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빛깔의 땅 1

키타모토 헤이키 X 산죠 엔마 1차 페어 창작물 / 복지를 위한 챌린지

1차제면소 by 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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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에는 사막이 꽃을 피우기 전 무지개가 뜬다는 민담이 있다.

밤하늘을 지키는 아치인 은하수가 여름을 맞아 길어진 낮에 적응치 못하고 사막의 모래 알갱이 위에서 길을 헤맨다. 너는 별이 아니냐며 모래 하나하나에게 말 거는 게 시끄러웠는지, 땅속에서 잠자던 씨앗들이 ‘땅을 어지럽혀 아지랑이로 생물을 해하지 말고, 빗방울을 타고 하늘로 돌아가라’ 호통치는 이야기. 그가 수백 년에 한번 슬쩍 지상에 내려와 밝은 하늘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밟은 빗방울이 그를 닮아 빛나는 모양이 사막에 뜨는 무지개라는 이야기. 비가 멈추지 않고 오기 시작한 날, 사막에 초원이 부활한 그날, 크게 피어난 무지개를 끝으로 키타모토는 사막을 영영 나왔다. 돌아갈 수는 없다. 길 잃은 은하수가 땅에 뻗은 발을 보고 말았으니까.

온빛깔의 땅
w. 대침 X(formally Twitter) @soo_owner

산죠가 파우스로 떠났다. 아라타 씨께 찾아달라고 부탁 받자마자 휴가를 냈다.

답지 않게 왜 그런 곳을 갔을까 생각하며 어떤 기내식이 맛있을 지 간단하게 구글링했다. 해물 옵션에 눈이 간다. 공중에서 바다를 그리워하는 모순을 즐기고 싶지만 리스크가 크다. 비행기에서 갑자기 부풀더니 주황색 통을 허벅지에 찌르는 법의학자라… 끔찍하다. 그럼 고기로 갈까. 구운 고기는 거기서 거기일 것 같으니…. 여러 블로그, SNS 탭을 끄고 예매 사이트로 돌아가 결제를 마쳤다. 워낙 갑작스러운 지출이라 비즈니스는 꿈꿀 수 없다. 창문석이면 됐다. 1기수에서 연락 받은 건지 곧 휴가가 승인되고 주말 업무 시프트 긴급조정이 필요하다는 안내문이 사내 메신저 공지로 올라왔다. 알람음이 울리기도 전에 야마다 씨가 키타모토 무슨 일이야!? 라고 외쳤다. 곧 개인 메신저로 1기수 측에서 비행기 왕복편 값의 반을 보너스로 지급하겠다는 말이 왔다. 반씩이나. 누구 코에 붙이라고. 감사하다고 답한 뒤 6시가 조금 넘어 짐 들고 퇴근 도장을 찍었다. 뭐야! 뭔데! 하는 외침이 복도에 울린다. 당장 내일 오후니까 집에 들어가자마자 씻고 짐을 싸고 일찍 가서 환전해야겠다. 내 카드를 거기서 쓸 수 있던가? 덜컹거리는 지하철 차창에서 산 너머로 해가 진다. 하루 뒤면 모래산 뒤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겠지. 눈을 잠시 감고 지하철의 덜컹거림을 사막을 가로지르는 지프차에 대응시킨다.

공항에 도착해 1기수에 연락을 취했으나, 산죠와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당신 빼고 없다고 알아서 하라며 전화가 툭 끊겼다. 그들에게 따로 연락이 없다는 건 산죠는 이번 기회에 사전 조사만 진행하고 현장에서 대기하겠다는 말이다. 근데 굳이 나를 보낸 걸 보면 켕기는 점이 있다는 건가? 엔마 씨는 어떤 사건을 의심하느라 이런 변방까지 온 거지? 사건으로 인한 건가? 나라 몇개를 경유하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털털거리는 포장도로 위를 달리고 나니 전신이 쑤신다. 폭신한 호텔 침대 위에서 잠이 밀려오는 와중 진동에 문자 메세지를 확인했다.

‘항상 산죠 씨 일로는 머리 잘 굴리시잖아요. 발견하면 연락 주십쇼‘

신경질적으로 폴더폰을 덮었다. 잘 굴리니 마니 웃기네. 돈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이건 무슨 태도야. 갑자기 해외로 향한 일은 만나고 처음이다. 행동 가설을 수립하기 위한 빅데이터가 부족하다. 별나게 굴어도 실적이 좋고 협력이 필요하면 재깍재깍 연락하니 더 캐묻는 사람이 적다. 그러니 더더욱 타인에게 흩어진 정보조차 얻을 수 없다. 사막은 왜요? 라고 한 번쯤 물어봤으면 됐잖아. 다들 산죠 엔마에 관심 가지는 순간 기수를 그만두게 된다는 소문을 아주 좋아한다. 1과에 마녀가 내린 저주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게 하잘것없다. 거짓말도 유분수지. 도를 넘은 열등감을 갖게 되는 게 두렵다고 해. 그래도 이번 기수는 잔존율이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일 맡긴 사람들 생각을 더 해서 뭐하나. 스스로 뺨을 몇 대 때리고 근방 호텔부터 들를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 라운지에서 받아온 지도를 펼치자 타오르는 태양처럼 가지 뻗은 사막이 보인다. 파우스는 유명하지 않다. 애초에 사막이 인간을 환대하는 장소가 아닌 만큼, 주변 도시가 유명하거나 모래 외에도 관광자원이 있는 세계 6대 사막을 가고 굳이 여길 오진 않겠지. 그럼에도 외지를 찾는 매니아층이 있기 때문인지 관광업에 구멍이 나 있거나 사막 관리를 소홀히 하진 않았다. 시골의 마을버스처럼 오가는 차가 적고 규모가 작을 뿐. 사막의 일출, 사막의 밤하늘 구경, 사막을 대각선으로 질러 건너가는 코스를 알차게 즐기려고 모두 예약해뒀다. 적금이 바스진 건 뒷전으로 미뤘다. 짐을 풀고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다는 광장에 들러 산죠가 있는지 두리번거렸으나 희붉은 머리칼은 보이지 않았다. 사막에 들어가기 전 자주 묵는다는 숙소 근처 카페를 여럿 들러 커피 한 잔하며 두어 시간씩 감시해도 보이지 않는다. 보통 이러면 커피에 익사 당하기 직전의 키타모토와 눈이 마주쳐 뭐야? 하고 한 마디 얹어야 한다. 이번엔 익사 당할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부른 배를 잡고 일어나 비척비척 호텔로 향했다. 일단 내일 아침은 모래산을 즐겨야지.

꼭두새벽에 일어나 예약한 호텔 서류를 보여주니 호텔의 반대편 입구로 나가라고 안내 받았다. 큰 밀짚모자를 빌릴 수 있었으나 괜찮다고 했다. 사막을 오면 버켄스탁과 반바지 차림을 하고 싶었다. 모자는 쓰지 않고 멋을 위해 번쩍거리는 선글라스를 끼는 것. 사막 고수 같은 차림으로 입고 싶었다. …이게 아닌가? 새벽에 뭐 선글라스를 싶지만, 낮에는 죽어도 못 나올 것 같아서 그만. 산죠와 함께 왔으면 씌워주고 싶다고 괜히 빌렸을 텐데 아쉽다. 파우스의 모래산은 도시에서 거리가 있고 높은 편이라 바퀴 큰 지프차를 타고 20분 정도 올라야 한다고 했다. 오늘 이 시간에 출발하는 건 2명이라고 서로 잘 해보라는 농담을 치고는 어깨를 툭 두드리는 가이드를 향해 머쓱하게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서 무리라는 말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기엔 영어가 짧다. 여러 숙소에서 한 업체에 맡기는 모양인지 멀리서 다른 가이드와 누군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머리는 산죠와 비슷한 길이지만 은발이었고 무엇보다도 키가 그보다 컸다. 변장은 아니겠구나. 밀짚모자를 들었을 때 검은 선글라스와 중년 정도 되어 보이는 얼굴을 슬쩍 보였다. 이 사람도 누군가를 찾으러 왔을까. 도움 되지 않는 상상을 마치고 가이드를 따라 지프차에 올라 탔다. 한참을 가다 여기부터는 걸어가야 한다며 모래산 중턱에서 차가 멈췄다. 앞사람이 딛는 발자국을 따라 한 발 한 발 딛으면 양말을 신지 않은 발에 모래알이 침범해왔다. 해변의 모래와는 다르게 더 곱고, 발이 푹푹 빠져 힘들었다. 다 오른 모래산 끄트머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해가 뜨려면 몇 분 정도 남았다고 한다. 다들 새벽 일은 힘든지 곧 떠들하던 가이드들도 조용해졌다. 같이 온 사람은 제게서 멀리 앉아 고개를 올리고 눈을 감은 채 명상을 즐기고 있었다.

….

새벽의 사막은 조용하고 어둡고 춥다.

산죠는 이 사막의 어디에 있는 걸까. 몇 일 못 봤다고 보고 싶다. 같은 땅을 밟고는 있는 거겠지?

금방 뜬다더니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얹은 순간 옆 사람이 뒤척거리며 일어났다. 가이드의 앞을 응시하라는 말에 무릎에 관자놀이를 둔 채로 눈을 떴다. 하늘의 색이 변하며 흰 원이 모래 너머로 머리를 낸다. 파우스 사막에서 보내는 반나절은 그렇게 마무리 맺고 또 시작됐다.

———

소재가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지만 ….

잘 써나갈 수 있기를.

첫 노래는 민담에 어울리는 걸로 골라봤습니다.

마무리 노래는 이것.

둘 모두 <지구소녀 아르주나> 라는 애니메이션의 사운드 트랙입니다. 좋아하는 분위기라 많이 쓰게 되네요.

구부정하게 쪼그려 앉아 일출을 가로 보고 있는 키타모토의 어설프게 들뜬 마음, 약간의 불안감,

아침 사막 풍경, 잠에서 깨어난 마을이 복작복작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골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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