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의 미련

연습장 by 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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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나룻배 위에 자신이 있었다. 사공과 자신만 단 둘이 타고 있는 나룻배는 어둠을 가르고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푸르스름한 달이 검은 수면과 배를 비추고 있는 장소. 딱히 물어보거나 할 필요 없이 모용주뢰는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내일 아침 자신을 깨우러 올 시종의 놀란 표정을 상상하고 말았다. 자신이 나이를 많이 먹기는 했지. 노환으로 죽은 건 호상이려나.

“생각보다 겁을 먹지 않으시군요.”

사공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살만큼 살았으니까요.”

매끈해진 자신의 손을 보면서 주뢰는 대답하였다. 사공이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노를 젓는다. 자신이 죽었고 이곳이 삼도천이라면 눈앞의 사공은 사자인걸까?

“큰 미련은 없나봅니다.”

“저는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그것이 어떤 판정을 받을지는 제 손을 떠난 문제죠.”

“대담하시군요.”

수면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 이제는 기억에 흐릿해진 젊은 시절의 모습이 보인다. 젊은 시절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지나간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주 어릴적부터 시작해서, 이곳저것 떠돌아 다니던 젊은 시절, 전쟁을 지나서, 뿌리를 내리고 산 그 뒤의 삶. 죽음 뒤가 아주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말그대로 이미 제 손을 떠난 문제니까 말이다.

자신은 자신대로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았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랄뿐이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가고 있으려니 기억이 한 지점에 닿았다.

“그러보니 저보다 먼저 죽은 이는 이미 강을 건너고 없겠군요.”

“먼저 간 가족이라도 있습니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먼저 가셨죠. 하지만 두 분은 저는 저대로 알아서 할거라고 하고 먼저 가셨을 거 같네요.”

“하하.”

“그리고 만나 보고 싶은 이는 따로 있었거든요.”

“누군데요?”

“친우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소식이 끊어졌는데 끝나고 몇 년 지나서야 뒤늦게 전쟁 중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전쟁 마무리로 어머니를 돕다가 겨우 시간 내서 다시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늦어서, 시체 없는 장례식은 오래전에 끝나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체를 보았더라면 보내는 것이 쉬웠을까요.”
“모르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저는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는 저에게 새장이었는데 저는 그에게 뭐였는지 말입니다.”

시간의 흐름의 친우의 목소리와 얼굴이 흐려지면서 꿈에서조차 나오지 않는 그에게 언제나 궁금했다. 서랍 속 초상화가 낡아서 더 이상 확인도 복구도 불가능했을 때, 찾아온 미련. 친우의 마지막, 그는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을까. 그는 자신을 뭐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괜히 그의 인생에 괜히 끼어들었을까, 하는 감정.

“물론 이미 친우도 다시 태어났을지도 모르지만요.”

“아니면 다시 태어나는 것을 거절했을지도 모르죠.”

사공이 어깨를 으쓱한다. 가느다란 웃음과 어깨가 들썩인다. 배가 목적지에 닿았는지 작게 쿵,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흔들거리는 배 위를 사공의 부축을 받아서 땅으로 내려간다. 사공의 거친 손과 부드러운 웃음과 마주하고 땅에 내리고 나서야 그는 사공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다녀와요, 언제나 늘 그랬듯이 말입니다.”

“늘 저만 떠나네요.”

“전 머무는 삶을 좋아하거든요.”

그리 말하고는 이번에는 먼저 배를 나룻터에서 밀어내어 떠나간다. 둥실, 멀어져서가는 배를 이번에는 자신이 배웅하면서 그는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지. 지난 미련을 토해두고 나그네는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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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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