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차려먹기

[하이큐 드림] 우천 후 무지개 주의보

아카아시 케이지 x 야나기 마시로

💙🩷 by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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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한 잿빛 하늘이 온몸을 내리누르듯 무거웠다. 야나기 마시로는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곤, 창문을 밀어 닫았다. 세상이 전부 물 속에 가둬진 습기가 호흡을 타고 폐 안까지 들어차는 기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울감, 이라는 단어가 그냥저냥 잘 어울렸다. 이대로 물에 섞여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약속도 없고, 친구들과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는 메신저 화면을 켜면, 삼삼오오 모여서 곧 시험 볼 준비를 해야 한다던가, 본인은 종강을 했다느니 … 야나기 마시로는 공감할 수 없는 주제들로 삼백 개 하고도 넘치게 쌓여있는 메세지를 죽 내려 알림을 없애버리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은 이내 검게 변했다. 핸드폰과 이어폰 정도만 챙기고 모자에 후드까지 뒤집어 쓴 야나기는 현관을 나섰다.

우울하니까, 비가 오기 전에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익숙한 길을 따라 가볍게 발을 놀렸다. 전력으로 달리는 것 보단,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러닝하는 게 중요해요. 보쿠토 씨한테 맞출 필요 전혀 없으니까. 귓가에 과거의 편린이 물기를 머금고 떠다녔다. 괜히 이어폰을 귀에 마구잡이로 눌러댔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학교가 보였다. 학교 건물 전면에 새겨진 후쿠로다니(梟谷). 두 글자에서 시선을 거둠과 동시에,

툭. 투둑…….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대처할 새도 없이 몸을 내리누르다 못해 감쌌다. 평소라면 오늘은 운이 안 좋았다고 웃었을 사소한 일인데도 속에서 우울감이 미친듯이 역류했다. 물이 들어차다 못해 토해졌다. 고여있던 나에게 물을 부으면 넘쳐흐를 수밖에 없잖아. 아예 움직일 마음도 들지 않았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주저앉아 있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 … 야나기, 씨? ”

반사적으로 돌아본 시선이 아래부터, 점점 위로. 빗물 사이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하얀 운동화. 비 오는 날에 하얀 운동화라니, 겁도 없지. 검은 교복 바지와, 익숙한 색… 물빛 넥타이. 방금 본 후쿠로다니의 교복인것을 알아채는 건 별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미 젖다못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머리카락만 겨우 지킨 내 꼴이 말이 아닐 걸 알았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모르는 척 했다. 제발 가, 제발… 속으로 기도하듯이 빌었다. 비단 피하고 있던 인연과의 운 나쁜 만남 따위가 아니었다. 제일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하필 제일 초라할 때 보였다는 게 문제였다. 그 애에게, 언제나 강한 모습만을 보여주려 했었던 탓이다.

그 앤 하얀 우산을 들고 있었다. 야나기가 발을 옮기려는 순간 교복을 입은 소년이 다급하게 외쳤다.

“ 잠깐만요. 안 붙잡을 테니까 … 이거, 쓰고 가세요. ”

소년은 주저앉은 야나기에게 다가가 기어이 항상 도망을 치던 그 손을 잡고, 새하얀 우산을 작은 손에 쥐여주었다. 야나기 마시로는 뒤를 돌지 않았다. 젖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양 아예 한쪽 무릎까지 꿇고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펴 손잡이 부분을 손바닥에, 다시 손가락을 접어 주는 짧은 찰나에 이미 회색빛 자켓은 짙은 잿빛이 됐다. 하얬던 운동화는 이미 흙탕물인지 무언지 덕지덕지 더러워졌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켜 원래 가려던 방향의 반대 쪽, 뒷문으로 돌아 들어갔다. 그 애가 멀리, 아주 멀리……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우산이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갑작스러운 소나기는 학교에서 등교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릴 때 거둬졌다. 약 10분의 짧디 짧은 호우는 고작 세계를 잠기게 하지도 못할 만큼 얕은 하수구에 빨려들어갔으나, 하늘에 제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겼다. 프리즘이 선명하게도, 완곡한 곡선을 그리며 학교 건물의 너머로 띄워졌다.

어딘가에서 들었던 이야기. 무지개는 신이 인간과 약속한 증거라던데. 이 우산을 쥐여주고 간 네 뒤로 새겨진 무지개는 그럼, 언젠가 널 만나러 와 달라는 약속, 내지는 협박인걸까.

야나기 마시로는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을 펼쳤다. 비를 피하려는 게 아니라, 마치 … 하늘을 가리고 못 본 체 하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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