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긴] 커피도 두들겨 보고 마셔라
마피아 조직 더블보스 타카긴 AU
‘귀병대’가 패배했다.
그들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패배를 예상하지 못했다. 귀병대는 늘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달려들어 승리를 가지고 돌아오는 조직이었으니까.
그런데 졌다. 조직은 반파되었고, 두 보스도 반으로 갈라져야 할 상황이 오게 되었다.
‘두 보스 중 하나의 목을 가져와라. 그렇다면 남은 보스와 조직원들의 목숨은 보장하겠다.’
적의 요구였다.
조직원들은 전부 저항했다.
‘보스를 지키지 못할 바엔 차라리 함께 죽겠습니다! 먼저 간 녀석들도 그걸 원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싸우게 해주십쇼!’
시끄럽게 소리치는 조직원들을 타카스기는 한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옆에 앉아있는 긴토키는 무심한 눈빛으로 비가 내리는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긴토키를 일별하며 타카스기가 말했다.
“우리끼리 알아서 정리할 테니, 이 일로 더 말 얹지 마라.”
“신스케 님! 그렇지만!”
타카스기의 말에 조직원들이 더욱 목소리를 키우며 반대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긴토키가 버럭 소리치며 말했다.
“그만!”
긴토키의 고함이 어수선함을 곧바로 내쫓았다. 그는 조직원들의 모습을 눈으로 훑고 곧 타카스기를 마주 보며 말했다.
“타카스기. 따라와.”
* * *
긴토키가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긴토키가 뒤따라 들어온 타카스기를 확인하고는 비서에게 커피를 요청하고 문을 닫았다.
“…….”
“…….”
낮은 테이블을 가운데로 마주 향해 자리한 소파에 타카스기와 긴토키가 각각 앉았다. 대화를 위해 모인 자리지만 오래도록 긴 정적이 두 사람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누가 희생할 것인가. 이미 결정은 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설득하는가가 문제였다.
긴토키가 깊은 고민을 끊고 먼저 입을 열었다.
“타카스기. 난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생각이 없다.”
“그래.”
“그리고 널 죽일 생각도 없어. 네 목을 저 새끼들에게 줄 생각도 없고.”
“그래.”
매사에 가볍고 무심한 태도를 보이던 긴토키는 지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경직되어있었다. 긴토키가 무뚝뚝하게 말을 잇고, 타카스기가 묵묵히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가 죽는다고 저들이 귀병대를 살려둘 리도 없겠지.”
“잘 아는 군.”
그들의 대화는 커피를 가져온 비서가 들어오며 잠시 끊겼다. 긴토키와 타카스기의 앞에 각각 한잔의 커피가 놓이고, 비서는 조용히 사무실 밖으로 떠났다. 그들은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
어쩌면 이것이 너와 마시는 마지막 커피가 되겠지.
분명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들의 침묵이 더 이어졌다. 타카스기는 커피를 한 모금 더 입에 머금고 혀를 굴렸다.
매일 같은 커피를 마시는 그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커피 사이에 다른 맛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아주 미묘하게 혀를 톡 쏘는 통감을 느끼며 타카스기는 그것이 독임을 깨달았다.
‘독을 탄 것은 긴토키의 부하인가? 충성심 있는 녀석을 두었군.’
타카스기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죽음을 삼켰지만, 그의 속은 누구보다도 편안했다. 타카스기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긴토키는 자신이 하려던 말을 계속 이었다.
“죽지 말자. 둘 다 살 기회는 분명 존재해. 늘 싸우던 것처럼만 하면 된다. 항상 그랬잖냐.”
“……그래.”
“난 녀석들도, 너도 죽게 두지 않을 거다. 질기게 살아남을 거다.”
“이렇게 의견이 잘 통하는 것은 처음이군. 항상 싸웠는데 말이야.”
타카스기와 긴토키가 빈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 모두 깨끗하게 비운 채였다. 자신과 긴토키의 잔을 내려다보던 타카스기는 숨을 들이켰다.
너에게 말해야 했다. 나를 희생하라고.
“타카스기. 내 커피에 독을 탔다.”
타카스기가 긴토키를 부르려 입을 열 때, 긴토키가 먼저 운을 뗐다. 긴토키의 이름을 말하려던 타카스기는 눈을 키우고 다른 말을 대신했다.
“…해독제는.”
“방금 네가 다 마셨지.”
-쿠당탕.
타카스기는 테이블을 밟고 넘어가 긴토키에게 달려들었다. 긴토키의 목을 조를 듯이 잡고, 그의 입을 억지로 벌려 자신의 혀를 집어넣었다.
긴토키가 혀로 그를 밀어내든, 잘라버릴 듯이 씹어대든, 타카스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커피를 마시며 느낀 톡 쏘는 아픔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독의 고통이 입을 통해 전해졌다. 그저 자신의 입안에 남은 해독제가 너에게 전해지길, 이것이 조금이나마 너를 살리길 바라며 절박하게 긴토키의 입에 매달렸다.
긴토키는 저항했다. 한 번도 타카스기의 키스를 거부한 적 없는 긴토키가 버둥대며 그를 거절했다.
-퍽.
긴토키의 주먹에 타카스기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만해.”
타카스기의 얼굴을 때려 떨어트린 긴토키가 순간 숨을 멈췄다. 타카스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타카스기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긴토키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양 손목을 한 손으로 붙잡고, 두 다리 위에 올라타 발을 묶었다. 긴토키가 고개를 거칠게 흔들며 저항하자 타카스기는 남은 손으로 긴토키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그만둬…. 타카……흐읍.”
다시 혀가 진득하게 섞였다. 어느새 긴토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얼굴이 젖어 들어갔다. 점점 뻣뻣해져 가는 혀를 붙잡고, 타카스기는 키스를 계속했다. 식어가는 열기를 조금이나마 붙잡기 위해, 그는 긴토키의 손목을 놓고 등을 감싸 품에 안았다. 타카스기의 손에서 벗어난 긴토키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 * *
타카스기를 죽은 긴토키에게서 떨어뜨린 사람은 타케치였다.
그의 태도를 보아 커피에 독과 해독제를 탄 것은 그인 것 같았다. 타카스기가 타케치를 향해 칼을 겨눴다.
“너냐.”
타케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담담히 대답했다.
“긴토키 님께서 명령하신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미리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시고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떠나시고 난 이후의 신스케 님까지도요.”
“어느 긴토키의 충신이 이런 일을 벌였나 했더니, 내 부하에게 뒤통수를 당했군.”
타카스기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눈빛은 죽은 긴토키만큼 꺼져있었다.
내가 해독제를 삼키면서 안도하고 있었을 때,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를 속이고 죽은 너는 나만큼 편안할까?
적어도 눈물범벅이 된 저 얼굴은 전혀 편해 보이지 않았다.
“신스케 님,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타케치가 신스케에게 물었다. 뒤늦게 사무실로 뛰쳐 들어온 귀병대 부하들이 긴토키를 부르며 오열했다. 그리고 타카스기의 머릿속에 긴토키가 했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죽지 말자. 둘 다 살 기회는 분명 존재해. 늘 싸우던 것처럼만 하면 된다. 항상 그랬잖냐.’
긴토키를 안은 타카스기의 팔에 더 힘이 들어갔다. 타카스기가 말했다.
“부숴야지.”
* * *
적에게 귀병대의 전언이 전달되었다.
‘사카타 긴토키는 죽었다.’
그 전언을 들은 적들은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타카스기 신스케가 손수 안고 들어온 긴토키를 보고, 그를 안고 있는 타카스기의 얼굴을 보고 적들은 긴토키의 죽음을 실감했다.
적의 요구대로, 타카스기는 긴토키를 데리고 홀로 접선 장소로 찾아왔다. 그가 빈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엔 수십 명의 적이 공장의 절반을 채운 채로 빼곡히 서 있었다.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가운데, 그들의 가운데에 서 있는 적의 보스가 타카스기에게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
“이 앞에 그놈 두고 뒤로 물러나.”
검게 죽은 낯빛의 타카스기는 묵묵히 적의 명령을 따랐다. 적들이 보는 한가운데에 긴토키를 눕히고, 긴토키의 목도를 긴토키의 손에 쥐여주며 손끝에 입을 맞추었다.
곧 따라가지, 긴토키.
입맞춤에 메시지를 전하며 타카스기는 일어나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더 떨어져.”
보스는 이를 악물고 멀어지는 타카스기를 확인하고는 성큼성큼 긴토키를 향해 걸어갔다. 긴토키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린 그가 타카스기를 보며 비웃었다.
“목을 가져오랬더니, 차마 애인의 몸을 자를 순 없었나 봐? 덕분에 우린 몸까지 즐기게 됐네? 네 애인의 시체가 내 부하들에게 천박하게 굴려져도 상관없나?”
보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타카스기가 그를 노려보았다. 좀전의 죽은 눈이 아닌, 세상마저 전부 태울 것 같은 불같은 눈빛이었다.
“넌 긴토키에게 손을 댈 수 없다. 전부 이곳에서 죽을 테니까.”
타카스기의 말이 끝나자 함성이 그의 뒤를 이었다. 문이 부서지고, 천장이 뚫리며 귀병대들이 들이닥쳤다. 전부 몇 명의 적을 쓰러트리고 온 것인지 상상하기 어려운 피 칠갑을 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멸을 택할 건가?”
혼자 왔을 리가 없지.
보스는 귀병대가 들이닥칠 것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품에서 총을 꺼냈다. 동시에 마타코가 신스케를 부르며 그에게 칼을 던졌다. 보스가 타카스기의 머리를 조준하며 방아쇠를 당기고, 신스케가 칼집에서 검을 뽑았다.
‘죽지 말자, 신스케.’
바닥에 누워있는 긴토키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타카스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소리쳤다.
“지옥에서 관 짜놓고 기다려라, 긴토키!”
-탕.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긴토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관 같은 소리 하네. 나는 우주장(葬)으로 해달라고 했잖냐!”
동야호가 적 보스의 손목을 찔러 총알이 천장으로 발사되었다. 긴토키는 바로 목도를 휘둘러 보스의 턱을 후려쳤다.
“커헉-!”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탈탈 털은 긴토키가 씩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I'll be back.”
아니, 그거 아니야! 그건 죽을 때 하는 대사잖아!
* * *
긴토키의 귀환. 귀병대의 사기를 끓어 올리기엔 충분한 일임이 틀림없었다. 적을 완전히 소탕하고 온 귀병대는 무사히 그들의 배로 돌아왔다.
위대한 승리를 하고 돌아온 귀병대는 축제를 벌이고 있어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장례식장보다도 싸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죽다 살아나는 약?”
“……어.”
타카스기 앞에 무릎을 꿇은 긴토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양팔을 들고 시선을 내리깐 채로 목소리를 줄이는 그의 모습이 퍽 안타깝게 보였다.
그의 옆에는 타케치가 긴토키와 같은 자세로 벌을 받고 있었다. 다 큰 어른들이 아이처럼 쪼그라든 모양새가 퍽 우스꽝스러울 법도 하나, 귀병대 단원들은 모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긴토키는 뭐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타케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긴토키의 시선을 받은 타케치가 그 대신 타카스기에게 말했다.
“긴토키 님이 약을 먹고 잠드시면 긴토키 님을 모시고 적진으로 가는 것이 계획이었습니다. 일명 ‘트로이 목마’ 작전이죠.”
“그걸 둘만 알면 어떡함까!”
타케치의 말에 마타코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대답했다. 그것에는 긴토키가 억울한 것이 있다는 듯 마주 소리쳤다.
“저놈한텐 말하려고 했어! 그러니까 망할 바보스기만 따로 부른 것 아니냐! 근데 저 녀석이 내가 말 할 틈도 안 주고…….”
벌을 서던 팔까지 은근슬쩍 내려가며 말을 하던 긴토키는 자신을 향해 시선을 돌린 타카스기와 눈이 마주치고 점점 목소리를 줄였다. 자신이 독을 마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일그러지던 타카스기의 얼굴이 생각나 버린 탓이다.
-…후.
“……미안하다.”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긴토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독을 마시기 전에 계획을 말한다면 누가 이것을 먹을 것인지로 싸울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일단 질러보자.’라는 심정으로 자신이 먹은 것이었다.
이전에 우연찮게 구하게 된 독이 생각나 급조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구멍도 많고 위험하기도 한 계획이었지만, 귀병대를 믿으니 그들이 알아서 잘 해내리라 믿었다. 그리고 긴토키의 믿음대로, 귀병대는 훌륭한 승리를 쟁취하고 귀환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대역죄인이 되는 것은 계획에 없었다.
난 분명 몇 번이나 말했다고! 아무도 안 죽을 거라고!
커피 마시기 전까지 얼마나 열심히 설명했는데…….
…….
그렇게 이성을 잃을 줄은 몰랐다. 너도, 나도.
“미안하다.”
다시 사과한 긴토키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뭐라고 말하든, 자신이 잘못한 것이다. 타카스기에게, 대원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한 것은.
울상이 된 듯한 긴토키의 모습에 귀병대원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한층 누그러졌다. 그때, 긴토키를 따라 팔을 내린 타케치가 말했다.
“적을 속이려면 나 자신까지 속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계획의 성공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실제로 도움이 되었…….”
“그래! 네가 말했으면 이 정도까진 안 됐을 거 아니야!”
긴토키가 타케치의 정수리에 주먹을 찍으며 때렸다. 조금 따스해진 듯한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싸늘해져 긴토키와 타케치는 다시 팔을 들고 벌을 서야 했다.
커피도 두들겨 보고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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