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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로 가득 찬 공간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영장, 혹은 목욕탕이라고 할까 타일과 지직거리는 전등 그리고 물이 전부인 공간. 부대에서는 이곳을 무한한 수영장이라고 불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출입구가 무작위로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곳, 계속 이동하는 출구를 찾지 않으면 나가지 못하는 곳, 그래서 부대는 종종 사람을 보내서 혹시 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구조하고는 했지만-
‘오히려 들어간 부대의 소식이 끊기는 일이 있군.’
다른 곳에 비해서 위험도가 낫다고 해서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다시 깨달으며 그는 앞으로 걸어갔다. 어디선가 짐승이 우는 것 같은 울림이 들린다. 여기에 사는 생물은 없으니 그냥 소리일뿐일테지만 인간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거대한 구덩이와 허공에 매달려 있는 그네를 질러 자길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드는 고무 오리들을 헤치고 나아가 보니 바닥에 흝어진 붉은 액체가 보였다.
무슨 일이 있기는 했군, 그는 떨어져 있는 피를 따라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을 지나가니 시야에 그 피의 주인으로 보이는 이가 물 위에 둥둥 떠 있다. 아는 얼굴은 아니지만 부대의 전투복 차림이었기에 시체에서 인식표를 찾아 챙긴다. 늘 구조가 바뀌는 곳이라 여기 두고 가면 시체를 찾지 못하게 되겠지만 들고 갈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임무는 살아 있는 사람의 구조고, 시체까지 옮기에는 손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다시 앞으로 향한다. 사람을 찾는 건 언제나 힘들다. 자신의 감각은 여기서 출구와 길은 금방 찾을 수 있지만 생명의 기척을 찾기는 힘들다. 그래도 이게 일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살아있는 인간의 기척을 찾고 그걸 쫓아서 더 깊이 들어간다.
“고공.”
그리고 도착한 밑이 보이지 않는 수영장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플라밍고 튜브 위에 누워 있는 익숙한 분홍 머리카락이 보였다. 불러봤지만 반응이 없기에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여서 부르자 움찔 몸이 작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살아 있나? 자세히 보니 가슴팍이 숨을 쉰다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보이고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는 시선과 마주쳤다.
“거기서 뭐 해요?”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튜브가 기우뚱하지만 별로 놀라는 기색없이 이쪽을 본다.
“혹시 지금 패닉으로 저를 환각으로 착각하신다면 지난번처럼 전기 충격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제야 평소처럼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웃는다.
“거기서 뭐 합니까?”
“끼었습니다.”
“튜브에요?”
“네, 여기에 끼고 싶어서 끼어 있는 거 아닙니다. 굴러 떨어졌는데 눈 뜨니 여기네요.”
“다른 대원들은요?”
대답 대신 품에서 군번줄을 꺼내서 흔든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건 제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날개를 크게 펼치고 고공을 안아 들었다. 피곤해,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덜미에 차가운 것이 닿는다. 하지만 딱히 놀라지는 않는다. 몇 번이고 본 고공은 간혹 극한에 몰려서 착란을 일으키고는 했으니까.
“미리 말해두는데 칼로 찔러도 전 안 죽고, 당신이 안겨 있는 전 당신을 버리거나 하지 않으니 심호흡하고 진정하세요.”
출구가 느껴지는 쪽으로 날라가면서 모용주뢰는 천천히 속삭였다. 긴 한숨 소리와 함께 차가운 감촉이 목덜미에서 사라진다. 수영장에서 벗어나 중력이 뒤집어진 거 같은 복도를 지나서 허공을 향해 서서히 내려간다.
“출구가 여기 맞습니까?”
“맞습니다. 떨어트리지 않을테니까 긴장하지마세요.”
잔뜩 긴장했는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시야가 한순간 어두워졌다가 밝아진다. 새파란 하늘과 습기가 확 사라진 건조한 공기가 현실임을 알려준다.
“여기 어디입니까?”
“글쎄요, 지상에 내려가볼까요? 하지만 아래에 보이는 나무들을 종을 봐서는 한국이거나 그 근처 같네요. 출구가 공중이라 이어져 있다니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있는 일인걸요.”
“뭐, 그건 별로 알고 싶지 않네요.”
“자, 그러면 돌아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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