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솜밭 파수꾼

목화솜밭 파수꾼 2

타카긴

우당탕탕!

책상이 뒤집어졌다. 그 위에 쌓여 있던 서적 두어 권이 덩달아 바닥에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긴토키의 귀와 꼬리가 성게처럼 돋아났다. 얼굴을 한껏 구긴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걸 보니 여간 아픈 게 아니었나 보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거 같은 눈물방울을 글썽이며 그대로 쪼그려앉아 입김을 불어가며 제 발을 이리저리 문질 거리는 모습이 퍽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한다면 강경책을 쓰는 수밖에 없다. 아직 어린아이라고해서 친절하게 대하기만 하는 것은 교육에 좋지 않음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두 번 다시 알고 싶지 않다. 타카스기는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사방이 막혀있는 가운데, 한 쪽의 문을 열어 복도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욕실의 방향이었다.

“씻어라.”

“싫어.”

“씻어. 바닥이 이렇게나 더러워진 건 누구 탓이지?”

“내 발바닥은 깨끗해!”

“아무렴 깨끗하겠지. 내가 닦았으니까.”

바락바락 소리를 치는 긴토키에 타카스기는 당연하다는 말투로 고개를 까딱였다. 처음 집안에 들이기 직전에 발바닥을 확인해서 다행이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이 방안은 벌써 벽지와 다다미가 얼룩덜룩하게 변해 있었을 것이다. 어디를 그리 돌아다닌 건지 새까맣게 물든 발바닥을 물수건으로 박박 닦느라 어찌나 땀을 뺐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와중에 깨어나지도 않고 푹 자고 있던 꼴을 생각하면 그거대로 기가 찼다.

문제는 네 몸이다. 너덜너덜하게 해진 옷 하며, 푸석푸석한 귀 하며, 진흙 위에 뒹굴고 온 마냥 얼룩덜룩한 꼬리 하며. 흙먼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날리고 있잖아. 타카스기의 일침에 긴토키는 등 뒤로 손을 숨기고 정면에서 꼬리가 보이지 않도록 풍성한 털을 그러모았다. 그래봤자 위에서 내려다보는 타카스기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타카스기는 한숨을 쉬며 열어둔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다른 곳을 향했는지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이 들렸다. 완전히 인기척이 사라지자 그제야 긴장감에 한껏 쫑긋거리던 귀를 물에 젖은 솜사탕처럼 늘어뜨린 긴토키가 다다미 위에 드러누웠다.

겨우 숨통이 트였다. 그도 그럴게 만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자신보다 크기가 큰 인간이 도망갈 곳도 마땅치 않은 좁은 공간에서 잡으러 온다면 누군들 겁을 먹고 도망치지 않겠는가. 핫. 물론 난 겁 같은 거 먹지는 않았으니까! 응응, 그래. 나쁜 쪽은 신스케야. 싫다고 했는데 억지로 물에 빠뜨리려고 했던 신스케가 나쁜 거야.

그렇게 끝내주는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쿵쿵쿵쿵. 발뒤꿈치에 힘을 실어 도끼처럼 내리찍는 듯한 발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가까이에 온다. 긴토키는 당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뭐지? 이렇게까지 근처에 와 있는데 어째서 듣지 못했지? 잠시 넋을 놓은 그 순간. 드르륵하고 방문이 열리더니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무언가가 긴토키를 덮쳤다.

“무, 뭐야?!”

“시끄러워. 말 안 듣는 꼬맹이를 위한 …교육적 방침이다.”

“무슨 방침이 이따위야. 지금 단어 선택하겠다고 망설였지?”

덮쳐 온 것은 그물망이었다. 거 있잖냐. 물고기를 잡는 뜰채 같은 것. 여름만 되면 아이들이 어깨에 기대 들고 다니던 잠자리채. 대충 그런 거였다. 다행스럽게 긴토키 하나가 쏙 들어갈 만큼의 크기였다. 좋은 말로 할 때 치우지 못해?! 긴 씨가 진심으로 화내면 꼬리 아홉 달린 무시무시한 요괴가 변신하걸랑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엉켜 붙는 그물망에 조잘거리던 긴토키는 점차 말수가 없어졌다. 움직임도 얌전해졌다. 그물망에 보기 좋게도 꼬이는 바람에 당장이라도 꼬리털이 뽑혀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크크큭.”

“…웃어? 이 상황이 웃겨어? 이 악당 같으니라고. 웃으니까 더할나위 없는 악당이잖아!"

긴토키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타카스기를 노려보았다. 아. 짐승 같은 게 아니라 짐승이었지. 여하튼. 꼴 좋다는 듯 얄밉게 웃어대는 저 면상에 주먹을 날려줘야 마음이 풀릴 거 같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식간에 망을 떼어낸 타카스기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긴토키가 반응할 틈도 없는 정말 찰나의 시간이었다. 타카스기는 한 손에 쏙 들어온 긴토키의 손목을 적당한 힘을 주어 결박한 다음에 복도 끝을 향했다. 좋아, 이대로 연행이다. 욕실이라는 감옥에 날 가두려는 거냐! 긴토키가 무어라 소리쳐도 듣지 않았다. 어차피 영양가 없는 소리일 테니까.

욕실 문을 열자 후끈후끈한 열기가 단번에 불어왔다. 옷은 어쩔까, 싶었지만 그냥 통째로 넣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듯싶다. 하여, 멧돼지를 통구이로 만드는 것처럼 조금 더 힘을 주어 공중에 긴토키를 들어올렸다. 발버둥 치는 다리를 가지런하게 잡은 후에 그대로 욕조에 조심스럽게 담갔다. 그렇게나 꽥꽥 소리만 지르더니 따뜻한 물에 몸이 닿으니 몸이 풀리는지 욕조 난간에 녹진해진 뺨을 기댔다.

“으흠흠. 뭐 나쁘지 않네.”

“…그걸 좀 일찍 알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씻는 물이 더 필요하면 말해. 수도꼭지는 온도를 맞춰 놓았으니까 손대지 말고. 엉엉 알겠어. 듣는 둥 마는 둥 대답하는 긴토키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타카스기는 아이를 상대하는 것에 이렇게까지 지칠 수 있나 의심했다. 내가 이만할 적에는 이리 막무가내로 굴지는 않았을 턴데. 물론 그 녀석들은 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다만, 타카스기는 스스로에게 당당했다. 뭐 주변 환경이 조금 굴곡 되었다는 둥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환경이고. 그에 비해 나는 얌전하게 자랐어.

“우아아악!! 차갑잖아!”

“수도꼭지는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왼쪽으로 조금만 돌려.”

“깜빡할 수도 있는 거지, 잔소리는. …아 뜨!!!”

“이 바보가….”

결국 소매를 걷고 나섰다. 몸은 그렇다고 쳐도 꼬리는 어떤 식으로 씻겨야 되는지 긴가민가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은 빨래였다. …그래. 그 빨래였다. 벅벅 비누칠을 하고 벅벅 비비고 물을 끼얹고는 빨랫감처럼 쭈욱 물기를 짰다. 간간이 긴토키의 비명이 들려왔으나 고통이 원인이 아닌 엄살이라는 것을 깨닫고 속전속결 끝낼 수 있었다.

“아~ 개운하다!”

“……. 그래.”

지친다. 벌써 지쳤다. 몸은 피곤하지 않았지만 머리가 피곤했다. 눈앞이 퀭하다. 이 대치가 벌써 얼마나 지났는고, 하며 시계를 올려다보면 10시를 가리키던 긴 시침이 어언 다음 숫자로 넘어가 있었다. 분명 한나절이라고 생각했건만 반의 반나절을 겨우 지나고 있었다.

“하……….”

“갑자기 왠 한숨? 한숨 쉬면 복 날아가.”

누구 때문인데. 차마 대꾸할 힘을 잃어버린 타카스기는 입을 꾹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차라리 이게 낫다. 이게 상책이다. 점심밥을 준비할 기력은 이미 동이 났지만 어떻게는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부엌으로 향하기 위해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세웠다. 신스케. 신스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느릿하게 뒤를 돌아보면 긴토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헛들은 건가 싶어 고개를 흔들고 다시 정면을 향하자,

“읏, 차!”

퍽. 둔탁한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무언가에 머리를 가격 당했다. 월척이요! 어지러이 흐릿해지는 시야에 들어오는 조그만 두 발과 물에 젖어 축 늘어진 꼬리를 마지막으로 타카스기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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