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유료

[에메아노] 바랄 수 없는 것, 이룰 수 없는 것

21.02.16 작업 완료

※공백미포함 3,084자.

※2021.02.16 작업 완료

※파이널판타지14 '칠흑의 반역자'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에메트셀크와 '그 사람'이 연인임을 가정합니다.

※'그 사람'의 외형 및 성별 묘사는 없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 이룰 수 없는 것

1.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아모로트의 거리. 오늘도 다른 날과 변함없는 하루였다. 분명 그런 날이었는데, 맑은 하늘에서 느닷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보에도 없던 급작스러운 비에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곧 거리는 텅 비게 되었다.

 

2.

 

하데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토도독 토도독,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이 비는 건물에 붙은 먼지들을 말끔히 씻어줄 터였다. 그러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 거리는 한층 더 아름다워지겠지. 그건 상상만으로도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자니 누군가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 혼의 색은 분명 그 사람이다. 아무래도 이 날씨를 즐기려는 심산인지 떨어지는 비를 한껏 맞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하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3.

 

“하데스, 왔어?”

“아무리 약한 비라고 해도 우산도 없이 나오면 어떡해.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 때는 하데스가 간호해주지 않을까?”

 

그러는 하데스도 우산이 없는걸. 걱정해주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며 샐쭉 웃는다. 아무리 강하지 않은 비라도 계속 맞고 있으면 흠뻑 젖을 테고 곧 차가워질 게 뻔했다. 어쩐지 머리가 다 아파오는 기분이 들어 하데스가 이마를 짚자 그가 깔깔 웃었다. 어쨌든 들어가자. 하데스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밀어진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씩 웃었다. 그가 사고를 치기 직전에 짓곤 하는 미소였다. 불길함을 느낀 하데스가 몸을 빼려고 했으나, 손은 이미 그에게 잡힌 뒤였다. 그는 얌전히 하데스의 손을 잡는 듯하더니, 그대로 제 쪽으로 확 잡아당겼다. 균형을 잃은 하데스가 휘청거리며 그의 품에 안긴 꼴이 되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있지, 하데스.”

 

하데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가면 뒤의 눈이 반짝였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런 눈을 하나, 하던 찰나에 들려오는 말에 하데스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같이 춤추지 않을래?”

 

4.

 

아모로트 거리는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 …다시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마치 이 거리가 언제는 망가졌었던 것처럼…. 언제나 굳건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데! 어쨌든 거리는 늘 활기가 넘쳤다. 밖에서도 토론을 하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 거리에서 뛰놀았으며, 때로는 학술원 동기들이 인사를 건넸다. 누구도 그 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하데스는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는 그 거리를 거니는 것을 즐기곤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비가 내리고 있는 거리를 걷는 걸 좋아한다는 뜻은 아닌데. 같이 춤추지 않겠냐는 말은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하데스의 손을 잡고 그를 이끌 듯이 광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차마 들어가자는 말은 하지 못했다. 연신 싱글벙글하여 가면으로도 그가 들떴음을 가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데스는 얌전히 그를 따라가면서도 속으로는 한숨을 쉬었다. 뭐든 어떠랴. 될 대로 되라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데스는 고개를 들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얼굴로 맞았다. 적당히 시원하니 기분이 좋았다.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런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짜증과 불만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을 즈음에-물론 가면에 가려져있었지만- 걸음은 멈췄다. 광장에 도착한 까닭이었다. 그가 콧노래를 부르더니, 시작하자는 듯 두 팔을 벌렸다.

 

“자, 춤추자! 빗소리를 반주 삼아서! 춤은… 그래, 왈츠가 어때?”

 

하데스가 씩 웃으며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춤을 신청하는 사람처럼 격식 있게.

 

“그럼… 한 곡 추실까요?”

 

그런 하데스의 모습을 못 알아볼 리 없는 그가 마주 웃으며 손을 잡았다.

 

5.

 

한 손은 맞잡고. 한 손은 어깨에, 등허리에 얹고. 하나 둘, 하나 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몸을 돌리고.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고 허리를 뒤로 꺾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찰박이는 소리가 들렸다. 말 그대로 두 사람은 빗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관중은 없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있었다. 어느새 흠뻑 젖은 로브는 더 이상 펄럭이지 못하고 다리에 착 달라붙었다. 무겁게 느껴질 법도 한데 두 사람 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춥기는커녕 오히려 덥기만 했다. 빗소리 사이사이로 작은 웃음소리가 같이 들린 것 같았다.

문득 하데스는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잔뜩 젖은 아모로트의 거리는 춤추는 두 사람을 비추는 거울 같았고, 사람이 없어 평소보다 더 넓게 느껴지는 광장은 꼭 둘만의 비밀 장소인 것처럼 느껴졌으며, 무엇보다도 다른 날 또 비가 내려도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직감이 아주 강하게. 왠지 불안하기까지 해서 하데스는 상대를 꽉 끌어안았다. 왜 그래?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냥 이러고 싶었어. 품 안의 그를 놓아준 하데스는 그가 어느 순간부터 가면을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하데스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둘 밖에 없다고 해도 여긴 공공장소였다. 잘 알 만한 사람이 여기서 가면을 벗다니?!

 

6.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얼굴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데스는 저도 모르게 품 안의 그를 밀쳤다. 형체 없는 텅 빈 얼굴이 무슨 일이냐 물었다. 그 목소리마저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웅웅 울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는 듯했다. 하데스는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으나 언어는 목구멍에 턱 걸린 듯 나오지 못했다. 새로운 형태의 저주 술식인가? 어떻게 해제하는 거지? 당황하는 하데스를 앞에 두고 그는 한 번 더 괜찮으냐고 물었다.

 

7.

 

왜 그래? 에메트셀크.

 

8.

 

에메트셀크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이건… 꿈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악몽. 그러니까 거리가 활기를 되찾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거다.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쩌저적, 하고 사방에서 무언가가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에메트셀크는 메아리쳐 울리는 그 소리가 ‘정답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거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는 어느새 유성우로 바뀌고, 꽃과 나무로 가득했던 거리는 불길에 휩싸였다. 혼 깊숙한 곳에 새겨져 절대 잊을 수 없는 종말의 아모로트다. 그렇지. 눈앞에 서있는 그는 더 이상 괜찮은지 묻고 있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 없었다. 빠드득. 유리에 금이 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춤을 췄던 상대의 얼굴이며 몸이 깨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부신 빛과 함께 열네 조각으로 깨어져버렸다. 세계가 나뉘는 과정을 이렇게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에메트셀크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에메트셀크는 조소조차 짓지 못하게 되었다. 깨어진 조각 몇 개가 모여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작고, 불완전한 무언가로. 혼의 반짝임은 다소 약해졌지만 그 색은 똑같은 것이, 어떤 모습이 될지 에메트셀크는 알고 있었다. 저 정도 조각들이라면 원초세계의 영웅의 모습이 되겠지. 그러나 에메트셀크는 영웅으로 변한 조각들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불쾌할 것만은 확실했다. 서둘러 이 꿈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영웅의 형상이 입을 열었다.

 

9.

 

에메트셀크는 겨우 눈을 떴다. 악몽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식은땀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 그것보다 지금 현실이 더 끔찍하다는 거지. 잘 알고 있다. 수많은 동포들을 희생시켜 조디아크를 만들어냈음에도 이 세계를 지켜내지 못했다. 나는 동포들을, ‘너’를 만날 자격조차 없는 죄인이다.

…하지만, 꿈에서조차도 그럴 필요는 없었잖아. 울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눈물은 마른 지 오래인지라 눈동자는 그저 건조하기만 했다. 그런 자신의 신세를 자조하고 있었는데, 가까운 곳에서 영웅의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 그를 마주친다면 방금 꾸었던 꿈이 다시금 상기될 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 자는 불완전한 것 주제에 표정이 왜 그러냐고 하겠지.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는 우리의 숙원을 방해하는 자이므로, 그의 앞에서는 쓸데없이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에메트셀크는 몇 번 몸을 뒤척이더니 다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영웅을 마주치는 것보다야 그게 나았다. 눈을 감고는 간절히 바란다. 이번만큼은 꿈조차 꾸지를 않기를. 꼭 꾸어야만 한다면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기를.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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