懷玉有罪

분수에 맞지 않는 귀한 물건을 지니고 있으면 재앙을 부를 수 있음을 이르는 말.

Tokyo by 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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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풍경이 일렁인다. 어색한 교복을 입고 고전에 처음 당도하던 날부터 소박한 꽃다발을 받는 순간까지. 즐거웠던 시간이 철저히 왜곡된다. 웃는 얼굴이 비틀리고 하늘과 땅이 뒤바뀐다. 공간을 넘어 사람이 섞인다. 제 눈앞에 있는 모리 사소리는 총 둘이다. 얼룩덜룩한 금발을 한 너 하나, 샛노란 금발을 하고 있는 너 하나. 검은 잉크보다 더 검은 네 눈동자는 여전히 읽기 힘들다. 하나, 둘, 셋, 넷. 눈동자를 센다. 이치, 니, 산, 시, 고, 로쿠. 균일한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존재하는 현실 속 죄수 하나가 추억에 젖어 헛소리를 지껄인다. 참으로 우스운 꼴이다. 리이치도 이치도 되지 못한 생명체가 네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만약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다면, 아님 지금 당장 죽어 영혼의 형태가 된다면. 센소지의 내당을 더럽히고 있는 제 추잡스러운 꼴을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험한 욕을 했을테다.

나는 나를 돌아볼 수 없다. 네가 너를 돌아볼 수 없듯. 애초에 약이 망치기 전에 이미 망가졌을 사람이다. 약이 없었으면 애초에 미쳐 날뛰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보았어도 너는 똑같은 말을 할까. 물론 슬픈 척 울거나 안타까운 척 묵념하는 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가 친히 연기하고 싶어질 자극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됐을까. 순전히 정신이 망가지는 모습도 좋아했을까. 적어도 정신이 온전하던 시절의 리이치는 ‘글쎄’라고 답했을 것이다. 정신 나간 짐승 이치는 ‘그랬으면 해’라는 답을 남긴다.

약은 철저히 핑계다. 제 몸을 망가뜨린 건 외부에서 투입된 약물이라는 핑계. 모리 사소리를 지하 감옥으로 주기적으로 부를 핑계. 기타 등등. 그 중에 진실된 건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 싶다는 마음 뿐이다.

널브러진 짐승이 웃는다. 숨을 헐떡일 정도로 심하게 웃는다. 너무 웃은 탓에 고통스러운 기침이 절로 난다.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크게 심호흡한다. 산소가 뇌에 닿지 않은 탓에 가뜩이나 어지러운 머리가 점점 더 안 돌아가기 시작한다. 매스껍고 울렁거리는 기분이 썩 불쾌하다. 색다른 고통 속에서 자유를 실감한다.

“울면 안 돼~. 울지 마-. 내가 죽으면, ··· 울지 마.”

눈가에 맺혔던 눈물의 일부가 차디찬 바닥에 닿는 순간 말을 바꾼다.

“그래도 친우, 아니··· 친구 비슷한 거였잖아. 울어줘. 울고 추모해. 남들처럼 국화도 놓고 가-.”

시계추처럼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마다 의견이 바뀐다.

“내 죽음을 안타까워했으면 해-. 제발, ··· 가지고 놀기 재밌었던 장난감 하나를 잃어버려 아쉽다는 마음이라도 괜찮아. 그래도 해줘. 그래도··· ···.”

시간은 계속 흐른다. 약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사소리가 하는 말은 대부분 거짓이잖아.”

분명 고전 시절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여전할까. 희망과 절망의 경계에서 여전히 배회한다. 약이란 그를 모순이란 무간지옥으로 이끌었다. 지옥은 배회해 봤자 지옥일 뿐이다.

“지금은 믿고 싶어.”

죄수 치고 팔자가 참 좋다. 잘해주는 사람도 있고, 주변에 챙겨주는 사람도 있다. 추억을 회상할 여유도 있으며 아직까지 두 다리로 멀쩡히 걸어다닐 수 있게 살려주기도 했다. 아무리 가혹하고 비윤리적인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목숨을 앗아가지 않았다는 시점에서 이미 천운을 타고났다고 말할 수밖에. 동시에 천운을 불운으로 여기는 리이치는 평생을 불행할 예정이다. 약기운이 번진다. 손 마디 끝까지 약이 퍼져 더이상 생명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다. 지금 하는 말은 유언에 가까운 말. 모든 감각이 뒤틀린다. 야속하게도 청각은 증폭되어 네 얕은 숨소리마저 크게 들린다. 두렵다, 나를 향해 말하는 저 말이. 꼭 신의 전언 같아 두려움이 밀려온다.

결국 그가 마주한 신은 제게 악마의 손길을 뻗는다. 긍정적인 해피엔딩이라거나,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따스한 온기따위 없었다. 엉망으로 엉켜버린 시간선이 하나로 돌아온다. 그리워했던 누군가의 모습도, 그가 바랐던 무언가도, 점점 제 자리를 찾아 수납된다. 다시 꺼내볼 수도 없는 곳으로, 영영 그의 곁을 떠나가 버린다. 시계 초침은 보이고 들리지 않아도 선명하게 굴러간다. 고작 몇 분, 아니 몇 초 남짓되는 시간동안 그의 시간이 철저하게 붕괴된다. 마지막 남은 리이치의 잔재가 사라진다.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힘없는 비소가 이어진다. 이어가고자 했던 숨이 점점 느려진다. 익숙하게 휘어지는 눈꼬리와 입꼬리. 사후경직이 일어나는 즉시 가장 익숙했던 표정으로 돌아간다. 아, 죽는 건가. 그의 육신이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영혼이 죽어버려 더이상 무언가를 이어갈 수 없었다. 약이 깬 순간에 달라질지 몰라도 일단 현재는 그러했다. 마지막으로 품어왔던 인간성이 막을 내린다. 이 추잡한 이야기의 결말을 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하나, 둘, 셋, 넷. 일정한 간격을 두고 눈에 물방울이 맺힌다. 감정적 반응일지, 생리학적 현상일지 모를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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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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