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연습장 by 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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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명사

1. 별의 위치를 정하기 위하여 밝은 별을 중심으로 천구(天球)를 몇 부분으로 나눈 것.

2. 신성한 자리. 주로 성인(聖人)이나 임금이 앉는 자리를 이른다.

3. 신, 성인, 위인 등 하늘 위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


“후우.”

모용은 긴 한숨을 내쉬며 제단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의 손등을 내려보았다. 초승달을 휘감은 뱀이 새겨진 손등. 성좌가 이 인간은 내가 선택했다는 증거로 남기는 문양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1년 전 크리쳐 토벌 중 위험에 빠진 그 순간 그는 개입을 시도해왔다. 성좌, 불신의 묘지기 묘직이 당신의 인생에 개입합니다, 그렇게 푸른 창과 함께 달려들던 크리쳐는 땅속에 처박혔다. 그리고는 그 이후로 그 묘직이라는 성좌는 단 한 번도 말을 거는 등의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특이했다. 인간을 택하는 성좌들은 대부분 인간을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놀이 대상으로 보거나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관여하고 싶어하는데 그는 마치 위험에 빠진 그를 구해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택했다는 듯이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성좌든 인간이든 타인에게 별로 관여하지 않는 모용이라고 해도 이쯤되면 신경 쓰인다. 인간사에 관여한 적이 있는 성좌들이 기록되어 있는 자료까지 찾아서 읽어봤지만 찾아낸거라고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분홍머리카락을 가진 이의 초상화와 불신의 묘지기 묘직이라는 칭호, 지금까지 택한 인간이 한 명 뿐이고 자신이 두번째라는 정보 외에는 전부 성좌 개인의 요청으로 인한 비공개 상태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을 택했는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개입하고는 왜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는건가.

불신이라는 명칭을 달고서 왜?

그래서 그는 꿈을 통해서 성좌와 만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는 이를 찾아가 준비를 했다. 준비한 향로에 불을 지피고 주문이 적힌 배게를 베고 눕고 눈을 감자 금세 잠이 찾아왔다.

“저희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요?”

그리하여 들어간 꿈은 어두운 숲이었다. 환한 달빛이 내려쬐는 숲에서는 들리는 소리가 없었으며, 침묵과 어둠 속의 나무 위 앉아 있던 이는 조용히 모용을 내려보며 길고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초상화에서 본대로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고 긴 한숨 소리로 자신을 맞이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화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위에 계속 계실건가요?”

“당신은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이렇게 먼저 손을 내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저라고 해도 신경 쓰입니다. 게다가 저를 방해한 것도,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도와주셨으니까 은혜도 갚고 싶거든요.”

나무 위에 있던 그가 아래로 내려왔다. 여전히 그늘에 반쯤 가려졌지만 그래도 환한 달빛이 그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분홍색 머리카락 사이로 한쪽이 부러져 하나만 남은 새빨간 뿔이 달빛을 받아서 반짝거렸고 면사 넘어로 흐릿한 검은 눈과 마주쳤다. 바람에 살짝 휘날린 면사 아래의 입술은 일그러져 있었다. 어느새 손에 삽을 든 묘직이 땅에 그것을 꽂아넣고 거기에 기대고는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저 같은 힘 없는 성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지금까지 한 것처럼 지내세요.”

“그럼, 지금 저에게서 가호를 거둬가십시요.”

손을 내민다. 손등에 그려진 문양은 지워지지 않는다. 삽이 더 깊숙이 땅 속으로 파고든다. 문득 그의 손을 잡고 그늘 밖으로 당기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당신은 그가 아니야.”

“제가 누굴 닮았습니까?”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숲에 울렸다. 그는 손 쉽게 삽으로 흙을 퍼내더니 그 흙들을 모용에게 뿌렸다. 축축하고 기분 나쁜 흙내음과 함께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에서 떨어질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사촌의 말에 모용은 머쓱하게 웃으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가는 사촌을 배웅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손등을 보았다. 가호가 사라져서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손등을 보면서 늘 그날을, 그리고 그 전의 날들을 후회한다. 면사 넘어 그 얼굴을 봐버렸을 때 떠올린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기와 다른 세계에서 만난 날들을, 그 땅을 전부 덮은 전쟁을 그리고 그 전쟁에서 먼저 죽은 것은 나였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자신을 과거에 두고 친우가 앞으로 나아가길 바랬는데, 그는 결국 자신의 영혼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다. 무슨 일을 경험했는지, 어떻게 나를 찾았는지 묻기도 전에 당신이, 그냥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길 바랬다면서 가호를 거둬가고 나서 단 한번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떠올린 기억들은 너무 단편적이라서 죽은 그 순간만이 생생하고 나머지는 아직 저 밑 안개에 가려져 있다. 어쩌면 더 기억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그러는 건지 도 모른다. 그럼에도 온전히 무시할 수 없어서 자신의 사촌에게 가호를 내린 건지도 모른다.

“고공, 그래도 언젠가는 이전처럼 다시 보름달처럼 나타나주실 바랍니다.”

그저 오늘도 이렇게 기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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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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