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Hot Collection

[오버워치/맥리퍼] 토마토 시금치 뇨끼

원제는 [당신의 식탁]

괜찮아 by 흠.ㄴ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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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링크]<2017.02.11>

음… 원본에서는 신고(?)로 성인본이 되었던 건데 제가 그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맥크리는 가슬가슬한 감자의 껍질을 벗겨내고, 삼등분해서 잘랐다. 안쪽의 심지는 아직 식지 않은 상태이다. '감자으깨기'에 넣고 손으로 쥐자 감자는 꼬물꼬물하고 흘러나왔다. 꽤 많은 양을 다 으깨고 간을 할 때까지 레예스는 수화기 건너편의 누군가와의 언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레예스의 목소리에는 참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연히 흥미가 갔지만 맥크리의 머릿속에 넌 나에게 관심이 너무 많다고 말하던 레예스의 모습이 떠올라 눈을 가린다. 힐긋 시선으로만 그를 바라봤다가 밀가루 포대를 쥐며 시선을 떼냈다. 관심 없거든. 촘촘한 체 위에 밀가루를 뿌려넣고 살살 털어 감자를 하얗게 덮었다. 원하는 것은 씹었을때 이에 살짝 달라붙는 느낌이 드는 정도로 쫄깃쫄깃한 식감이다. 계란을 찾다가, 레예스가 들을 수 있게 카운터를 두드렸다. 두어 번 두드리자 삐딱한 시선으로 통화를 이어가던 레예스는 아, 뒤늦게나마 생각난듯 옆자리에 놔뒀던 계란 4개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레예스가 심부름으로 가져오기로 했던 것이다.

평소에 그는 요리하는 주변을 서성이는 편이다. 맥크리는 거슬려했지만, 그가 없으면 좀 심심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거슬리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가끔이지만 맥크리가 중간중간 먼 냉장고에 가야한다거나 손을 씻고 있을때, 오븐에 팬을 넣어준다던가의 간단한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오버워치에 투입된 뒤에도 요리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오버워치 소속의 옴닉 주방장은 이미 수준급의 실력자였고, 맥크리도 나오는 음식에 굉장히 만족하는 바였다. 하게 된 이유는, 글쎄. 맥크리는 조금 고민하며 포크로 푼 계란을 볼에 넣어 반죽했다. 덩어리가 되기 전에 허브를 더했다. 방금 잡은 송아지의 허벅지살처럼 반죽은 따듯하다. 부드럽다. 그 중독적인 감촉에도 덩어리가 된 뒤에는 너무 뭉게지거나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살살 어루만지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손가락 마디보다 조금 작게 반죽을 종종 썰고, 뽀얀 밀가루를 살살 뿌려 조각들이 들러붙지 앉도록 늘어놨다. 단숨에 끓기 시작한 것들이 레예스의 목소리를 가린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뇨끼 반죽을 우르르 넣자 부글거리느라 엉망진창이긴 했지만 여전히 맑았던 물이 단숨에 희뿌옇게 번진다. 뇨끼들은 한 순간에 가라앉는다. 요란하게 보글거리던 소리도 잦아지고, 그 위로 방금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레예스의 통화하는 목소리가 올라온다.

카운터 너머로 다시 눈으로만 그를 바라봤다. 가브리엘 레예스. 그를 지칭하는 여러가지 명칭을 떠올렸다. 누구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모델로 한 것이 틀림없는 영화도 있었다. 총알이 없을때는 총으로 머리를 으깨놓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인 공포/스릴러 영화. 아마 두번째 시리즈가 내달 말에 개봉 예정이었던 것 같다.

소스는 토마토로 하기로 했다.

토마토를 가볍게 삶고, 살살 긁어서 그 얇은 껍질을 벗겨놓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반죽만큼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다. 아무리 맥크리의 손놀림이 좋아도 물리적으로 드는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레예스가 그러한 걸 아는 사람이었다면,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맥크리가 했던 남는 거로만 만들거라던 툴툴거림이 귀여운 거짓말임을 알았을 것이다.
맥크리는 껍질을 벗겨 다듬어 둔 토마토를 수저로 푹푹 으깨며 달궈진 후라이팬에 볶았다. 생토마토의 향이 날 것 그대로로 퍼졌다. 새큰하게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특유의 달콤함으로 사라진다. 씻어둔 시금치를 듬뿍 올리고 토마토가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뒤섞었다. 생풀이 익어가는 소리가 자작하다.

아주 샛노란 레몬 하나를 반으로 갈랐다. 하나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스 위에 뿌리고 옆에 주전자 가득 떠놓은 얼음 물 안에 남은 껍질을 빠트렸다. 식사와 곁들여 마실 음료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남은 반을 살짝 입에 물었다가, 새큼함에 진저리치고는 항아리에 쥐어짜고는 그것도 빠트렸다. 얼음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위를 가시게 해준다.

이제 둥둥 떠오르기 시작한 뇨끼들을 건져내고 후라이팬을 하나 더 달궜다. 타일 모자이크를 하듯 하나하나 집어다 후라이팬에 빼곡히 뇨끼를 구워냈다. 겉표면은 수저 끄트머리로 두드리면 두드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만 노르스름하게 굽는다. 아까 전 토마토가 익는 냄새가 풍길 때부터 레예스의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맥크리는 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럴 틈이 없었기도 했지만, 신경쓰지 하지 않는 척하는 것에 골똘한 탓이다.

구워낸 뇨끼를 전부 토마토와 시금치에 쏟아넣고 또 다시 볶았다. 버터를 커다란 조각으로 잘라 전부 녹을 수 있도록 뒤적거렸다. 토마토는 대체할 수 없는 특이한 냄새를 가지고 있는 재료다. 토마토가 으깨지고, 구워지는 그 냄새가 열기 위에서 버터와 뒤섞이는 이 순간을 맥크리는 아주 좋아했다.

맥크리는 언젠가 이 토마토와 버터의 냄새를 가리켜 풍요롭다고 한 적 있었다. 아주 이전의 이야기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표현이 뜻하는 바보다는 맥크리가 그러한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는 것이 더 컸어서, 입 밖으로 꺼내 표한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지만 언제나 이때마다 맥크리는 머릿속으로 풍요롭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소금을 집어 넓게 뿌렸고, 허브도 좀 더 더했다. 팬을 내려놓고 접시를 준비했다. 두 개.

레예스는 레몬이 든 주전자를 기울여 물컵을 채웠다. 물이 흐르는 소리는 극적으로 우아하다. 맥크리가 요리하고 젖은 손을 수건에 닦으며 앉아있으면 테이블로 옮기는 것은 레예스가 자처했다. 아주 이상한 경험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레예스는 매끄럽고 가볍게 차려냈다. 그가 넘겨준 물잔을 홀짝이며 천천히 차려지는 상을 봤다. 곁들여먹을 양배추 절임과 짠 맛이 거의 나지 않는 하얀 치즈를 담아둔 종지가 먼저 나왔다. 한 사람이 한 접시씩 먹을 것이지만 양은 거의 두어 사람이 먹어도 부족하진 않을 정도로 요리가 가득 담긴 접시가 각각의 자리에 놓여졌다.

"다음엔 차갑게 할까봐요."

"그 편이 편해?"

"비슷비슷."

흠. 의자를 뒤로 빼고 맥크리의 맞은 편에 앉으며 레예스는 알쏭달쏭한 반응을 보였다. 맥크리가 저것이 마음에 안들어서 보이는 반응인지, 아무 생각이 없어서 보이는 반응인지, 몰라서 보이는 반응인지를 알게 된 것은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이다.

"차갑게해서 과일이랑 넣고. 좀 달콤하게."

"오호."

레예스는 포크로 뇨끼와 시금치를 같이 찍어눌렀다. 맥크리는 포크를 손아귀에 쥐고, 떠올리는 도구를 쓰듯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레예스는 주로 포크의 머리 주변까지 손가락으로 덧대 눌러 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멀지 않은 탓에 우물우물 씹는 작은 움직임까지 잘 보인다. 맥크리는 다시 시선을 내려 감췄다.

뇨끼는 제법 바삭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이로 씹으면 표면에 살짝 들어붙었다가 떨어진다. 이가 맞부딪힐 수록 조각은 작아졌다. 들어간 재료들이 하나가 되어 그의 혀를 한 번 덮고, 다 같이 삼켜졌다. 식감은 모두 맥크리가 의도한 바이다. 그가 느끼고 있을 것들을 떠올리며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 뜨거웠던 입이 차갑게 식어드는 동안, 레예스와 눈이 아주 잠시동안 마주쳤다.

다 으깨지지 않은 토마토가 그의 입에 들어갈 때, 크게 벌려진 광대뼈와 턱뼈 사이의 공간이 약간 움푹하게 들어갔다. 열을 가한 토마토는 아주 부드러워 그가 이로 씹지 않아도 혀 천장에 갖다대고 혀로 눌러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뜨듯한 과즙과 함께 뭉개졌을 것이다. 맛을 음미하는 듯 레예스의 시선이 사선으로 떨어졌다. 그는 몇 번 더 우물거렸다. 삼키는 움직임은 제법 크다. 꿀꺽하고 울대가 움직이는 것들까지 곁눈질로 살피느라 사실 맥크리의 접시는 거의 비워지지 않았다. 레예스는 너는 왜 안 먹냐고 눈으로도 물어보지 않았다. 맥크리 혼자서 그렇게 물어보는 레예스를 상상해서 대답하곤 했다. 응,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네. 물론 그가 직접 물어본다면 그렇게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나마 그런 얄팍한 상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야한 생각?"

"아뇨."

"그래?"

"밥 먹는데, 좀."

맥크리는 되려 어른스럽게 대응했다. 그에게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포크로 남은 시금치를 콕콕 집어 먹어 비운 레예스는 거의 먹지 않은 맥크리의 접시를 집어다 자기 접시에 덜어담았다. 맥크리가 포크를 놓지도 않은 채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으니 레예스가 대수롭지도 않은 표정으로 시선을 기울인다.

"나는 하는데."

그는 맥크리의 접시를 돌려줬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양배추 절임을 포크로 찍어 눌러서 입으로 가져다 댔다. 매끄러운 혀 위로 식초와 설탕의 새큼한 맛이 감돌 것이다.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크다. 그를 따라 맥크리도 양배추 절임을 입에 넣었다. 침이 고여든다.
테이블 아래에서 군화가 복사뼈를 문대는 감촉에 맥크리는 고쳐 앉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이 제법 웃긴 꼴일까, 시선을 또 애먼 곳에 떨어트리고 있던 레예스의 아주 미미하게 웃는 눈과 마주쳤다. 뇨끼를 우물거리는 채로 입술이 비웃음처럼 휘어져있다. 맥크리가 의도를 읽으며 구부러지는 동안, 신발코가 다시 가볍게 올라와 정강이 부분까지 슬쩍 길게 문질렀다.

"넌 왜 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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