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유료

[에메트셀크] 에메트셀크라는 존재는

21.05.01 작업 완료

※ 공백미포함 2,024자.

※ 2021.05.01. 작업 완료

※ 파이널판타지14 '칠흑의 반역자', 그 중 5.3v '크리스탈의 잔광'까지의 직간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특정 봇(@utopia_emet)의 설정 및 독백들을 각색한 글이므로, 해당 봇을 모르신다면 이해가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에메트셀크라는 존재는

 

 

 

 

 

 

 

 

 

 

 

 

1.

 

최후의 일격 이후, 그는 ‘조각’으로서 살아남았다. 완전히 사라지지 못하고 남게 된 잔재. 그것이 그였다. 그는 생각한다. 나는 온전한 죽음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죄인이라고. 내게 허락된 것은 자신의 소멸까지 평생을, 지나간 사랑들을 그리워하는 것뿐이구나. 내 일생이 그러했듯이. 야속하기도 하시지, 허나 이것이 이 죄인에게 내려진 판결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리다.

 

2.

 

하데스는 자신의 일상을 사랑했다. 물론 절친이라는 놈들이 허구한 날 엉뚱하고 골치 아픈 일들을 벌이고 다니긴 했지만. 어쨌든 그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사랑했고, 그대로 거리로 나가면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토론을 사랑했고, 그들과 거니는 도시를 사랑했으며, 그런 모든 것들이 존재하게 하는 세계를 사랑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고, 누구 하나 무언가에 쫓기는 이 없고. 그야말로 완전하디 완전한, 둘도 없을 우리의 이상향. 사랑받아 마땅한 것. 게다가 그는 혼의 색을 볼 수 있는 자로, 그가 보던 순환은 그 자체로도 진리라 일컬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로 그런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4인 위원회로서 에메트셀크의 이름을 받았을 때에도 그랬다. 이 별을 위해, 내가 사랑하는 세계를 위해 기꺼이 이 한 몸 바치리라. 세계에 공헌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던지.

그것은 감히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사랑이었고, 또 하데스의 첫사랑이었다. 하데스는 우리의 세계가 영원히 지속되는 한, 이 영원할 것이리라 믿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랬지, 첫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고. 하지만 전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세계가 영원히 이어질 거라는 하데스의 생각은 틀렸지만, 그의 첫사랑은 아직도 진행 중이므로. 아마 그의 사랑이 식을 일은 세계가 다시 14조각으로 나뉜다고 해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이다.

 

3.

 

에메트셀크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특이한 게 있다면 수신인이 없다는 점이랄까. 사실 당연한 일이다. 편지를 받을 만한 이들은 이제 그의 곁에 없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편지를 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나의 동포들, 도시, 세계. 나의… 이상향.

그렇게 쓴 편지를 유리병에 넣어 바다로 보낸다. 바다 밑에 잠들어있을 우리의 기억들에게. 그걸 누가 발견해서 읽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에메트셀크는 글월을 써내려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문득 이 현실을 견디기 어려워질 때면, 문득 향수에 젖을 때면. 문득… 그들이 생각날 때면. 고작 한두 마디의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을 담아서 바다로, 바다로…. 하지만 바다는 넓고, 해구는 깊고. 만이천 년 동안이나 쓰인 편지들도 그것을 채울 수는 없어서. 바다가 메마를 일이 있을까? 그래서 그들의 기억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에메트셀크는 알고 있다. 편지를 읽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큼.

그럼에도 발신인만 있는 편지여도 쓰였다는 것은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아주 미약하게나마 희망을 걸었다는 뜻이 아닐까. 그는 부정하고 싶겠지만. 그의 편지들은 아씨엔들에 대한 기록이자, 세계통합에 대한 기록이자, 자신이 사랑한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누군가가 그것을 읽어준다면, 그리하여 기억해준다면. 기억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4.

 

영웅은 때때로 아씨엔 에메트셀크가 외롭게 홀로 서 있는 고목 같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을 한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고목. 나무는 살아온 세월이 나이테에 새겨진다던데, 그 기나긴 삶을 살아온 당신의 나이테에는 어떤 기억들이 새겨져있을까. 그걸 모두 품고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 정보들을 책으로 엮으면 얼마나 방대할까. 아, 당신은 고목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하나의 유적이자 도서관이자 장서일까.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낡고 오래된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득 영웅은 그가 마저 닳아 없어지기 전에 그의 일생에 관련된 기억과, 그래서 그렇게 내려진 판단들을 읽고 싶어졌다. …사실은 그라는 존재를 읽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고목이라고 해도, 찾는 이 하나 없는 유적지라고 해도, 붕괴 직전의 도서관이라고 해도, 페이지는 뜯겨나가고 글씨는 흐려진 책이라고 해도. 조각이긴 해도 그가 ‘그’가 아닌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기억하라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는가. 따라서 이건 그의 유언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그리 합리화를 하면서. 어쩐지 그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애써 돌려놓으면서. 당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면서.

 

5.

 

노을이 진다. 해가 저문다. 내리덮이는 황혼. 그는 황혼 그 자체였다. 지나간 어제와 과거를 품고 저물어가는 것이 바로 그였다. 그는 이를 부정하고 거부했지만 거대한 세계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것마저도 에메트셀크가 사랑한 세상의 이치였다.

…결국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터다. 그 아래서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겠지. 그래서 그는 눈을 감았다. 그 다음은 그를 꺾은, 새로운 태양-이라고 하기엔 미약하기 그지없는 빛이었으나, 깨진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빛으로도 그것이 태양임을 알 수 있는 법이다.-이 이어나가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은 무대를 내려온 배우로서, 그것을 지켜보자고, 그리 생각하면서.


아래는 후기입니다. 결제하지 않으셔도 글의 이해에는 이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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