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5주차, 마멜 님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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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바디로션에서는 레몬과 숲의 향기가 납니다

나는 복숭아 향을 더 좋아하지만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수제 버거 가게에서는 쿠폰으로 직원의 포토카드를 줍니다

이런 창의는 어디서 태어나는 걸까요

최근엔 기다리던 후루츠산도 다이어리를 얻었습니다

먹을 수 없단 점이 포인트지요

가을 옷을 장바구니에 모두 담았더니 자그마치 이십 육 만 원이었습니다

작년에도 같은 일을 겪었는데 말이에요

방금 먹은 초코파이는 삼 년 전보다 조금 작아졌습니다

내가 커진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말하자면 텅 비었습니다

나의 요즘을 주절거리면 삼 년 전과 다르지 않지요

무엇 하나 손에 쥐지 못했습니다

차마 셀 수도 없는 수표 더미에 파묻히거나

날개 달린 요정이 영원한 소년의 나라로 날 데려가줬음 했는데도요

그러나 아주 작은 것들이

그 자그마한 것들이

먼지와 티끌과 조금이

나의 공백을 채웁니다

나의 공허를 메꾸어서

나를 건축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삼 년 전의 나는

내가 복숭아 향과 레몬 향 둘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지 몰랐고

새로 생긴 가게에도 버거에도 도전하지 않았고

먹을 수 있는 후루츠산도에만 관심이 있었고

이십 육 만 원을 전부 결제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초코파이가 너무 작아져 검지 위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되더라도

자라려고 합니다

어쩌면 팔십 년 후의 어느 가을

반짝이는 소년이 내 방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말입니다

혹시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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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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