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레이디버그 전력 440회

며칠째 날이 우중충했다. 하늘에 푸른색의 면적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구름은 두꺼워졌다.

거짓말처럼, 아직 집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은 순찰을 하다말고 건물의 천막 아래로 몸을 숨겨야 했다.

비는 불운의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마리네뜨는 비 오는 날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다. 마리네뜨가 아드리앙을 좋아하게 된 날도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아드리앙의 목소리는 굵은 빗줄기가 바닥을 세게 때리는 소리마저 뚫고 마리네뜨의 마음에 얹혔다.

지금이 꼭 그때 같았다. 주변에는 블랙캣 외에 아무도 없었고, 세찬 빗소리가 사소한 소음들을 고요로 덮었다.

바닥과 천막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잘게 쪼갠 박자처럼 느껴진다 싶었을 때 블랙캣이 작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비 오는 날이 좋아?”

“물론 좋아하지.”

“정말? 고양이 치고는 특이하네.”

“난 특별한 고양이니까.”

블랙캣의 말에 레이디버그도 웃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비가 그치고 나면 가끔 무지개가 뜨잖아. 그래서 비가 오면 늘 그치고 나서 무지개가 뜰까 기대하게 되거든.”

“그래도 오늘은 그칠 때까지 꽤 걸릴 것 같은데. 이렇게 오래 내리면 지겹지 않아?”

“괜찮아. 시간 죽이기는 특기라. 그리고 오늘은 혼자도 아니잖아.”

“…그건 나도 좋은 것 같아.”

시간이 지나 빗줄기가 약해졌지만 두 사람은 굳이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갈 노력을 하지 않았다. 빗소리에 서로의 목소리가 흘러가듯 얹혀가자 밑바닥에 깔렸던 것은 조금씩 크기를 줄였다.

“벌써 그쳤네.”

“그만큼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했다는 뜻일지도 몰라.”

파리의 저편에서부터 조금씩 햇빛이 차올랐다. 비와 달리 햇빛은 그 각도 때문에 천막 아래서도 피할 수 없었다.

“사실 나 무지개를 보는 건 처음이야.”

블랙캣이 말했다. 그 기대감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갈망이었나보다.

“나도. 아마 네가 아니면 못 봤을 거야.”

둘은 무지개에서 시선을 돌려 눈을 마주쳤다. 오랫동안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던 것은 불확실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블랙캣은 물론 레이디버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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