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서랍장 곰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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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鬼 : 본디 바다에서 온 것은 바다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모양이 동그랗게 잘 빚어진 주먹밥을 야무지게 한입 베어 먹은 카츠라는 은근하게 가자미눈을 뜨며 콧김을 내쉬었다. 입안에 가득 찬 쌀밥을 꼭꼭 씹어 먹더니 어느새 꿀떡 삼켜버린 그가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타카스기, 사람이 말을 할 때는 되묻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한 번에 알아들을
엘리자베스. 부탁 하나만 하마. 복도를 쭉 가로질러 왼쪽에서 세 번째 방 안에 들어가면 옷장이 하나 놓여있단다. 그 안쪽의 구석에 놓인 보따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을 내게로 가져와다오. 제법 오래되었으나 아직까지도 고급 진 비단과 같이 부드러운 천으로 감싼 보따리를 풀어놓은 카츠라는 제 앞에 놓인 벼루와 붓을 내려다보았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조심스럽
소나기가 방문하려는 것인지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 위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여있었다. 사실 창문이라고 할 것도 없는 통유리지만. 어찌 되었든 창문이긴 하니까. 사카타는 카운터 앞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빨대를 꽂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어느새 다 녹아버린 얼음에 밍밍한 커피 맛만 혀끝을 맴돌았다. 천천히 카페 안을 둘러본 사카타는 평
햇살 좋고, 구름 좋고, 바람 좋다. 이런 날은 소풍을 가기에 딱 좋은 날씨인데. 종례 전까지 학교에서 썩어야 한다니. 쯧. 사카타는 짧게 혀를 차며 완벽한 삼박자에 박수를 보내고 가운 안쪽 주머니에 고이 모셔둔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고작해야 서너 개비 밖에 들어있지 않은 탓에 시간이 나는 대로 근처 편의점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아폴로 초코도
하늘의 색이 아수라 백작처럼 두 색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는 밤의 어두운 색. 하나는 아침의 밝은 색. 아니, 사실은 세 가지인 듯 했다. 가운데에서 둘을 이어주는 황혼의 색까지 합쳐서 말이지. 이제 곧 있으면 제 생의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에도의 여명이 떠오를 시간이었다. 저 멀리 산봉우리의 뒤편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빛이 이렇게나 반가울 줄
사카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치 영화 속의 파노라마처럼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 모든 장면에는 사카타가 있었고, 타카스기가 있었다. 어떤 때에는 웃고 있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화를 내기도 했다. 심지어는 온몸이 탈진할 정도로 울기도 했었다. 서로의 앞에서는 절대로 눈물을 보이는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두 사람이
휘영청 달 밝은 하늘 아래에 샤미센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사내가 손에 잡은 바치撥로 악기 현을 연주하자, 제법 경쾌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창가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모습은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매우 편안하다는 듯 흔들림 하나 없는 시○스 위에 앉은 마냥 안정적으로 현을 키고 있었다. 달빛을 맞으며 둥그런 모양의 창문
사카타 긴파치는 눈이 좋다. 츳코미 캐릭터의 상징이라고나 할 수 있는 안경이나 쓰는 주제에 무슨 눈이 좋으냐고 할 수 있겠느냐만, 단순히 시력이 좋다는 말이 아니다. 왜, 다들 눈이 좋다고 하면 한 번씩은 떠올려보지 않는가. 엠페러 아이라든지 사륜안이라든지 눈동자에 육도 문자가 새겨져 있다든지. 아무튼 헛소리처럼 보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한 뉘앙스라고는
우당탕탕! 책상이 뒤집어졌다. 그 위에 쌓여 있던 서적 두어 권이 덩달아 바닥에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긴토키의 귀와 꼬리가 성게처럼 돋아났다. 얼굴을 한껏 구긴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걸 보니 여간 아픈 게 아니었나 보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거 같은 눈물방울을 글썽이며 그대로 쪼그려앉아 입김을 불어가며 제 발을 이리저리 문질 거리는 모습이 퍽
흐리다. 햇빛 한 줄기 새어 나올 틈도 없을 만큼의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간간이 천둥소리가 들려오지만 비는 내리지 않을 성싶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겨울 칼바람마냥 뺨을 베고 지나갔다. 따뜻함을 품은 눈송이가 맺힌 줄기들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치 설원의 한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다. 영 산책을 길게 끌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