다. 다행히 정차하기 위해 서행 중이던 것과 부딪혀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운전자가 말했다.
"괜찮으세요? 병원에 가보셔야겠는데. 모셔다드릴게요."
"아뇨,…아니요. 괜찮습니다."
내 몸은 멀쩡했다. 그보다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
나는 나를 막는 사람들을 두고 일어나 달렸다.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달리면서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안전한 곳으로. 거기가 어디지? 최소한 사람이 없는……나를 찾지 못하는……. 그것이 나를 찾지 못하는 곳이 있을까?
너무 많은 생각이 내 생각을 반박하고 또 의견을 내며 겹쳤다. 그러는 사이에 내 몸은 이미 어딘가로 도망쳤다. 뇌가 몸보다 늦게 따라왔다.
* * *
나는 차갑고 딱딱한 바닥 위에서 눈을 떴다.
장기간 불편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었는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굳은 근육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낯선 곳에서 눈을 뜨는 것은 이제 익숙했다. 가장 먼저 할 것은 장소 확인이다. 나는 이곳이 어딘지부터 알아내기 위해 감각을 살렸다. 익숙한 물 향과 냉장고 소리.
이곳은 내가 일하는 꽃집이었다. 나는 내가 비교적 나쁘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긴장을 풀었다.
그다음으로는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지를 생각했다. 내가 바람의 저항을 받아 천천히 닫히려는 것을 몸으로 밀어붙이고 문을 잠근 것까진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기까진 내 발로 온 건데, 뭐 때문에 다급하게 왔지?
나는 더 과거로 기억을 되돌리려고 애쓰며 멍한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밤새 여기서 잠든 것인지, 불이 꺼진 가게 내부에 푸르스름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이 그려내는 화분의 그림자가 바닥으로 길쭉하게 늘어졌다. 그것을 천천히 훑던 내 시야에 무언가가 걸렸다.
동시에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알게 됐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쳤는지.
졸음으로 느려졌던 정신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깨어났다. 문에 달린 유리창을 통해 비추는 창백한 태양 빛에 새카만 부분이 존재했다. 그 그림자는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뒤집어쓴 것처럼 둥근 모양의 머리 형태가 뚜렷하게 보였다.
나는 서서히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낮은 프레임의 애니메이션을 재생하듯이 움직임이 뚝뚝 끊어졌다. 가게 문의 반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도망칠 수 없다.
나는 의자와 작업대를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잘 나아가지 않는 다리를 끌고 문으로 이동했다.
"흐흐흐."
입에서 비틀린 웃음소리가 흘렀다. 무섭다. 무서워 미치고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 한편에서 즐거움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희열이 두려움을 밀어냈다.
내가 더 도망칠 줄 알았지? 내가 널 영원히 두렵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것은 이제 내 코앞에 있었다. 그자가 만든 역광의 그림자가 내게도 내려와 시야가 어두워졌다.
위험하다. 동시에 진실에 가까워졌다.
이것과 마주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운명을 걸고 하는 게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길 것이다. 널 이기고, 난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이 내 약속이다.
나는 문의 위쪽에 달린 잠금을 풀었다. 철컥이는 소리에 문 너머의 그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이 떠나기 전에 문을 열어젖혔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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