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크우드

미제 (9)

더스크우드 / 제이크 * MC(f)

에서 계속됩니다.

 

  • 에피10 이후 시점

  • 후속 게임(MOONVALE)의 설정과 충돌이 있습니다.

  • 모바일 뷰어에 최적화되어있습니다.

  • 매주 월요일 17:00에 연재합니다.


9화 - 잘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 4

 

 

"끄아악!"

거대한 고함이 상가에 울려 퍼졌다. 문을 열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토마스였다. 나는 멍한 시선으로 내가 예상한 상황과 한참 벗어난 광경을 바라봤다. 토마스의 비명은 댄이 시끄럽다며 등짝을 내려치고서야 멈췄다.

 

나는 그들을 발견하고 제일 먼저 생각났던 질문을 했다.

"너네들이 왜 여기에 있어?"

 

댄은 내 말을 듣고는 질문으로 받아쳤다.

"그건 내가 물을 말이지. 왜 이 안에서 나와?"

"……할 일이 있었어."

"여기서 밤을 샌 거야? 불까지 꺼놓고?"

 

토마스는 내 너머의 가게 안쪽을 살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캐내려는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내 모습은 어제와 다를 것이 없겠지만, 겪은 일이 있어 그리 당당하진 못했다.

나는 뒤돌아 가게 안으로 들어가며 시선을 피했다.

 

"요즘 얼마나 바쁜지 알잖아. 그래서, 두 사람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왜 온 건데?"

"바쁜 거 아니까 도와주러 왔지. 얘는 모르겠어."

"같이 온 거 아냐?"

"아니. 이 앞에서 만났어."

 

토마스가 여길 왜?

나는 토마스에게 설명을 기다리며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문 토마스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나는 그에게 굳이 상황을 묻지 않았다.

 

"바쁘긴 한데, 도움이 필요할 정도는 아냐. 그리고 사장님이 넌 절대로 가게에 발 들이지 말라 그랬어."

"아니, 그때 좀 실수한 거 가지고 되게 깐깐하게 구네."

"깐깐하다고 할 게 못돼. 네가 그때 만든 손해를 메꾸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고 하셨어."

"그래, 그 손해 내가 도와서 축제 한 번으로 메꾸게 해준다니까."

"너 그 화환 손 대기만 해봐!"

 

내가 댄과 화환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가 딸랑이며 울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는데, 아직 영업 전인가?"

 

대충 내려 묶은 머리. 파스텔 노랑 셔츠와 청바지 차림. 가볍고 느긋한 태도를 가진 남자의 목 한 가운데에 그려진 박쥐 문신이 눈에 띄었다. 나는 리치의 장례식 이후로 처음 만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필."

"오랜만이야."

 

필은 자신이 들고 있던 종이 캐리어에서 음료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넸다. 따뜻한 음료를 받아 드니 내 손이 엄청나게 식어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들이 와있을 줄 모르고 네 것만 사 왔네."

 

그렇게 말한 필은 전혀 아쉽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음료를 마셨다. 그를 따라 나도 음료를 들이켰다. 바닐라 라테였다.

 

"여긴 무슨 일이에요?"

"언제 한 번 오로라에 놀러 오라고 했는데, 한 번도 안 와서."

"아……."

"덕분에 감옥신세를 면했는데, 감사 인사는 해야지."

 

꽤 오래 기다렸는데, 날 잊어버린 것 같더라.

필은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마지막 말을 조곤조곤 속삭였다. 그 모습을 댄과 토마스가 무척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난 난감하게 웃었다.

 

"미안해요."

"아냐. 바쁜 거 알았으니까. 내가 더 일찍 찾아왔어야 할 일이지. 그보다, 갑자기 존댓말을 쓰는 거야? 우리 메신저로 대화할 땐 안 그랬잖아."

"아 그땐……."

"난 괜찮으니까, 말 편하게 해도 돼."

"……그래, 알겠어."

 

나는 레몬을 씹어먹은 것처럼 찡그리는 댄과  그림처럼 웃는 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필은 자신을 야유하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날 실제로 본 감상이 어때?"

"감상?"

"우리가 메신저로는 좋지 않은 계기로 만났으니까. 실제로 만난 첫인상은 좀 좋게 기억됐으면 좋겠거든."

"음."

 

나는 필의 모습을 천천히 훑었다. 그러니까 첫인상은…….

 

"색이 있네."

"응?"

"그러니까, 프로필 사진은 흑백이었잖아. 그래서 색이 있는 게 좀 신기하게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생겼구나. 반가워."

 

내 대답을 들은 필은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리며 웃었다. 허리까지 숙여가며 웃는 것을 보자 조금 민망해졌다. 그게 그렇게까지 웃길 일인가.

멀뚱하게 선 세 사람을 두고 혼자서 더 웃던 필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며 말했다.

 

"의외의 대답이네."

"뭐라고 예상했는데?"

"예상했다고 해야 하나. 기대했지.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하기를."

 

좀 신경 쓰고 나왔거든.

나는 그 말을 듣고 필을 다시 살폈다.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와 바지, 진한 향수 향. 나는 댄과 토마스가 죽상을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필의 평소 차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해야 하지? 잘생겼다?

내가 필에게 적당한 대답을 고르고 있을 때,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댄이 결국 입을 열었다.

 

"감사 인사 다 했으면 이만 가주시지."

필이 부드럽게 그리고 있던 입술의 호선이 잠시 비틀리는 것이 보였다. 필은 댄 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으며 말했다.

 

“난 아직 볼일이 남았는데. 가봐야 하는 건 그쪽이 아닌가? 미아가 내보내려고 한 거 들었어.”

“난 MC를 도우려고 왔어. 댁은 손님이고.”

“아르바이트 첫날 무단결근에, 사장을 감옥까지 보낼 뻔한 직원이 뭘 어떻게 도우실까? 여기도 금방 잘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런 망할. 그건 또 어떻게 들은 거야?”

 

나는 필과 댄이 말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것을 지켜봤다. 몸이 피곤하니 저것들을 말리는 것도 성가시고 귀찮았다.

가만히 두면 알아서 지쳐 떨어지지 않을까? 정 아니면 저 안절부절못하는 토마스가 나서든가.

 

그렇게 상황을 방관하고 있자, 누군가가 꽃집 안으로 들어오려다 말고 나가버렸다. 저 남자들이 영업방해까지 하고 있으니, 결국 내가 둘을 내쫓아야 했다.

 

* * *

 

댄과 필을 내보낸 나는 작업대로 향했다. 바닥을 치는 체력에 다리가 무거웠지만,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있었다.

나는 근처에 앉아 있는 토마스를 흘긋 바라봤다. 그리고는 작업대 위에서 만들다 만 화환을 치우며 그에게 말했다.

 

“이제 얘기해 봐.”

“뭐, 뭘?”

“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여기 온 거잖아.”

“……사실 맞아.”

 

나는 토마스를 보채지 않고 조용히 말을 기다렸다. 사실 이대로 그가 돌아가도 상관없었다. 토마스의 고민이 무엇일지 얼추 짐작됐고, 이미 내 속은 아주 복잡했으니까.

하지만 토마스는 내가 한번 물어본 것으로도 충분히 동기부여가 됐는지, 자신의 고민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사람을 믿어서 안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남한테 내 얘기를 하는 게 어렵다고."

"그랬었지."

 

토마스는 자신이 겪었던 안 좋은 일에 대해 털어놨다. 도시로 취직해 이사를 갔던 그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직장동료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돈까지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 그 친구가 한 고약한 괴롭힘 탓에 토마스는 직장 내에서도 따돌림을 당한 데다가, 그에게 스토킹까지 당하게 돼서 본가가 있는 더스크우드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때 아주 힘들었어. 그 사람이 편하다고 생각해서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게 잘못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러다가 한나와 지금의 친구들을 만났지."

"친구들은 네가 겪은 일을 알아?"

"아니. 별로 좋은 얘기도 아니고……. 다 끝난 일이니까."

 

나는 토마스의 말을 들으며, 내가 들고 다니는 텀블러를 개수대에서 씻었다. 거기에 필이 가져다준 바닐라 라테를 옮기고, 선반에 놓여있는 컵 두 개를 꺼내 차를 타기 시작했다.

토마스가 내 모습을 슬쩍 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나 쪽은 달라. 끝난 일이 아니었잖아, 한나의 우울증은……."

"한나의 우울증도 거의 끝난 일이었을 수도 있어."

"뭐?"

 

나는 토마스의 앞에 찻잔을 두며 말을 이었다.

"한나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잖아. 그때부터 다시 문제가 생긴 거지, 그전까진 약 처방도 중단할 만큼 괜찮았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토마스는 차를 마시지 못했다.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으며, 그에게 내가 한 추측을 담담히 읊었다.

 

"넌 그만큼 사람에게 민감하니까. 그전에도 우울증이 있었다면 네가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한나는 그저 약을 처방받는 것뿐만 아니라 스캔해서 클라우드에 저장까지 했어. 처방전을 활용할 데가 있었다는 거야."

 

내 대답을 들은 토마스는 찻잔으로 시선을 내렸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한나는 CCTV를 설치하고 알란에게 연락까지 했어. 가만히 앉아서 절망하고만 있진 않았다는 뜻이야. 그리고 실종 당일엔 네게 다 말해줄 수 있다고 전화까지 했다며."

 

나는 흘긋 시계를 확인했다.

"한나가 네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지 않았다는 건 널 믿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야."

"……."

"그리고, 한나가 자신의 문제를 바로 말하지 못한 이유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 부분을 얘기하기엔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

 

나는 곧 가게에 올 사람을 생각하며 운을 띄웠다. 토마스는 그제야 내가 차를 하나 더 준비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누굴 불렀어?"

"응. 정확히는 누구랑 만날 약속이 먼저 있었는데 너네가 온 거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토마스가 클레오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를 붙잡았다.

"돌아가려고? 좀 얘기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손에 케이크를 들고 있던 클레오는 토마스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클레오가 주기로 했던 케이크를 건네받고는 접시를 찾아 케이크를 덜기 시작했다.

 

나는 토마스와 클레오의 앞에 조각 케이크를 두었다. 토마스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클레오가 말했다.

 

"한나랑 관련된 거지? 앉아서 얘기해."

"……."

토마스가 한 이야기는 내가 예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건 나와 댄이 퇴원파티에서 했던 대화와 거의 비슷했다.

 

한나는 자수하지 않았다.

제니퍼 사건으로 가지고 있었던 죄책감은 마이클의 납치 사건으로 인해 전부 분노로 탈바꿈했다. 에이미와 리치가 그의 손에 죽었다는 것이 그에게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우리는 한나의 비밀을 파헤친 사실을 숨겼다. 클라우드를 해킹한 것, 휴대전화를 뒤진 것을.

우린 그저 한나의 차에 저장된 내비게이션과 필이 준 단서로 마이클의 집에 찾아갔고, 거기서 마이클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물론 알란은 그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질질 끄는 것은 더스크우드가 원하지 않았으니, 범인은 마이클이 되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만 덮인 이 사건은 우리에게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남았다.

토마스는 큰 죄를 안고 있는 한나가 두려웠고, 그것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알아버린 자신이 불편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까지 오게 만든 그 비밀이 원망스러웠고, 이런 처지에 놓인 자신과 한나가 불쌍했다.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은 토마스는 조금 후련해진 표정을 지으며 다 식은 차를 한 번에 들이켰다. 토마스의 말이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클레오는 자기 앞에 놓인 케이크를 포크로 찌르며 입을 열었다.

 

"내가 17살이었을 때, 내가 큰 잘못을 해서 가출을 한 적이 있었어."

 

* * *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클레오의 부모님은 자식에게 매우 엄격했다. 클레오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다면 또래의 친구들보다 좀 더 강한 벌을 받는 편이었는데, 그날은 그가 실수로 교회의 마리아상을 깨트리는 큰 죄를 저질렀던 날이었다.

다행히 그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클레오는 이것을 들켜 무서운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웠고, 그는 곧장 소꿉친구의 집으로 달려갔다.

 

한나는 클레오가 땀을 흘리며 뛰쳐 들어와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클레오는 자신이 뭔가 잘못을 했는데 말할 수 없다고 했고, 그것을 들은 한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모두에게 비밀로 하는 잘못이 있어."

 

한나는 클레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함께 자기가 지은 잘못을 종이에 적은 뒤, 상자에 넣어서 자물쇠로 잠그고 그걸 땅에 묻자고.

그것이 절대로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는 죄라면 죄책감, 두려움, 기억 모두 이 상자에 같이 보관하자고. 그리고 언젠가 그걸 다시 마주할 용기가 생길 때 함께 꺼내자고.

 

그때의 클레오는 한나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죄가 있는 척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클레오의 잘못은 금방 들켜 호되게 혼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니, 그 상자에 대한 것은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커플링
#젴엠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