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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그래서 둘은 될 대로 떠들었다.

남자는 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각도며, 배치며 철저한 계산 하에 구속된 상태인 만큼 '바라보고 있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었지만. 

대못으로 바닥에 고정된 오른손은 상처에서 흘러넘친 피와 지혈제가 엉겨 크고 작은 고름이 차오른 것처럼 보였다. 사방이 녹물과 핏물로 범벅된 감옥 바닥과 큰 차이가 없었던 탓에, 마감이 덜 된 채 굳어버린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눈을 몇 번이나 감았다 떴다. 관자놀이에서 눈 앞으로 흐르는 것이 땀인지 피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안구를 적시는 액체 때문에 하릴없이 깜박거리는 눈꺼풀 두 쌍이 남자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근육이었다. 그러다 새파란 라텍스 장갑을 낀 한 손이 불쑥, 시야 바깥에서 침범해 와 남자의 다섯 손가락 끝을 하나하나 매만졌다. 손 크기로 보아 상대는 체구가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남자는 눈 앞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가락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 사이의 간격을 자로 잰 것처럼 정성스럽게 조절하고, 고통으로 구부러진 채 굳어진 마디 관절을 일일이 피는 동안에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콧노래가 계속됐다. 

그는 남자의 새끼 손가락 각도가 맘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작은 마디를 모래로 쌓은 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중하게 건드리던 손이 마지막으로 약지와 소지의 거리를 쟀다. 섬세하게 움직이던 손은 남자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 엄지와 검지를 서로 맞닿도록 오므리고는, 바닥에 박힌 못의 머리를 톡 소리가 나도록 튕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제 하나도 안 아프지? 아까 못질할 때 너무 아파하길래 자는 동안 마취를 좀 했어."

목소리가 어렸다. 아니, 정말 어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느낌이었다. 남자는 손을 움직여 보려 했다.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마취를 했다니 그런 것도 같았다. 손바닥 가운데가 아릿한 것이 뒤늦게 느끼게 된 마취 기운인지, 아니면 차원을 넘어서 무뎌진 고통인지 헷갈렸다. 

이번에 남자의 시야에 침투한 것은 손이 아니었다. 아까 전 장갑과 마찬가지로 파란 부직포 커버로 싸인 구둣발이었다. 부직포 안에 비닐을 한 겹 덧댔는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자의 시야 내에서 한참이나 서성이던 두 발이 멈췄다. 남자의 눈 앞에서 무릎을 꿇은 덕분에 새카만 바지를 입은 무릎과 허벅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목을 가눌 힘이 없어 상반신 위로는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응? 내 얼굴은 봐서 뭐하게."

남자가 용을 쓰는 것을 눈치채고 한 소리였다. 그리고 다시 새파란 장갑을 낀 손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양손이었는데 한 손에는 펜치를 들고 있다. 펜치는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진 엄지 손톱의 모서리를 따라 완만하게 움직였다. 제일 바깥쪽이 적절한 위치라고 생각했는지 펜치로 손톱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손아귀 안에서 단단히 도구를 고쳐 잡는다. 그 다음, 손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벗겨내는 움직임이었다. 손톱 옆 거스러미를 뜯어내다가 얇은 표피가 끊어지지 않고 손가락을 따라 길게 벗겨지는 것처럼, 장갑을 낀 손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섬세하게 손톱의 밑을 들어내고 살점에서 단백질 껍데기를 분리했다. 남자는 입을 크게 벌린 채 그 과정을 모두 목격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남자의 손에서 떨어진 펜치 끝에는 손가락 끝에서 분리된 뭉툭한 손톱이 물려있었다. 응고돼있던 핏물이 바닥으로 길게 늘어졌다.

"아, 맞다. 사실 마취가 아니고 근육이완제만 놨어. 그리고 또 정신 잃으면 안 되니까 각성제도 조금? 비명은 잘 지르더라. 그럴 기운으로 정보 몇 개만 말해주면 여러 사람이 편할 텐데."

피가 묻은 장갑이 남자의 얼굴 앞으로 다가와 눈꼬리와 입매를 쓸었다. 부드럽게 어르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 큰 어른이 왜 이렇게 울어? 더럽게 침도 흘리고."

남자는 불규칙적으로 숨을 삼켰다.

"여기 들어온 지 벌써 열흘 째라며. 나도 시간이 남아 도는 건 않지만 넉넉히 쓸 만큼은 있어. 부탁 받고 온 마당에 나까지 빈 손으로 들어가면 체면이 안 서잖아. 어떻게 할래? 한 시간에 하나? 그러면 최대 9시간 안에 끝나. 아니면 30분에 하나로 해서 4시간 반 안에 끝낼까. 그러면 조금 아쉬우려나. 발톱까지 칠까?"

남자의 손등 위로 얇은 고무의 질감이 미끄러졌다. 피 때문에 큰 마찰 없이 손등 위를 쓸어 나간다. 못이 박힌 곳 주변을 한참이나 배회하다가 손가락을 세워 빙글, 빙글, 빙글 돌린다. 그 후에는 바닥에 놓인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얄상한 손가락이 들어찼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연결되는 부위를 훑는 움직임 만큼, 나즈막한 목소리가 끈적하게 눌어붙었다.

"한 번 해봤으니까 이제 우리 둘 다 알잖아. 바깥부터 들어내는 건 쉬운데 여기, 중간이 조금 뻑뻑해. 방금은 나도 나름 조심해서 움직인 거니까 통째로 뽑을 수 있었는데, 나머지 아홉 개도 다 그렇게 순조롭게 될 거라는 장담은 못하겠어."

남자는 손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피부 아래가 차가워지는 기이한 감각에 시달려야 했다. 다정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혹시라도 중간에 깨지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그럼 부서진 부분을 붙잡고 이어서 빼야지. 그러면서 살점을 헤집게 될 거고, 손톱 뽑히는 거에 더해서 생살이 찝히고 쓸리는 것까지 고스란히 느끼게 될 걸? 아. 손톱 밑의 살이 얼마나 여린지 알아? 지금 알아볼래?"

남자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바닥에 두었던 펜치를 조심스레 집어든 손이, 방금 전까지 손톱이 자리했던 곳의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졌다. 목소리가 지하의 벽을 타고 유쾌하게 울렸다.

"고통에는 두 가지가 있어. 상상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 어떤 게 더 확실할 것 같아?"

쾅.

느닷없이 저 멀리 뒤편에서 커다란 물건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방 안으로 빛이 들어찼다. 금방이라도 손 위로 떨어질 것처럼 눈 앞에서 추처럼 흔들리던 펜치의 움직임도 멈췄다. 느리게 허벅지를 짚고 일어선 상대는 두 발을 움직여 자신의 머리를 넘어갔다. 새카만 존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남자는 자신의 얼굴이 경련하는 것을 느꼈다. 

"뭐야."

"뭐긴 뭐야."

분명 고조돼있던 목소리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낮고 거칠었다.

"또 고문인 척 생체 실험 같은 거 하냐?"

"누구야."

"……너 그거 갖고 나대다가 머리라도 다쳤냐?"

가까이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들려오는 짜증 섞인 목소리에서는 아까보다 완연히 어린 티가 배어 났다.

"아니. 누구 때문에 온 거냐고. 아, 됐어. 옆 방에 볼일 있으면 그쪽에나 가지 여긴 왜 와? 멍청함이 옮을 거 같으니까 빨리 가버려."

"……알면서 물어보는 심보하고는. 누님이 어떻게 돼 가는지 슬쩍 보고 오라고 해서 왔다. 떫냐?"

"'슬쩍'이 뭔지 몰라? 하긴 너같은 근육 덩어리한테 그런 섬세함이 있을 리가, 아, 뭐야. 나가라고. 어딜 들어와."

넓은 보폭으로 걷는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고 바로 이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진짜 저질이네. 손댈 수 있는 넓은 데 다 놔두고 쥐새끼처럼 손톱이나 건드리면 퍽이나 시간이 절약되시겠다."

딱. 딱. 신경질적으로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누구처럼 무식하게 힘만 세서 있는 뼈, 없는 뼈 다 분지르다가 머리통까지 부수는 것보단 낫지 않아? 가뜩이나 일손 딸리는데 없는 일까지 새로 만드는 어디의 꼬맹이보단 낫지."

딱. 딱. 이번에는 구두 앞코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왜 몰라? 몇 개월이나 코빼기도 안 보이던 배신자 놈 은신처 알아내고 도망 못 가게 힘줄만 잘라서 산 채로 잡아온 게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해? 다 잡아다 줬으면, 아무리 뇌에 근육만 들어찼어도 알아서 마무리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내가 요리하고 살까지 다 발라서 입에 넣어 줘야 돼? 아, 말하면서 상상했더니 속 안 좋아."

"내가 할 말이다. 야, 그럼 그 새끼가 입만 열면 열 받는 소리만 해대는데 가만히 듣고 있냐?"

"그래, 그래. 포트 마피아의 최단신 간부께서 배신자 나부랭이의 유치한 도발에 넘어가서 축구공 차듯이 머리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배신자는 쉽게 처단했지만 동시에 고문할 기회도 날아갔지. 그래서 지금 그 놈이 어디에 무슨 정보를 팔았는지, 연락책은 누구였는지 일일이 찾아다니느라 나까지 이 고생인 거잖아?"

"이 자식 한 번만 더 키 얘기 꺼내면 죽여버린다. 그래서 일일이 사람 풀어서 찾아냈고 옆 방에 있는 놈이 불겠다고 했으니까 다 수습된 거잖아. 그리고 그렇게 잘나셨으면 다음엔 고문 맡는 사람 성질머리 생각해서 혀라도 자르고 보내든가."

패악을 부릴 법한 내용에 비해 심드렁한 목소리를 듣고, 소년은 소리를 지르다시피 짜증을 냈다.

"진짜 바보야? 혀를 자르면 어떻게 말하게 할 건데?"

"거 시끄럽네. 평소엔 남들이 입 떼기도 전에 다 파악하시는 대단한 최연소 간부께서 순전히 자기 재미 때문에 고문하는 것보단 효율적인 방법이 있겠지. 아저씨는 안 됐다? 옆 방 놈이 먼저 불어서 그냥 손톱, 발톱만 뽑히고 뒤지게 생겼네."

"당장 모리 씨한테 파트너 바꿔달라고 할래……. 이렇게 생각도 키도 짧은 애랑 더는 못 다녀……."

"어, 웬일이냐? 나랑 같은 생각도 할 줄 알고. 나도 너 같이 음침한 놈이랑 계속 다니는 거 이제 사양이다."

"아! 이제 됐어. 당장 나가."

들어올 때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며 철문이 닫혔다. 터벅터벅. 느릿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과 손 사이로 예고도 없이 펜치가 떨어졌다. 아차. 얄상한 손이 시야 끝에서 나타나 떨어진 공구를 집어갔다. 남자는 눈을 또 몇 번이나 깜박였다. 언제 큰 소리를 냈었냐는 듯 차분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남자의 귓전을 맴돌았다.

"들었지? 옆 방에 있는 아저씨 친구가 다 말한다고 했다네. 그럼 우리는 아까 하던 거 마저 할까? 이제 여유도 있고."

남자는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어느샌가 다시 가까워진 펜치의 끝이 둥글게 검지 손톱을 맴돌고 있었다.


"됐냐?"

철문을 나서던 다자이는 옆 벽에 기대어 서있던 츄야를 한 번 보고 무시했다. 다자이가 무시를 하든 말든 츄야는 재차 물었다.

"야, 됐냐고."

"어."

"……별일이다. 이딴 연극도 하고?"

또 말이 없었다. 코요의 직속 부대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 다자이가 직접 고문에 나서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다자이가 자신의 일에 츄야를 끼워넣는 것은 매우 드물다 못해 영영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츄야는 그것이 간만에 다자이를 괴롭힐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알았고, 다자이는 이것이 평생에 남을 치욕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다자이는 손에 들고 있던 펜치를 아무렇게나 구석으로 던져버리고 장갑과 신발 커버를 벗었다. 아까 감옥 안에서 본 것보다 더 피에 절은 것을 보니 아마 필요한 정보를 얻고 난 후에 신체에서 뽑을 수 있는 부위라고는 전부 뽑아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 저런 놈은 그냥 고문만으로 입 안 열어."

"흠."

"아, 뭐. 할 말 있으면 해."

지상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던 다자이가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츄야가 덩달아 짜증을 냈다.

"도와줘도 난리네. 앞으로는 이딴 시간 낭비 시키지 말고 혼자 해결해라."

"응. 사서 걱정 안 해도 츄야랑 '앞으로' 같은 건 없어."

다자이는 다시 계단을 올랐다. 멀찍이 따라 오는 소리가 들리다 말았다. 

츄야에겐 그저 감옥에 들어올 시간만을 전했다. 합을 맞출 정도의 정교함은 필요 없었다. 그래서 둘은 될 대로 떠들었다. 둘이 나눈 대화 중 어디가 거짓이고 어디가 진실이었는지에 대한 사실 확인 역시 의미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즉흥적으로 벌인 짧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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