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
2024.05.25
그 이유를 말하자면, 아마 제가 의사였기 때문일 겁니다. 의사는 상대가 악명 높은 범죄자라도 치료해야 하고, 곧 죽을 사형수라도 치료를 거부해서는 아니 됩니다. 눈앞의 사람이 누구이고,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그 사람을 살려낸다. 그게 의사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이으려던 말을 뒤로 미루듯 멈췄던 손 움직여 붕대 꼼꼼히 묶는다. 혹시 모른다며 가방의 위쪽에 꺼내뒀던 스포츠 테이프는 도로 가방에 밀어 넣고 지퍼 닫는다. 그러는 내내, 1심보다는 단단하게 굳어진 무표정만을 내보인다.) 그건 첫째로는 직업 탓에 제가 웬만해선 놀라는 일이 적어졌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제가 자신의 표정을 숨기는 게 숙련됐기 때문입니다. 셋째로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지만, 대부분의 의사는 정말로 큰 사건이 아니면 쉽게 냉철해지곤 한다는 것이겠네요. (···그리고 넷째로는, 앞의 이유로 인해 내가 표리부동하다는 걸 당신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아마네가 다칠 뻔했다. 본디 아이들을 키우던 입장으로는, 당연히 화가 난다. 아마네가 저리 행동하게 만든 부모들에게. 그럼에도 우선은 분노를 되삼키고 침착함만 내보이며, 언젠가의 카즈이가 그랬듯 손 뻗어 당신의 어깨 토닥인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지고 맙니다. 그것을 나는 이미 겪었고, 당신은 겪는 중이라는 게 차이점이겠네요. 그렇지만 말이죠, 지킨다는 건 누군가가 무리해서 짐을 짊어지는 게 아닙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때로는 무너진 누군가를 일으켜 주고, 일으켜지면서 유지하는 것이죠. 경찰도, 의사도, 회사원이나 학생도, 그렇게 함께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사회라는 게 바라는 이상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 카테고리
- #기타
- 페어
- #Non-CP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