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병대, 긴파치 선생!

타카긴

휘영청 달 밝은 하늘 아래에 샤미센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사내가 손에 잡은 바치撥로 악기 현을 연주하자, 제법 경쾌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창가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모습은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매우 편안하다는 듯 흔들림 하나 없는 시○스 위에 앉은 마냥 안정적으로 현을 키고 있었다. 달빛을 맞으며 둥그런 모양의 창문에 걸터앉아 샤미센을 연주하는 사내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화려한 기모노와 수려한 외모가 더욱 사내를 돋보이게 했다.

반사이는 그가 연주하는 음악이 제법 흥겨운 곡조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신스케, 기분이 좋아 보이올시다. 아아 그래. 

"꽤나 맑은 하늘이지 않나."

매일같이 질리도록 보는 것이 하늘이외다. 타카스기가 말하는 바가 그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반사이는 구태여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며 갓 우려낸 따끈한 찻물을 마시기 위해 잔을 들어 올렸다.

"천인이 에도에 침공했던 이후, 비행선 하나 뜨지 않은 날이 없었지."

반사이, 위를 올려다봐라. 반사이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뜨거운 찻잔을 내려놓으며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타카스기의 말대로 비행선 하나 없는 옛 에도의 맑은 하늘이었다. 허나 별 마저도 보이질 않으니, 신스케. 그야말로 그대의 알 수 없는 속이올시다. 반사이는 이 말 역시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며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앗 뜨거.

"왜 그러는 것이오, 신스케."

시선을 느낀 반사이가 타카스기와 눈을 마주치자, 대충 무슨 뜻인지 짐작한 그는 아주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뜨거운 것도 그렇지만 마시려고 할 때 그대가 방해한 것은 생각 안 하는 것이오? 이번에는 반사이의 시선을 받은 타카스기가 하늘 위로 눈을 돌리며 샤미센을 마저 튕겼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군.

아 그러시오. 천인에게 지배받는 이 나라에서 양이지사에게 좋은 일이란 그들이 물러나는 것뿐이었다. 그 순간 반사이의 머릿속이 무언가 빠른 속도로 지나간 것 같았다. 전력도 기세도 오를 수 있도록 하늘에서 백야차라도 뚝 떨어지면 좀 좋으련만. 말도 안되는 생각에 반사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무언가가 떨어진 것인지 갑판에서 쿵, 하고 묵직한 소음이 났다. 습격인가 싶었지만 그런 것치고는 움직임이 없었기에 그저 상공의 비행선에서 천인의 물건이 떨어진 게 아니냐고 깁판에 있던 자들은 웅성거렸다.

"신스케."

"왜 그러지?"

"오늘은 꽤나 맑은 하늘이라 하지 않았소이까?"

물론 그건 갑판에 있던 사람의 지레짐작이고. 아직 상황을 보지 못한 두 사람은 달랐다. 이 밤중에 감히 누가 귀병대를 습격하리라고 생각을 하는가. 웬 괘씸한 놈인가하여 타카스기는 가볍게 튕기고 있던 샤미센 연주를 멈추었다. 반사이. 타카스기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눈짓을 보내자, 그는 작게 한숨을 뱉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타카스기는 반사이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모두 자랑스러운 귀병대의 일원이었으니까. 어느새 샤미센을 내려놓고 곰방대를 피우던 타카스기는 일이 금방 해결되리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더 편한 자세로 바꿔 앉으려는 순간 타카스기는 누군가의 외침에 의해 벌떡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백야차!! 백야차의 습격입니다!!"

뭐? 그 녀석이 왜 여기를 오는 건데. 서둘러 올라간 갑판 한가운데에는 먼지와 함께 연기가 나풀대고 있었다. -이번 달 갑판 청소 담당 누구야! 야마다입니다! 어디 갔어! 두달 전에 병가 냈는데요. 왜 없는 놈을 당번 세워!!- 그 주위를 대원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가장 가까이에는 반사이와 마타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연기 틈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새하얀 머리통에, 마타코는 곧장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아이고 삭신이야~…. "

"뭐임까, 백야차!! 당신 때문에 신스케님이 잠에서 깨버리셨잖슴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갑판 위에 울렸다. 타카스기는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한데. 슬쩍 둘러보니, 그것에 대해 눈치를 챈 것은 반사이 이외에는 없는 듯했다. 다른 대원들은 그저 가라앉은 먼지 사이로 갑작스러운 '백야차'의 등장에 경계심을 높일 뿐이었다.

"응? 뭐냐 마타코. 부 활동은 적해도 7시 이전에 끝내라는 사카모토 선생님 말 못 들은 거냐?"

이 자식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검까. 황당하다는 얼굴을 한 마타코와 눈이 마주친 사내는 잠시 뒤, 도리어 본인이 더 황당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가락으로 마타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교복은 어디가고 그 옷은 뭐냐? 아무리 학교축제가 기대된다고 해도 혼자 벌써부터 앞서나가면 곤란하거든? 설마 너도 중2병에 물든거냐!! 아이고! 타카스기 녀석이 또 애들을 음지로 끌어당기고 있어! 여기는 또 어디야, 그 냉혈경파라는 곳의 근거지냐? 그런거냐??"

"그건 또 뭔말임까!! 여기는 귀병대의 갑판 위라고요! 모르는 척해도 소용없슴다, 백야차!!"

마타코는 두 눈을 부릅 뜨고 엉뚱한 말을 하는 사내에게 외쳤다. 저,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썩어 빠진 동태 죽는 눈깔을 좀 봐라! 분명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기억상실을 핑계로 신스케님을 찾아온 거다! 그렇게 안타까운 사정을 가진 여주인공, 아니 마다오를 보살펴주며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스케님과의 감정은 붙잡을 수없이 커져가고, 결국 그렇게 여주인공, 아니 마다오와 사랑에 빠진 신스케님은 결국…!!

안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 안 된다!! 이미 머릿속으로 드라마 한편을 찍어버린 마타코의 앞에는 뵈는 게 없었다. 눈을 부릅 뜨고 순식간에 라면사리처럼 복잡하게 엉킨 마타코의 생각이 반영된 듯이, 가까이에서 그녀의 소리를 듣고 있던 반사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문제인지, 또 무슨 드라마를 봤길래 이러는 것이오. 

"아까부터 백야차, 백야차 하는데 그게 뭐길래 자꾸 갸갸갸갸. 발정기냐 요 녀석아."

"지금 놀리는 검까!!!"

타앙!

망상이 폭주한 마타코가 결국 사내의 가랑이 사이에 정확한 한 발을 발사하며 노려보자, 사내는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숨을 들이켜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총탄에 의해 구멍이 난 자리를 내려보았다.

"마타코, 잠깐 멈춰보시오."

"뭠니까!! 선배라도 방해하지 마세요."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반사이는 고개를 저으며 총기를 든 마타코의 손목을 내렸다. 사내는 총구가 멀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침 눈이 마주친 반사이가 사내를 보며 말했다. 백야차와 닮았지만 백야차가 아니외다.

"백야차와는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은 보아 하나만 묻겠소이다. 백야차. 아니, 그대는 도대체 누구시오?"

대충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타카스기를 포함한 두 명과 함께 사내는 귀병대 함선의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함선이라 그런지 배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객실로 이동하는 동안 사내는 반사이를 통하여 이곳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에도 외각에 있는 함선이고, 니들은 귀병대라는 양이지사다 이 말이지?"

그리고 이 세계의 내 이명이 백야차라고. 반사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깊은 한숨을 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마른 세수를 했다. 미간이 찌푸려진 것을 보아하니 지금의 상황이 꽤나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건 그렇고 다른 세계의 백야차라니. 이거 놀랄만한 일이올시다."

"그래…. 나도 놀랐다고? 우리 반은 아니더라도 내 학생이라는 놈들이 테러범이라니."

반사이는 고개를 숙인 채 또다시 한숨을 쉬는 백야차와 똑닮은 사내를 쳐다보았다. 정확하게는 다른 세계의 백야차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 자신을 사카타 긴파치라고 소개한 남자는 한 고등학교의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으며, 과목은 국어를 담당한다고 말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름과 안경의 유무였다. 생긴 것은 역시나 본인이었기에 똑같이 생긴 바람에 쌍둥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분위기였는데, 이쪽의 백야차와는 꽤나 다른 느낌이었다.

"저기,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 이 선생님은 진짜로 구멍이 뚫려버릴지도 몰라요. 난 너희랑 다르게 일반인이라고? 유약하단 말이야?"

"네놈이 긴토키라는 것부터 전혀 유약해 보이지는 않다만."

조용히 창가에 걸터앉아 자리를 지키던 타카스기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은 긴파치는 도대체 이 세계의 본인이 어떻게 살길래 제 평가가 바닥을 치냐며 투덜거렸다.

아니, 뒤집어 말하면 몸이 튼튼하다는 말인데 그게 평가가 바닥인 것이오? 반사이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아까부터 뒤통수에 닿는 마타코의 따가운 시선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시선에 자신이 아닌 긴파치에게 향하고 있었고, 지금의 대화는 마타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입을 다물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신에 긴파치에게 백야차로부터 겪은 일을 말해주기로 했다.

"샤미센을 키고 있었는데,"

잠깐의 공백을 깨고 입을 떼자, 긴파치의 고개가 돌아가며 계속하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이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곱슬머리 남자가 목도로 헬리콥터를 패대기쳐서 헬리콥터와 함께 땅에 처박혀서 손가락이 삔 적이 있소이다."

"에~ 그러니까 그 곱슬머리 남자가 백야차?"

"그렇소이다."

"헬리콥터를 목도로 패대기 쳤다는 그…?"

"그러게나 말이올시다.

"…그래서 결과가 달랑 손가락 삔 거라고?"

긴파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백야차는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목도로 헬리콥터를 날리고 그런 큰 사고에 저놈은 겨우 손가락만 삐는 거지. 긴파치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반사이를 쳐다봤지만 그는 어느새 샤미센에 심취한지 오래였다. 쟤 일부러 눈 피하는 것 좀 봐라. 여기는 뭐하나 제대로 된 놈이 없는 거 같지.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는 두통까지 이는 듯, 머리를 헤집는 긴파치를 보며 타카스기는 오랜만에 즐길 수 있을 만한 유흥거리라며 남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선생, 그쪽의 신스케는 어떻소이까?"

"우리 쪽 타카스기 말하는 거냐?"

쟤네는 언제 친해진 거야.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영 어색하다며, 선생 아니면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요구를 하는 긴파치의 뻔뻔한 얼굴과 그걸 좋은 생각이라며 수락한 반사이를 지켜보던 마타코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두 사람을 쳐다봤다. 아무리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해도 백야차는 백야차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기에 긴파치의 주변을 맴돌며 날을 세우던 마타코는 그것도 잠시, 긴파치를 향한 반사이의 질문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마타코의 눈은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등과 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너 말이야…. 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냐?"

"무무무무슨 소림까!! 전혀 그렇지 않슴다! 자자, 그럼 어서 그쪽의 신스케님에 대해서 좀 알려주시죠 선생님!!"

"마타코, 너무 속이 보이올시다"

"입 다무십쇼, 선배. 무려 다른 세계의 신스케님이라고요! 궁금하지 않슴까??!"

"그래서 지금 내가 물어보았,"

"닥치십쇼 선배. 지금 선생님이 말하려고 하잖슴까. 그렇게 구멍 뚫리고 싶슴까?"

자, 선생님!! 저 선글라스는 신경 쓰지 마시고 신스케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쇼! 아니 너무 신경 쓰이는데. 쓰지 마십쇼! 뭐지 얘네는 만담 콤비인가.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동안 긴파치는 본래 세계의 타카스기에 대해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다. 장렬히 실패했다. 그래도 혹시나 마음으로 어른과 청소년인데 생각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었기에 긴파치는 타카스기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거기 타카스기 씨? 이 세상을 어떻게 한다고요?"

"…나는 그저 이 썩어 빠진 세계를 부술 뿐이다."

이런, 별 차이가 없었다. 성인 타카스기도 모든것을 부수는 병이라든지, 왼쪽 눈에 어둠을 품었기 때문에 붕대를 둘둘 말고 다닌다든지, 몸 안쪽에 새까만 짐승이 꿈틀대는가 보다. 음 답이 없군. 빠른 결론을 내린 긴파치는 좀 더 편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방식을 바꿨다.

"그냥 질문받는다."

"그쪽의 신스케님도 당연히 멋지겠죠?! 신스케님은 학생임까 아니면 선생임까? 어릴 때 모습은 봤슴까?? 사진 있으면 그게 더 좋슴다!! 그쪽 세계에도 귀병대가 있, 으음!!!"

평생 이때를 위해 관리해 놓은 머신 건처럼 와다다 때려 박는 질문에 긴파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답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러한 사태를 예상했다는 듯이 반사이가 샤미센의 현을 튕기며 마타코를 포박하고 탁자에 올려져 있던 사과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훨씬 조용해진 마타코에 긴파치가 오, 짧은 감탄과 박수를 보냈다.

"일단 우리 쪽 타카스기는 학생이야. 3학년 Z반이라고 문제아만 모아놓은 반인데, 참고로 내가 담임이다."

"…오….그것참 고생이올시다. 헌데 신스케가 문제아 반이라는 것은 좀 믿기지 않소이다만."

"매년 한 번 이상 정학당하는 건 기본이요, 툭하면 쌈질을 밥 먹듯이 하고 다니는 바람에 징계 받기 일쑤인데다 교내에 그나마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하는 선생이 나밖에 없어서 3년 내내 내가 담임을 하고 있는데 믿기지 않아?"

타카스기에 대해 부정하는 반사이의 말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톡 쏘아붙이는 긴파치에 반사이는 눈을 피했다. 괜스레 헛기침을 하는 반사이를 보고 긴파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거 백 퍼센트 공감하는 표정이다.

"다물고 있겠소이다."

"좋아. 여기는 그래도 성인이라서 그런지 말은 좀 통하나 보구나."

긴파치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서부터ㅡ"

총독님! 조심하십시오!! 긴파치가 막 말을 이으려는 찰나, 큰소리가 들리더니 부서지는 문과 함께 먼지가 날렸다. 누구냐!! 신스케님 제 뒤로 오십쇼!! 언제 포박에서 벗어난 건지 타카스기의 앞에 자리 잡은 마타코가 문 쪽을 경계하며 총을 겨눴다. 서서히 걷히는 먼지 속에서 긴 머리를 가진 여성의 실루엣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완전히 흩어진 먼지 속에서 나온 사람은 입에 물고 있던 도넛을 마저 입속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이사부로가 찾아."

그리고 용건은 끝났다는 듯이 문을 베어낸 검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방을 나가기 직전, 한쪽 구석에 있던 긴파치를 슬쩍 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지나간 폭풍에 잠깐 동안 얼이 빠진 표정을 짓던 반사이와 마타코는 여상스럽게 들려오는 긴파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이거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네."

 "저 여자는 뭠까!! 감히 다른 세계의 신스케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하다니!!" 

"견회조의 부국장이올시다."

그걸 누가 모르냐며 반사이의 머리 옆에 총알 한 발을 날려준 마타코는 그걸로는 부족하다며 다 먹고 남은 사과 찌꺼지를 그에게 던졌다.

"타카스기 씨, 견회조에서 회담의 요청이 들어왔, 억!!"

"늦슴다!!! 타케치 선배!!!"

마타코가 던진 사과 찌꺼기는 마침 들어오던 타케치의 얼굴에 명중했다. 다 먹고 남은 거라도 꽤나 강하게 던진 것인지 헨페이타의 얼굴에 자국이 남아버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던 마타코가 먼저 객실 밖으로 나갔다.

"지금 가지."

그 모습을 보던 타카스기는 재떨이에 곰방대를 털어 소매 안쪽으로 넣어 놓았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에 반사이마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그래. 여기 가만히 있으라는 거지?"

타카스기는 객실을 나가기 전에 긴파치에게 잠시 시선을 두자 긴파치는 양손을 들며 말했다. 그 대답이 정답이었다는 듯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 타카스기가 세 사람과 함께 자리를 비우자, 긴파치는 머리를 긁적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분위기가 이렇게 숨이 막히는 건지. 한시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당분이 하나도 없냐…."

진이 빠진 긴파치는 아쉽지만 옆의 바구니에 담겨있던 다른 사과를 베어먹으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삭한 소리와 함께 달달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용건은 끝났지 않나?"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쳐들어온 견회조에 귀병대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타카스기만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무표정을 고수했으나 사사키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리 오래갈 것만 같지도 않았다. 

"노부타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빙고. 아주 약간이지만 타카스기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눈치챈 사사키가 웃음을 보였다.

"그것 참 재미있겠군."

"별로 궁금하지 않으신가 봅니다?"

"궁금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지?"

타카스기는 사사키를 흘깃 보고는 태연하게 대꾸를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이거 봐라. 사사키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이제 새벽이오니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돌아갈 참입니다만, 혹시 긴장한 겁니까? 그럴만도 하지요. 저희는 엘리트니까요."

"헛소리는 그만두고 볼일이 끝났으면 어서 가십쇼!!"

안 그래도 갈 참입니다만 성질이 급하시군요. 사사키는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마타코가 언제라도 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사실 총알이 발사되어도 피할 수 있지만 엘리트니까 괜히 신경을 건드려 힘을 빼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좀 더 엘리트답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사부로. 확인하지 않아도 돼?"

귀병대 함선에서 나와 견회조로 돌아가던 중에 노부메가 물었다.

"메일을 보내놓았으니 괜찮습니다."

삑 소리와 함께 메세지가 전송되었음을 알리는 알림창이 휴대폰 화면에 떠올랐다. 노부메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사키의 뒤를 따랐다.

[From. 사부짱

제목 : 신쨩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어~o(^▽^)o

다음에 만날 때는 안에 있는 긴 땅과 도너츠를 먹을 거야~

노부타스와 사놓을 테니 기대하라고 전해주세요

P.s 메일 친구가 늘어나겠네~]

타카스기는 그대로 휴대폰을 두 동강 내어 밖으로 던져버렸다. 신스케님의 휴대폰이!! 휴대폰이 바다에 퐁당 빠지는 소리에 뒤늦게 마타코의 비명이 들렸다. 

"타케치 선배!! 빨리 안 구해오고 뭐함까!!"

"휴대폰은 다시 사면 되는, 아야야얏!! 무슨 무례한 행동인가요, 이 멧돼지녀!!"

두 사람의 행동을 무시하고 멀어져 가는 타카스기의 뒷모습을 보며 새 휴대폰 구매를 생각하던 반사이의 주머니에서 띠롱, 맑은 소리와 함께 진동이 울렸다.

[From. 사부짱

제목: 신쨩이 답을 안 보내주네

긴 땅이랑만 도너츠를 먹는다고 해서 삐진 걸까~?

신쨩 몫도 있다고 전해주세요(σ・ω・)σ

P.s 답장을 부탁합니다]

"........."

띠롱.

[From. 사부짱

제목: 아무도 답장을 보내주지 않는 걸까?

P.s ................토끼는 외로우면 죽어버려]

그냥 죽어버리면 감사하겠소. 반사이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두 동강 내어 밖으로 던졌다. 쿨하게 타카스기를 따라가는 반사이의 뒤에는 두 동강 난 휴대폰을 찾기 위해 창문 밖으로 타케치를 밀어내는 마타코가 보였다.

"오 왔네?"

"...안 자고 있었나."

객실에 들어서자 어디서 주워 온 것인지 점프를 보고 있는 긴파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 상황에서 너라면 자겠냐. 게슴츠레한 눈으로 타카스기를 본 긴파치는 반쯤 누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음에는 당분 좀 채워 넣어라. 무슨 사탕이 하나도 보이질 않냐."

"참고하지."

타카스기는 창가로 다가가 소매에서 곰방대를 꺼내들었다.

"뭐냐."

"뭐가."

긴파치는 어이없다는 듯이 타카스기의 손에 들린 곰방대를 가리켰다.

"자라는 놈이 잠 안 오게 밤에 담배를 피워?"

"밤이라고 할 것도 없지 않나."

"그래그래 네 망한 생활패턴 생각해봤자 뭐 하겠니."

더 이상 생각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긴파치는 손을 휘적였다. 타카스기는 조용히 곰방대를 털어 다시 소매 안쪽으로 넣어 놓았다. 긴파치는 문득 물어볼 것이 하나 있다며 객실 입구에 서있는 반사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어디서 자냐?"

"여기서 자면 되올시다."

"아 그러셔?"

긴파치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자 반사이의 시선도 밑을 향했다. 발밑에는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문의 파편들이 아직도 제자리에서 잃은 채 어질러져 있었다. 아, 아까 이 객실의 뒤처리를 맡기는 것을 깜빡했소이다.

"그래서, 소감이?"

"…다른 방을 준비하겠소."

반사이. 타카스기와 눈이 마주친 반사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긴파치 선생, 따라오시오."

"그럼 너네들도 잘 자라."

긴파치는 인사를 끝으로 반사이를 따라 본인에게 배치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거울 하나 탁자 하나 옷장 하나 침대 하나 창문 하나. 이 방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라 이건가. 단출하구먼. 곧바로 침대에 몸을 눕힌 긴파치는 의외의 부드러움에 감탄했다. 얘는 역시 여기서도 돈이 많나 보네. 오늘은 너무 피곤했다. 갑자기 이곳에 떨어진가 하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눈꺼풀이 빛을 가리는 것과 동시에 긴파치는 잠에 빠져들었다.

타카스기 또한 마찬가지로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상에 앉아 머리와 맞닿은 벽을 쳐다보았다. 이 벽 너머에는 긴파치, 그러니까 다른 세계의 긴토키가 있었다. 사실은 긴파치를 제 옆방에 배치해둔 것은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스스로가 말을 해 놓고서는 아차, 하고 짧은 후회를 할 정도로. 그래, 아주 짧은 후회였다.

차라리 자신의 방 옆이 가장 안전한 동시에 감시하기에도 손쉬우리라. 그렇다고 해도 굳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가 있나 싶었다. 그가 다른 세계의 긴토키이기 때문일까. 아마 그것이 가장 정확하겠지. 그러나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아파오는 왼눈에 곧바로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날 타카스기는 아까 보았던 에도의 밤하늘처럼 아무런 꿈도 꾸지않은 채로 잠에 들었다.

20.04.28 작성 24.11.03 퇴고없이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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