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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을 것

앞으로도 영영 오늘에 대해 얘기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검정색 세단이 크게 흔들렸다. 조수석에 앉아 좁은 창틀에 팔꿈치를 올린 채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있던 다자이는 그 덕분에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운전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길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사람인 만큼 운전 좀 똑바로 하라는 힐난을 시작으로 여지껏 액셀과 브레이크 구분도 못하냐느니, 그만한 앉은키로 앞은 제대로 보이냐느니, 트집이란 트집은 다 잡아서 사람 진을 쏙 빼놓을 일방적인 구박이 시작돼야 했다. 

그런데 웬일로 조용하다. 

다자이는 답지 않게 한숨을 폭 쉬고는 다시 창틀에 팔을 올려 아까 전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창밖을 응시했다. 턱을 괴기 전 슬쩍 옆을 흘겨보긴 했으니 역시 한 마디 정도 해주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운전한다니까?"

평소와 다르게 무척이나 싱거운 말투와 내용이었지만 듣는 사람에겐 충분히 '운전 좀 똑바로 하라'는 식으로 들렸으니 아주 틀린 방법은 아니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다자이는 아예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충분히 신경질적인 움직임인 데 반해 눈빛이 꽤나 흐리멍덩했다. 

필요 이상으로 부릅뜬 눈. 꽉 다물린 입매. 왼손으로만 휠을 붙잡고 있느라 죄 불거져 있는 손등뼈까지. 온 신경을 다 끌어다 써서 운전에 집중하던 츄야가 결국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정신 사나우니까 다 뒤진 고등어 눈깔 좀 치워라."

"……입만 산 멍청이."

그러면서도 순순히 시선을 거뒀다. 차가 다시 흔들렸고 츄야는 악문 잇새로 짧게 숨을 들이켰다. 다자이는 또 옆을 흘겼다. 가로등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숲길이었지만 계기판에서 나오는 빛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었다. 갈변된 핏자국에 정체 모를 것들이 말라 생긴 자국이 어지럽게 모여 츄야의 오른뺨을 장식하고 있었다. 관자놀이에서부터 불거진 턱까지, 땀에 절어 달라붙은 머리카락도 눈 뜨고 못 봐줄 꼴이었다. 작게 혀를 찬 다자이가 중얼거렸다. 심드렁한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불만스러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뚫을 거면 못생긴 면상이나 뚫지. 왜 엄한 배를 뚫었대? 죽지도 않고. 짜증나게."

"지랄……."

다자이는 눈을 내리깔았다. 복부를 감싼 상대의 오른팔을 한 번 보고, 제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 오른손을 찾아 운전석으로 몸을 기울이자 츄야가 질겁을 했다. 거의 자리를 넘어오려는 다자이를 피해 몸을 틀다가 휠까지 잘못 트는 바람에 방향을 바로잡느라 차체가 좌우로 크게 울렁거렸다. 유리창에 한 번 더 머리를 박을 뻔한 다자이는 이제 못마땅함을 숨길 생각도 안 드는지 대놓고 씩씩거렸다.

"내려 그냥. 내가 운전하게."

질척한 복부를 한 번 더 꾹 누르며 아픔을 참은 츄야가 겨우 입을 뗐다.

"제발 닥쳐 좀. 네놈 새끼가 운전하는 차 타느니 아까 거기서 뒤지고 말지……."

"뭐라는 거야? 역시 뇌가 뚫린 거야? 뇌가 배 근육에 있는 거지?"

"개소리할 시간 있으면 그만 나불대고……좀, 씨발."

"이미 연락해 놨으니까 입 다물어." 

느닷없이 차가워진 다자이의 말을 끝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가끔 역류한 피를 힘겹게 삼켜 누르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츄야의 부상을 확인하자마자 다자이는 조직과 연결된 가까운 불법 병원에 호출을 해두었다. 작전이 수행된 곳으로부터 차로 10분 거리였다. 지금은 예상 도착 시간보다도 30분이 더 넘은 시간이었다. 적대 조직이 끌고 왔던 차의 열쇠를 찾느라 시체를 뒤지는 데 1분, 배가 뚫린 츄야를 트렁크에 욱여넣을 시간 4분을 생각하면 도합 15분이 걸렸을 일이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늦어진 건 열쇠를 두고 한바탕 소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게 다친 주제에 츄야는 적을 때려 눕히며 날뛸 때보다 더 무식하게 뛰어다녔고 결국 다자이의 손에서 열쇠를 채가서는 운전석을 차지하고 말았다. 드물게 얼이 빠진 파트너를 두고 미련 없이 시동을 걸어 출발하려는 탓에, 다자이는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탑승해야 했다. 

다자이는 속이 쓰렸다. 비단 운전하는 역할을 뺏겨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5분 후, 다 쓰러져가는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서야 츄야는 긴장을 풀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럴싸한 가운만 걸친 의사가 엔진 소리를 듣고 맨몸으로 허둥지둥 달려 나왔고, 운전석에서 츄야를 끌어내다시피 해서는 짐짝처럼 둘러메 데리고 갔다. 조수석에 남은 다자이는 피가 흥건한 옆자리 시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차에서 내려 반바퀴를 빙 돌아 걸으니 흙바닥에 떨어진 모자가 있었다. 대단히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양 엄지와 검지의 끄트머리로 챙을 잡아 들고, 다자이는 모리에게 짧은 보고를 남긴 후 다시 차에 탔다. 이번엔 뒷좌석이었다. 차 문을 열자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비린 냄새가 역력했다. 잠깐 밖에 나와있었다고 후각이 그새 환기가 된 모양이었다.

자리에 길게 눕기 전, 다자이는 앞쪽으로 모자를 던져버렸다. 나중에 깨어나서는 모자에 무슨 짓을 했냐며 앞뒤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노발대발할 땅꼬마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 벌써부터 시끄러웠다.

엄밀히 따지면 츄야는 다자이 때문에 다쳤다. 임무가 끝난 후 언제나 그렇듯 다자이는 뺀질거리는 태도로 츄야의 성질을 자극했다. 다자이의 멱살을 잡아 바닥에 내리 꽂기 바로 직전, 죽은 줄 알았던 놈이 갑자기 일어나 츄야의 뒤로 달려들었다. 손에서 산탄 같은 공격을 뿜어내면서 움직임도 빨라 마지막까지 츄야가 꽤나 애를 먹었던 이능력자였다.

둘은 오랜만에 같은 생각을 했다. 다자이가 츄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전, 츄야가 다자이를 먼저 던져버렸다. 옷깃에서 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놈의 손이 츄야의 옆구리에 닿았다. 그나마 츄야가 급히 몸을 틀어 면적을 최소화한 것이 다행이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짧게 미끄러져 날아간 다자이는 그 자리에 떨어져 있던 권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둘은 차 열쇠를 갖고 말도 안 되는 실랑이를 벌였고, 그리고 차 안에서도 되도 않는 입씨름을 했다. 

그리고 현재 둘은 좁은 차 뒷좌석과 더러운 침대에 각각 누워있게 됐다.

츄야에게 부상을 입히진 않았지만 원인을 일부 제공한 꼴이었다. 인정하고 말 것도 없었다.

평소처럼 붙어있지만 않았어도. 평소처럼 놀리지만 않았어도. 평소처럼 쓰러진 놈들한테 확인 사살만 했어도. 평소처럼 떨어진 곳에서 지휘하고 바로 철수만 했어도. 

여기까지 오는 내내 둘 중 아무도 그런 것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영영 오늘에 대해 얘기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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