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
오토로지
귀를 찢을 듯이 웅웅거리는 소음, 깨지고 부서지는 금속들. 피부를 태울 듯이 타오르는 열기, 제 살을 가르고 파고드는 공포. 그리고 누군가의…….
로잘리 옥타비우스는 눈을 떴다. 정돈되지 않은 가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기도가 짓눌리고 막히는 기분이다. 숨을 폐가 감당할 수 없어 저릿하다. 시야가 어두워지다, 밝아지기를 반복한다.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형체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팔다리를 허우적대다 어깨가 눌린다. 발작하듯 요동치던 몸이 진정된다. 그제서야 모든 게 눈에 들어왔다. 다시 찾아온 악몽이었다.
로잘리가 의식을 되찾은지도 수일이 흘렀다. 그 사건이 벌어진 지도 수십일이 지났다는 것이다. 당시 병상에서 눈을 뜬 로잘리는 제가 살아있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공간을 집어삼킨 열기와 모든 것이 무너지는 소음. 유리 조각에 비춰 산란하는 빛. 그리고 암전. 그 순간 로잘리는 죽음을 직감했다. 여린 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파편들이 제 숨을 앗아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대수술을 거치고 긴 시간 잠들어있었지만, 살아남았다. 기적처럼.
메마른 입술이 따가웠다. 모래를 마신 것처럼 목이 버석하다. 로잘리는 간호사가 건네준 물을 삼킨다. 머리카락을 적신 땀과 요동치는 심장박동이 끔찍한 악몽의 순간을 되살린다.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날뛰는 박동을 진정시켜 본다. 기억 속의 얼굴은 여전히 지워져 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의식을 되찾았더라도 여전히 잠들고 깨어나는 일의 반복이었다. 내리쬐던 햇빛은 도시의 소음을 삼키는 비가 되어있었고, 태양이 지는 붉은빛의 시간은 태양이 뜨기 전 푸른빛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의식을 차리고 그것들을 바라볼 때마다 로잘리는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자신만 도려내어져, 그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채로 있다고. 다른 무엇보다 기억 속의 공백이 그를 더 유리된 존재로 만들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로잘리의 몸은 회복하고 있었다. 지우지 못하는 흉터가 남았지만, 몸은 사고 이전으로 천천히 느릿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그대로였다. 어느 한 사람의 얼굴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사실이 꼭 사건 이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아서,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또다시 악몽이 찾아왔다. 휘어지고 깨지는 공간. 세상을 뒤덮은 붉은빛과 반짝이는 유리들. 웅웅거리는 소음. 불길한 열기, 파고드는 순간. 그리고 누군가의…….
로잘리는 눈을 떴다. 여전히 시야가 붉다. 점멸하는 빛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숨통이 조여와 숨을 토해낸다. 로지. 이름이 들린다. 흔들리는 몸을 누군가 누른다. 뺨을 문지르는 거친 손바닥이 느껴진다. 로지. 그 손이 익숙해 뺨을 기댄다. 로지. 시야를 되찾는다. 붉은 건 없다. 평온한 병실이다. 제가 있는 곳을 깨닫고 주변을 둘러본다. 로지. 공백이 채워진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