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와 총.

2023. 12. 20. 뮤지컬 사의찬미. 사내와 심덕. #핍단상

핍진성 by 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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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와 총.

안녕.

 

  이 인사는 둘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먼저 인사하는 쪽은 한명운이었고, 윤심덕은 호응했다. 내일 연습실에서 봐. 먼저 연락할게. 기다리고 있을게…. 여타 다른 문장으로 된 인사들은 적어도 기약이라는 게 있었지만. 이 두 글자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저 말을 끝으로 헤어지거든 이후 한명운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씩 어딘가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윤심덕은 새삼 내가 그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구나, 하며, 홀로 남은 외로움 – 기실 놀라울 것도 없는 으레 남겨진 이들이 겪고 마는 그런 감정 말이다 – 속에 그 사실을 되짚고 곱씹었다. 안녀엉. 코끝에 울림이 남는 그 음운은 어딘지 늘 물기가 어리고 짠 내가 났다.

 

  심덕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대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언제쯤 돌아올 작정인지, 애초에 이번에는 정말로 돌아오기는 할 것인지. 그런 걸 물어볼 만큼 가찹은 사이인가 하면 – 당연하지! 명운이와 나는 벗이니까. 파토나 , 후렌도, 그런 이름으로 서로를 칭하기로 약속했으니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지려는 기색이 들면 명운의 눈에 금세 알싸한 냉기가 돌았다.

 

“그게 왜 궁금해?”

“친구잖아. 궁금해할 수도 있지.”

“천하의 윤심덕이 이 음흉하게 생긴 한명운에게 관심을 다 주고.”

 

  이젠 내 입술도 따뜻하던가?

  끝에 미끄러지듯 체온 낮은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싸 안으면 윤심덕은 그만 참을 수 없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야 마는 것이다. 곧이어 장난스레 그의 가슴에 손가락 총을 겨누어 꾹꾹 누르는 동작은 덤으로.

 

“그만하시오.”

 

  그러면 사내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들고 항복 표시를 보였다.

 

“알았어. 미안해.”

 

  명운이 선 위로 넘어올 것처럼 발을 뻗으면, 심덕은 딱 그가 내딛는 힘만큼 그를 밀어 도로 선 안으로 집어넣었다. 얼핏 보아 심덕이 선을 지키는 듯하지만, 실상 그 선을 먼저 그어 둔 쪽은 명운이다. 이는 주어가 없는 약속이자 게임이었다. 서랍 속에 잘 개켜 둔 셔츠처럼. 늘 그 자리에 담겨 넘치지도 흘러내리지도 않는, 답을 정해 둔 숨바꼭질. 먼저 숨기기를 택한 쪽이 명운이고, 심덕은 이 놀이에 발맞춰줄 뿐이다. 보이지 않는 만큼, 내어주지 않는 것이 관계의 이치이므로. 그것이 심덕이 그를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심덕이 총을 들이밀었던 그날 밤, 한명운이 두 손을 들었다면, 윤심덕은 그가 자신을 기만하고 속여 온 그 모든 과오와 잘못을 용서하고 품어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명운의 양손은 게임 오버이며, 윤심덕은 패자를 일으켜 세울 줄 아는 사람이니까. 비겁한 필부 김우진까지 팔 벌려 품을 줄 아는 대인배였으니까.

 

  하지만 그-한명운, 호시노 아카시, 사내는 그 모든 고해와 사죄 대신, 총 뒤로 손가락을 걸기를 택했다.

  이렇게.

 

  그것이 그의 선택이기에 체스 말이 움직였다.

  그러니 이번에는 윤심덕이 먼저 말할 차례다.

  안녕.

  안녕이라고.

 

  안녕.

 

完.

  


2022. 09. 29. 초고 단상 작성 

2023. 12. 20. 퇴고 및 완성 

뮤지컬 사의찬미 기반.

윤심덕은 ㅈㅇ, 한명운은 ㅅㅌㅈ/ㄱㅈㅂ이 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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