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기분이 좋을 적의 높고 경쾌한 말투와 작업이 풀리지 않아 낮게 잠긴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것의 무게를 기억한다. 자신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삐—루를 권하는 긴 팔과 술에 취하였을 적 제가 그에게 기대었는지 그가 제게 기대왔는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여름날의 끈적한 습기를 기억한다. 그것의 말투와 행동, 몸짓, 눈빛과 자신에게 전한 사
하늘이 무너진 듯 비가 쏟아져 내렸다. 심덕은 천둥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좁은 복도 너머 창으로 비가 들이닥치고 다다미가 조금씩 젖어도 심덕은 가만히 문 앞에 앉아 어딘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가꾸어진 일본식 정원은 거세게 몰아치는 비로 망가져 갔지만 장마가 그치면 곧 고향에서 돌아온 충실한 관리인이 다시 아름답게
인사와 총. 안녕. 이 인사는 둘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먼저 인사하는 쪽은 한명운이었고, 윤심덕은 호응했다. 내일 연습실에서 봐. 먼저 연락할게. 기다리고 있을게…. 여타 다른 문장으로 된 인사들은 적어도 기약이라는 게 있었지만. 이 두 글자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저 말을 끝으로 헤어지거든 이후 한명운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씩 어딘가로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