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속 무지개

당연한 소리지만 미궁의 안에는 지상의 빛이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당연히 하늘속 무지개도 없다.

하지만 모든 자연법칙을 무시한 채 권위를 지니고 있는 천년의 황금향, 고대의 역사속으로 가라앉은 멜리니 왕국에는 무지개가 비친다.

데르갈의 아들, 에오디오가 미궁속 지상낙원에서도 하늘을 보고싶다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슬은 에오디오의 아버지인 데르갈을 위해, 에오디오가 바라는 하늘을 만들며 무지개를 같이 보여주었다.

…에오디오는 자신이 아닌 데르갈을 위해서만 왕국을 존속시키는 것이 뻔히 보이는 궁정 마술사가 언젠가부터 불편해졌다. 엘프라는 기득권 종족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채 빛도 들지 않는 새장속에 완전히 갇힌 기분이 들어 불안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탁 트인 하늘을 만들어달라 부탁했지만, 지상에서 비칠법한 하늘이 그럴듯하게 올려다 보이며, 그 하늘 속에서 완벽히 이상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무지개를 보아도 그저 하늘이라는 벽지가 생겼을 뿐인 새장속에 계속 발딛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어쩐지 절망하고 말았다. 저 하늘에 비치는 무지개가 아름답게 비칠수록 자신을 거짓으로 우롱하는 공간임이 더욱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젠장, 그 궁정 광대녀석…!

원래는 프리나그 할아버지가 데려온 천애고아일 뿐이면서!

마술을 좀 배웠다고 으스대긴...“

에오디오는 황금향이 아직 바다 밑 지하로 가라앉기 이전,

자신이 어릴적 보았던 지상의 하늘을 바랬던 것도 사실이지만... 고작 자신의 허릿께에 닿고 끝날뿐인 그 어릿광대가 데르갈의 권위를 위임받은 것 마냥 왕국의 모든것을 통제하고 휘어잡는것에 화가 났었다. 그래서 일부러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며 시슬을 도발하고 싶었으나, 어쩐 이유인지 시슬을 통해서 이루는 마술은 그 어떤 불가능한 소원도 이뤄냈다. 그래서 시슬은 황금향의 궁정 마술사로서 불변하는 권위를 가졌다. 그것은 톨맨이라는 인종의 무력한 감각을 넘어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엘프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이래선 무력한 톨맨 왕족들이 그저 엘프 마법사에게 휘어잡혀 사는것뿐이지 않는가!

일부러 교육도 받지 않은 어린 아이를 데려온 보람이 없다.

결국 엘프라는 족속들은 어떤 방식으로던 자신의 마력을 체득하고 유의미하게 쓸 수 있게 되니까.

에오디오가 느껴버린 무력감은 그대로 데르갈에게도 전해졌으며, 이는 곧 데르갈이 우울하지 않길 바라는 시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시슬은 생각했다. 왕국의 주민들이 더이상 위협에 처하지 않게 하였으며, 병에 걸린 에오디오도 낫게 해주며, 거기에 모든 종족이 공통하게 가진 수명의 한계조차 뛰어넘게 해주었는데! 대체 무엇이 불만이란 말인가? 시슬은 유익사자의 힘을 빌려 천지마저 창조해냈으나, 멜리니를 지키는 수호신인 유익사자의 존재처럼 신과 같이 숭배받지는 못한 채, 그저 오늘도 황금향 주민들의 사사로운 불만을 허구로 때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궁정의 시종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시슬은 데르갈의 권위를 위임받은 것도 아니며, 애초에 그 권위를 노리지도 않은 채, 데르갈과 황금향의 왕국을 살아가는 경험을 영원토록 보존하는 채로 데르갈을 평생토록 안전하게 모시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시슬의 역할이었고, 시슬이 원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에오디오가 사라지고, 데르갈이 실종되었어도 황금향에는 천년넘게 무지개가 떠오르고 있으나,

이는 언제 부스러져도 이상할것 없는 기만적인 가짜였기에…

영원히 지지 않을 무지개가 비친 후 천년 뒤,

미궁이 개변하여 하늘이 열렸으며,

환상속 눈속임이 아닌 진짜 하늘이 나타나고 혼란이 진정된 후 무지개가 잠깐 났을때,

야아드는 그제서야 무지개란 현상을 생전 처음 본 것 처럼 진정 두근거렸다고,

이제는 더이상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할 시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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