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더스 게이트 3

[타브 OC] 새싹과 블랙베리

도둑새님 연교

조각보 by 유채
2
0
0

오래 산다는 건 어떤 걸까? 키샨이 단 한번도 해볼 일 없었던 고민이다. 엘프만큼은 아니지만 하프엘프도 장수하는 편이고,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는 드루이드는 기본적으로 종족의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살기 때문이다. 인간보다는 동물에 더 가까운 하프엘프는 자신이 얼마나 살아갈 지에 대해 딱히 신경쓰지 않았고, 평생 지금처럼 살다 죽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와 함께하던 동물들도, 키샨 자신도, 그들이 남긴 흔적이 모두 지워진 후에도 우드 엘프인 그의 스승은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는 새삼스럽게 궁금해졌다. 오래 산다는 건, 수명의 차이가 난다는 건 무슨 기분일까?

그래서 우연의 일치로 다른 드루이드와 만나고, 그 드루이드가 엘프보다 오래 산다는 님프의 혼혈임을 알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하게 된 질문도 그것이었다.

“저기, 오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해?”

쿼터 님프, 이름을 소개하기를 아피스라던 드루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나 오래 사는 걸 말하는 거야? 엘프? 아니면 그 이상?”

“음… 우드 엘프만큼.”

“대상이 구체적이네.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 거지?”

키샨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음, 소리를 냈다. 상대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마주 앉은 호숫가에서 발을 동당거렸다. 두 사람은 대화 사이의 침묵 속에서 풀밭에 놓인 바구니에서 블랙베리 몇 개를 우물거렸고, 과즙이 키샨의 곱슬거리는 백발 끝을 조금쯤 검게 물들이고 나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내 스승님.”

“생각보다 평범하네. 침묵이 길어서 색다른 관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어쩐지 바로 대답하기가 어려웠어.”

키샨은 그렇게 말하고 호수에 비친 아피스를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드루이드는 다른 드루이드는 고사하고 사람조차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의 스승을 포함해 오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분위기가 보였다. 마치 그들의 시간이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혹은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아주 먼 곳에 존재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런 얼굴을 볼 때마다 무슨 느낌이 드는지, 그것은 세상살이에 미숙한 드루이드가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이었기 때문에, 키샨은 단지 이어지는 아피스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왜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흔한 소망이긴 하지만, 넌 그런 걸 바랄 것처럼 보이진 않아.”

“어, 그렇게 보여?”

다소 어리버리한 대답이 들리고, 키샨은 새삼스럽게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손가락으로 제 뺨이며 이마를 더듬거리며, 마치 정말 그렇게 생겼는지 확인하려는 듯한 몸짓이었다. 아피스는 그 모습을 보고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생김새의 얘기가 아냐. 더 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뚜렷한 동기가 있어. 재물을 더 모으고 싶다거나,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거나… 말하려면 끝도 없지. 네게는 그런 게 안 보인다는 얘기야.”

그건 꽤 보편적인 얘기였다. 주어진 것보다 더 오래 살아가고 싶어하는 이에게는 누구나 욕망이 있다. 더 부유하게 살고 싶다, 더 명예롭게 살고 싶다, 그런 욕망들의 끝에는 대체로 죽고 싶지 않다는 공통적인 바람이 있고, 아피스가 보기에 눈앞의 서툰 드루이드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만약 드루이드로서의 자격 등을 알아보는 자리였다면 괜찮은 자질이라고 얘기하겠지만, 두 사람은 각자 다른 회합으로 배달을 가던 중 우연히 만난 사이다. 일정 사이에 잠깐 난 틈을 타 블랙베리 바구니를 아무렇게나 놓아두고, 호숫가에 발을 늘어뜨린 채 하는 대화에 평가는 별로 맞지 않았다.

키샨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편적으로 숲 속에서 살아가는 드루이드가 복잡한 사정을 잘 모르는 건 사실이어도, 살아가다 보면 자신 스스로가 파악한 사람의 성질이나 삶의 원리 정도는 알게 되기 마련이다. 단지 그걸 깨닫기엔 살아온 시간이 조금 부족했고, 세상을 알아야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말로 표현하는 것도 제법 어려웠다. 한참 후 입 밖으로 나간 답변이 더듬거렸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음, 내 스승님이 우드 엘프인데, 지금까지도 오래 사셨지만… 나는 하프엘프고, 같이 사는 동물들도 그렇게 수명이 길지는 않아서. 그러니까 함께 지내던 가족들이 전부 죽어도 스승님은 살아있을 거란 말을 들었어.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더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알아두려고.”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말이었지만, 본래 무언가가 자라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아피스는 그 답에서 자신이 키워냈던 수많은 종들을 떠올렸고,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의 생김새도 알 것 같았다. 결국 단순명료한 마음이다. 누군가가 혼자 남을 것이 걱정되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생각이 닿은 것이다.

“네게는 아쉽지만, 네가 원하는 만큼 오래 사는 법은 없어. …아니지,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지금 당장 네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할까? 네가 드루이드로서 더 배우고 잘 알게 되면 저절로 깨닫게 될지도 몰라.”

네가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듣고서도 키샨의 낯빛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딱이며 호숫물에 손을 담갔을 뿐이다. 아직 자신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얼굴로, 그러니 그 다음에 나온 말이 평온한 어조인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보고 싶은데… 내가 죽으면 스승님도 슬퍼하실까?”

“그건 내가 알 순 없어. 대답하는 건 간단하지만, 확신은 어렵거든.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닐 거야. 난 지금까지 내가 만든 걸 전부 기억하니까.”

연구용으로 만든 것과 제자를 키우는 것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겠지만, 아피스는 일부러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닐뿐더러, 질문을 한 장본인이 그러면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대단한 통찰이나 깨달음은 없겠지만, 어쨌든 같은 드루이드를 만난 것은 즐거웠고 블랙베리는 조금 신 맛이 나도 맛있었다. 때로는 아직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만남도 있는 법이었다.

카테고리
#기타
페어
#그 외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