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노크 소리에 문을 열자 힘차게 인사 해오는 낯선 이의 팔에 둘러진 완장에 새겨진 익숙한 그 길드의 문양에 천룡은 반사적으로 문을 닫으려고 했으나 토키의 손님이신가요? 물음에 겨우 참고 그는 안으로 손님을 들였다. 선물용 음료수 박스를 내려놓은 그는 넉살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토키가 내민 믹스 커피를 받았다.
“고요와 같은 길드에서 근무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다른 지역 출장 간 사이 그녀석 길드 그만 두고 프리랜서가 되었다는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 녀석은 묘하게 이별에 있어서는 타이밍이 안 좋군, 천룡은 십년 전 일이 생각나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근데 이 길드원은 나를 모르는 걸까? 그러면 고요보다는 후배이려나? 아마 자신은 모르는 고요를 알고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속이 살짝 쓰려 커피가 뜨거운지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근데 이렇게 만나러 왔는데 또 없네요, 하하.”
“고요상이라면 요 앞 마트에 가셨으니 금방 오실 거예요.”
“다행이네요. 그녀석이랑은 어떻게 잘 지냅니까? 길드에 있을 때를 생각하면 이녀석이 어떻게 지낼지 상상이 가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고요상이 길드에서 어떻게 지냈는데요?”
토키가 눈을 크게 뜨며 묻자 천룡의 머릿속에는 언젠가 길드에 갔을 때 본 고요의 모습이 생각났다. 자신이 온 줄 모르고 있던 고요가 무표정으로 제 앞에서 뭔가 열심히 말하고 있는 이에게 그래서? 라고 말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게 평소 길드에서 일하는, 자신이 모르는 고요라면 저쪽이 나름 걱정해서 얼굴을 보러 올만도 하지.
“그 녀석 퇴근은 합니까?”
“그렇게 부려먹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런게 아니라 그녀석 길드에서 일할 때 새벽 3시 팀장님이라고 불렸으니까요.”
“그건 뭔 별명이래?”
“왜 저희들 일하다보면 야간 근무가 종종 있잖아요. 그럴 때에 본부에 뭘 두고 왔다든가, 문제가 있다든가, 의뢰인이랑 연락해야한다든가 싶어서 새벽에 길드에 전화하면 십중팔구 그녀석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누가 너는 퇴근 안 하냐? 하고 물었더니 그녀석이 집이나 탕비실이나 똑같다고 한 뒤로는 그렇게 부르더라구요.”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에 짐정리를 위해서 찾아간 고요의 집을 떠올려본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주제에 먼지가 그득한 방. 보일러는 꺼져 있고 창문도 굳게 닫혀 있고 밖을 가린 커튼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
“고요상이 그렇게 딱딱했어요?”
“말도 마십시요. 그 녀석 웃는 얼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겁니다. 저는 본 적 있지만요.”
“그거 참 귀한 경험? 이라고 생각할까요?”
“제대로 본 건 아니고 그 녀석이랑 야근을 하게 되었는데 간단한 서류 작업이라 쉴 겸 그 녀석에게 술을 먹인 적 있거든요.”
“뭐?”
“네?”
취했나? 취한 모습은 나도 못 본 거 같은데 말이야. 귀가 솔깃해져서 그를 보니 다시 한 번 크게 웃는다.
“이야기 왜 거기까지 갔는지 모르겠지만 죽으면 무사히 성불할 거 같냐고 물었더니 그녀석 웃으면서 아니, 악귀가 되겠지, 하더라구요. 그래서 왜? 했더니 걍 웃더라구요. 하여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토키도 어깨를 으쓱한다. 천룡은 이제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면서 이유를 짐작한다. 십 년 전, 죽은 이들이 그렇게도 괴로웠나. 죄책감에 성불하지 못할 거 같았나. 그렇다면 지금 너는 무슨 대답을 할까.
“아무튼 잘 지낸다면 다행이지만-”
“너!”
어느새 장바구니를 잔뜩 들고 들어온 고요가 꽥 소리를 치자 호탕하게 그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도망쳤고 토키는 익숙하게 남은 커피잔들을 들고 탕비실로 사라졌다.
“아니, 언제 온거야?”
“저녀석 이상한 이야기라도 했어?”
“악귀 어쩌고 하는 걸 들었지, 새벽 3시의 팀장님.”
장바구니를 내려놓던 손이 멈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작게 꿍얼거리는 것이 쓸데없이 귀여워 보여서 천룡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지금도 악귀가 될 거 같아?”
“아니, 그건. 아니고, 지귀가 되지 않을까?”
지귀? 지귀가 뭐였더-
“크흡.”
“에라이, 성불이나 해!”
탕비실에서 나오려던 토키가 다시 쏙 들어갈 정도로 큰 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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