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히데소피
로즈 케네디가 말했다. ‘폭풍 후엔 새도 노래하는데 사람은 왜 한 줄기 빛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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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월요일, 힐데브란트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드래곤 홀을 걸었다.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지만, 이제야 도착하는 아이들이 곳곳에 있다. 섬에서는 지각이 미덕이다. 교실로 들어갈 생각 없이 복도를 헤매는 아이도 있고, 아예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도 있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고, 힐데브란트는 아직 그들 전부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못하니 강요하지 않는다.
힐데브란트는 평소와 똑같이 조교실로 들어가서 채점해야 하는 시험지 뭉텅이를 보았다. 대부분은 제대로 풀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문제부터가 엉망이니, 힐데브란트는 차라리 아무도 시험에 진지하지 않은 지금의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드래곤 홀은 학교지만, 학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그나마 멀쩡한 교사라고는 옌 시드 뿐이다. 힐데브란트가 옌 시드를 두려워하면서도, 대마법사에게 항상 많은 것을 기대하는 이유다. 그 마법사조차 없었다면, 모든 배움은 길거리에서만 발생했을 것이다.
“일찍 왔네?”
힐데브란트와 같이 마법사의 제자인 소피가 우산을 접으며 조교실로 들어왔다. 오라돈에서 스승을 따라온 그녀는 점점 섬의 생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요.”
서류에 머리를 묻은 힐데브란트가 건성으로 답했다.
소피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묻지 않았다. 지난밤부터 폭우가 이어지고 있다. 후배는 비를 많이 힘들어했다. 소피는 커튼을 쳐서 빗소리를 줄이고, 힐데브란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후배가 평소보다 더 예민한 건 알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잠시 자도 돼, 힐.” 소피가 제안했다.
“괜찮아요.”
“혼자서는 못 잠들잖아. 잠시 누워 있어.”
“정말로 괜찮….”
힐데브란트가 거절했지만, 소피에겐 통하지 않았다.
“힐데브란트.”
단호하게 후배의 이름을 부른 소피는 억지로 그의 손에 들린 종이를 내려놓게 했다. 자신보다 나이도 머리도 두 개는 더 큰 후배는 오늘 다크서클을 감추지도 않았고, 셔츠도 제대로 다리지 않았다. 곳곳에 비로 인한 물기도 남아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될까요?” 포기한 힐데브란트는 몸에서 힘을 빼고 소피에게 기대 중얼거렸다.
“응, 안 돼.”
소피가 엄격하게 답하곤 힐데브란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힐데브란트는 그녀를 말릴 수 없단 걸 알아, 소피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조교실 책장 옆 낡은 소파에서 클라미스를 담요처럼 덮은 후, 몇 번 몸을 뒤척이던 힐데브란트는 등받이 쪽을 보고 눈을 감았다.
빗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대신 그 자리를 사각거리는 펜촉과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채웠다. 힐데브란트는 여전히 잠들지 못했지만, 점차 진정되는 걸 느꼈다.
새벽 내내 힐데브란트는 폭우를 헤맸다. 빗소리는 힐데브란트를 미치게 한다. 머릿속에서 떠드는 것이 너무 많다. 끝없는 소란. 힐데브란트는 죽고 싶지 않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삶에 대한 재촉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달래줄 누군가를 찾았지만, 이런 날은 부랑자조차도 몸을 감추니 힐데브란트는 오롯이 홀로 외로웠다.
힐데브란트는 인간의 다정을 믿지 않는다. 그가 섬에서 자란 아이여서 그럴 수도 있고, 전쟁통에서 끝없이 배신당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힐데브란트를 살려낸 건 소피의 마음이다. 그와 달리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의 마음. 힐데브란트는 앞으로도 소피에게 이런 식으로 빚질 일이 많을 거란 걸 알고, 자신은 언제가 되어야 진심을 알고 그걸 소피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모든 잡념이 겨우 조용해지자, 힐데브란트는 소피에게 질문했다.
“…소피, 무지개가 뜨면 모든 게 괜찮아질까요?”
소피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그렇게 되도록 해야지.”
“…고마워요.”
힐데브란트는 그 대답에 기대어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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