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ㄹㄱㅇ

비, 천둥, 소용돌이

ㅋㅈ / ㅋㅅㅌ X ㅈㄴ, ㅅㅁㅈ X ㅇㅂㅈ

Tik Tak Tok by OR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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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식은 절대영역

얼어 붙은 황금비율도

용해 되고 싶은 거야 되고 싶지 않은 거야

해동 하고 싶은 거야 하고 싶지 않은 거야

/ 시이나 링고, <열애발각중>

어두컴컴한 하늘이 두어번 번쩍 거리기를 십 분 정도의 간격으로 반복한다. 요 며칠간 날씨는 변덕스럽다 못해 아예 기상청의 예보를 반대로 생각해야 할 정도로 예보가 맞는 일이 드물었다. 지금도 그렇다. 분명 오늘은 아침에 소나기가 왔다 간다고만 했는데 어두워지고 나서는 아주 폭풍우 수준으로 비가 쏟아지고, 천둥에 시도 때도 없이 번쩍대는 번개에 난리도 아니다. 저기압, 그런 거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여기에 많지 않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아, 한 사람 빼고. 스크림 내내 허리에 손을 짚거나 두드리던 손승익의 모습을 유백진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래. 젊다는 건 좋은 거다.

“비가 그치질 않네…. 적당히 하고 들어가라~.”

“네엡.”

몇 시간이 지나고, 하나 둘 씩 피곤을 호소하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연습하는 것은 백진이었다. 홀로 남게 된지 몇 십 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연습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어이, 유백진~ 슬슬 자러 가자.”

“민제 형? 뭐하러 왔어요?”

“오면 안되냐?”

“그런 뜻이 아닌데.”

“충전기 두고 왔더라고. 어디보자…, 아. 여깄다.”

신민제는 잠옷 차림으로 들어와선 자기 자리의 모니터와 본체 부근을 뒤지더니, 충전기를 발견하곤 그것만 덜렁 들고 다시 돌아가려 한다.

“나 먼저 자러 간다~ 얼른 와.”

“아,”

헤드셋을 벗고 있던 유백진은, 민제가 나가려 하자 급하게 몸을 뒤로 돌려 감탄사를 내뱉는 것으로 멈춰 세운다. 왜 그래? 하면, 잠깐 뜸을 들이다 말하는 것이다.

“그, 밖에… 비 많이 오죠?”

“보면 몰라? 엄청 와서 이거 가지러 오는 것도 귀찮았어.”

확실히 민제의 팔다리는 물론이며, 흰 상의도 흠뻑이라 해도 좋을 정도까지 젖어 있었다. 물기가 아직 흥건한 무릎, 젖어서 눈썹을 가리는 앞머리. 백진은 멍하니, 신민제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곤 자세를 바로해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같이 가요.”

“어?”

숙소로 가는 길이 1km 가까이 된다고 느껴질 정도의 비. 실제로 가깝기도 했으나, 걸어가는 사이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를 메우는 건 오직 쏟아지는 빗소리 뿐. 백진은 몇 분 안되는 그 사이에 온갖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오늘 스크림에서의 길이 형의 픽. 유진이 형의 오더라던가, 정현이 형한테 장난치던 거, 코치님의 피드백…. 그리고 민제 형. 민제 형은…….

…들어와서 가볍게 머리를 털어내는 민제는 백진에게 방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20분이 채 안되게 지나서는, 머리가 뽀송해진 백진이 방으로 들어온다.

“형 안 씻어요?”

“나가기 전에 샤워 했음.”

“대충 세수라도 해요….”

침대 위에 누워서 충전기에 꽂아둔 폰을 만지작거리던 민제는 귀찮다는 듯 안경을 벗었다. 방을 나서는 민제의 뒷모습을 백진은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바라봤다. 백진은 방에 혼자 남겨졌다. 정확히는 민제를 쫓아낸 것에 가깝지만. 침대에 앉아 있으니, 다시 빗소리만 남는다.

너무 많이 온다.

기상청은 장비를 다시 해야한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폰을 켜서 보면, 야속하게도 날씨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 그리고는 쾅, 하는 소리가 뒤에서 난다. 백진은 몸을 움츠렸다. 반사적으로 이불을 움켜쥐었다.

“어우, 방금 소리 뭐냐…….”

앞머리가 젖은 민제가 방으로 들어온다. 이불을 뒤집어 쓰려던 백진과 눈이 마주친다. 아, 아…?

“너…, 뭐하냐?”

“아니, 졸려서…….”

그리고 시야가 명멸한다. 아니, 실제로 한 번 불이 나갔다 들어온 걸 수도 있다. 번개가 지나가면, 당연하게도 천둥이 다시 치고……, 아까보다 더 거셌다.

“아니, 야, 뭐해?!”

백진은 아무 말 없이, 표정도 바꾸지 않고…. 그러니까, 굳은 표정으로 민제의 옷자락을 또, 반사적으로 붙들었다.

“아니, 손이 미끄러졌어요.”

“구라 까네….”

“아, 진짜예요….”

지친 건지, 안도인 건지 모를 한숨을 얕게 내뱉으며 몸을 둥글게 해 이불을 뒤집어 쓴다. 민제는 불을 끄곤 자리에 누웠다. 천둥번개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백진은 여전히 얼굴까지 이불을 덮어 놓고 있었고, 민제도 계속 뒤척거렸다. 음, 이건 이어폰이라도 꽂는 거 아닌 이상엔 무시하기 어려운 소음이다. 창문이 가까워서 그런 것도 있을 건데…. 아무래도 민제는 룸메이트인 동생이 신경쓰였다. 민제는 몸을 옆으로 하곤 얼굴 없는 유백진을 바라봤다.

“무섭냐?”

“아,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웅얼웅얼.

“기다려 봐, 내가 안 무섭게 하는 방법 알아.”

신민제는 돌연 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백진이 뒤집어 쓴 이불을 걷어냈다. 불 꺼진 방 안, 탁하게 울리는 건 이불과 침대 커버가 바스락 대는 소리- 그리고 유백진이 약하게 반항하는 소리. 이, 이 형이 지금 뭐하는 거지? 순간 유백진의 머리속에선 또 온갖 시뮬레이션이 스쳐 지나갔다. 이러다가 옆 방 함박이 찾아와서 불을 키곤 너희들 뭐하냐, 하고 동태눈깔로 면박을 주면 그 날로 끝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온갖 고동소리가, 아니, 이건 안의 소리이다. 쿵쾅댄다. 약간, 약간 토할 것 같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간다. 민제가 백진의 침대에 누웠다. 물론 백진도 누워있었다….

“이러고 있으면…, 훨씬 덜 무서울걸.”

백진을 옆으로 뉘여놓고 자신도 같은 방향으로 누웠다. 이 좁디 좁은 싱글침대에. 민제의 팔은 백진의 허리 위에 올라가, 백진의 팔에도 닿고 있었다. 아, 이 사람…. 체온이 높다. 정말…….

“잘 자…….”

그런, 하품 섞인 인사가 끝이다. 백진은 민제의 표정 따위 볼 수 없다. 다음 날 정오의 하늘은 미울 정도로 쾌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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