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낯
사의찬미 / 사내를 죽인 김우진
그것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기분이 좋을 적의 높고 경쾌한 말투와 작업이 풀리지 않아 낮게 잠긴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것의 무게를 기억한다. 자신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삐—루를 권하는 긴 팔과 술에 취하였을 적 제가 그에게 기대었는지 그가 제게 기대왔는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여름날의 끈적한 습기를 기억한다. 그것의 말투와 행동, 몸짓, 눈빛과 자신에게 전한 사상조차도 기억한다. 유일하게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면 온기 뿐이겠다. 그것의 목을 제 손으로 틀어쥐고 껄떡이는 마지막 숨을 다 빼앗았음에도 온기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것에게 무릇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어떤 박동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새빨간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생명력을 속삭인 모든 순간이 생생하여 당장이라도 저 입이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데. 죽음이 그것의 그림자를 삼킨 이 순간에도 그것이 남긴 모든 것을 다 도려내지 못하는 모습이란 얼마나 우스운지.
김우진은 왜 자신이 한명운을 죽여야만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왜 자신이 친우를 죽여야만 했는가? 왜 그와의 만남을 이 순간 끊어내야만 했는가? 왜 더는 그와 작업하면 안 되는가? 아직 결말까지는 한참인데…… 그는 질문에 도저히 답할 수 없다. 자신의 이 행동이 어떤 거대한 명령에 복종한 결과인지, 자신의 유일하고 온전한 의지의 발현인지도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 시신이 눈앞에 있다는 감각이 불현듯 찾아들면 위스키가 들어간 속에서 신 맛이 올라온다. 아,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온다. 익숙한 고통에 끽연을 빼어문다. 눈앞에서 연기가 흩어지며 순간적인 충동을 참아낸다. 여기서 도망치고자 하는 충동,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죽음의 그림자로 몸을 던지고자 하는 충동이…….
하지만 결국 저 섬뜩하고 챙백한 낯을 피해 달아나고야 만다. 어디로?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원고 뒤로도 숨을 수 없고 윤심덕의 품으로도 갈 수 없어 끝내 도망친 곳은 새벽의 끝자락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 속절없이 무너지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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