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엄쳐온 개는 자주 멍, 하고 운다

7회차, HBD

B에게 by H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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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살과 껍질로 이루어진 단일 유기체들. 울타리를 꺾고 그 속에서 노니던 양 떼 같은 핏줄을 엮지 않는 이상 영원히 외로울 것. 그것 역시 인류가 고안해낸 슬픔의 한 갈래겠다만. 나도 안다. 그의 어린 마음. 하지만 어린 것은 늘 미성숙한 것이 아니고, 미성숙한 것은 언제나 결여된 상태가 아니고. 그것들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상태인 것. 그래서 나도 안다. 당신의 둥근, 각을 세우지 않는 마음. 아마 어떤 평행우주에서는 네가 나의 반려견이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먼 은하와 성운을 통과해 지금 이 지구에 사는 나에게 돌아왔니.

내가 보기에 넌 별로 걱정할 게 없어 보여. 내가 껍질과 육신에 대해 생각할 때 넌 포옹을 생각했고, 내가 이별과 당위에 대해 생각할 때 넌 오목과 볼록에 대해 생각해냈으니까. 스스로를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세계엔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것들뿐이라 네 앞에서는 부끄럽게도 내가 주저앉은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구나. 너와 나의 차이. 네가 먼저 깃을 꽂은 애정의 그루터기. 난 다만 그 가지 위에 매달려 있었을 뿐. 영근 열매를 떨어트리듯 그의 머리 위로 무게감 있게 손을 얹어본다. 세계의 팔 할이 상대적이고 관념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린 자주 물질세계의 육신을 붙들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시간은, 적어도 인간이 상정한 개념 안에서, 늘 앞으로만 흐르는데, 그런 비합리적인 흐름 속에서도 기어이 의미를 발굴하고 자라난다는 게 참 갸륵하지 않니. 너의 모든 감각이 충실함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고, 회피하거나 변명하지 않는 의지가 있어서, 사실 사람은 시간이 아니라 축적으로 성장하는 거야. 그렇게 개였던 너는 손가락과 입술이 섬세한 사람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구나. 쓰다듬으면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두 팔로 나를 안아줄 수 있는 평등한 다감함을 배웠구나. 끌어안은 그의 검은 머리칼에서는 자꾸만 울고 싶어지는 냄새가 난다. 눈물은 왜 짠 걸까. 그건 아마 네가 우주의 가장 깊은 바다를 헤엄쳐 와서 그런 걸 거야. 그렇지 않니.

 

그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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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댓글 1


  • 수집하는 나비

    와 1연은 <지구에서 한아뿐>이 생각나요 그리고 이 시에 진짜... 제가 지금까지 사랑해왔던 개님의 글의 모든 특성이 다 녹아있어서 내가 이걸 공짜로 읽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루종일 쓰다듬고 싶은 시네요 너무 좋은 걸 보면 언어를 잃는다고들 하잖아요 그 말이 진짜인 것 같습니다... 그냥 뭐 말을 덧붙일 수가 없어요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싶은 시네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 거죠 개님의 글을 읽으면 세계를 보는 시각이 트여요 참 행복한 인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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