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플랫폼(2) - 이중구조

본격적인 비판에 앞서, 오늘은 아주 가벼운 상식 삼아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해 언급해두려 한다. 경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니 지레 겁 먹진 말자. 우린 이미 그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설명을 들어보면 이해가 될 내용이다. 

자, 대한민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명문대와 대기업을 외칠까? 명문대를 나오지 않으면 대기업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고, 대기업이 아니라면 임금이 낮거나 고용 계약이 불안정적이거나 아니면 둘 다에 해당돼서 언제나 가슴에 사표를 품에 품고 다니게 만든다. 임금과 고용 안정성 말고도 회사의 지원이나 복지 면에 있어서도 훨씬 나은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이렇게 대기업과 공무원 등으로 대변되는 양질의 일자리가 바로 1차 노동시장이다. 1차 노동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도 짠 일자리를 2차 노동시장이라고 구분하는데...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여 평하라면 '직관적으로 정상적 노동시장과 노동착취시장이라 부르지 그랬어요?' 정도의 코멘트를 남기고 싶다. 

어쨌든. 이 정도 설명으로도 충분히 파악했겠지만 여기엔 두 시장 간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도 붙어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재수니 몇 수니 해가며 수능과 공시 등을 치지 않는가. 그리고 면접 뺑이를 몇번을 치더라도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을 고르려고 하지 않는 사소하지만 강력한 인생의 팁들이 바로 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이다.

이쯤에서 촉이 오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어... 이거 플랫폼 업계에서도 일부 해당되는 거 같은데?' 싶다면 바로 그거다. 그 얘길 하고 있는 거다.

웹소설 업계에 만연해진 이중구조를 지적하기에 앞서 먼저 정리해둬야하는 개념이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예술가가 노동자인지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이번 경우 웹소설/플랫폼 업계라는 특징이 겹쳐있긴 하지만 이런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있어 예술가들이 어떻게 1차 2차 노동시장에 속하는지 따질 수 있느냐던가 플랫폼이나 출판사의 직원은 그럼 어디에 속하냐던가 이것저것 따져야할 게 많으니 하나하나 정리해보자.

예술도 노동이다. 가끔 예술이 노동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주장인지 전혀 모르겠으니 어떤 맥락에서 예술도 노동임을 보고 있는지 명확히 해두겠다.

예술인이 예술 안 했을 때 그 사람은 무엇으로 먹고 사나? 집이 엄청 부자라 자아찾기의 일환 삼아 없는 재능 긁어짜서라도 예술가인 척 하는 극소수의 사람은 일단 제외하고 하는 소리다. 순수든 대중이든 예술하는 사람이 상상을 하기만 하면 밥이나 돈이 나오던가? 아니면 가만히 있는데 돈이 나오는가? 작품을 만들어둬야 팔리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예술가가 예술활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거저 안 생긴다. 오히려 예술의 경우 물감이나 종이, 전력 등 사소하든 크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본과 자원을 소비하지 않으면 만들어낼 수 없다. 초기자본이 비교적 덜 들어가는 소설이라 해도 글을 써서 남길 방법이 없으면 못 만든다. 그렇기에 예술이라 한들 직업이 되는 순간 노동이 되는 거다.

최근 예술인고용보험이 드디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는데... 물론 처음 생긴 제도라 완벽할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이제는 정부도 예술가를 노동자로 보고 있다. 한국의 예술인고용보험이 아제사와 앵테르미탕을 어느 정도 참고한 티가 나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한국이 이제야 이런 예술가들과 관련한 복지제도가 생긴 이유는 그간 한국이 매카시즘의 영향을 워낙 찐하게 받은 것도 있지만 독재정권 아래에서 대중예술이 핍박도 오지게 당하고 이용도 알차게 당하다 보니 정부에서 쉬이 손을 대기 꺼림칙한 위치가 됐기 때문이다.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이명박근혜 시절 동안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진보 성향의 예술가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재판도 했잖은가. 물론 그 재판 결과를 보면 사법기관이 한심할 지경이고 현 정부가 이 예술인들이 본 피해가 분명히 있음에도 재판과는 별개로 너무 손을 놓고 있지 않냐는 비판은 할 수 있을지언정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명확해졌다. 거기다 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예술가들이 말 그대로 '굶어죽어가는 상황'이 되어가니까 도입을 서두른 영향도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한국은 그간 예술에 있어 굉장한 푸대접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면 프랑스는 이런 예술가 복지가 잘 되어있는 걸로 명성 있는 국가인데 앵테르미탕만 하더라도 18세기 파리코뮌 시절에 생겼고 아직도 제도의 미흡한 점을 보완 중이며 한국의 전경련 비슷한 단체인 MEDEF란 경영인 단체가 눈엣가시처럼 여겨 없애려들고 있고, 프랑스엔 앵테르미탕 말고도 여러 제도가 있다. 예술가에게 주거 복지를 해주는 예술가의 집이라거나 위에서도 짧게 언급한 사진, 음악 원고 또는 서면 텍스트와 같은 저작권이있는 원본 자료의 라이센스 또는 판매를 통해 돈을 버는 일부 개인에 대한 사회 보장 세금을 관리 하는 협회 아제사(AGESSA)라거나 공연예술고용보험 AFDAS, 문화/커뮤니케이션/미디어 전문종사자 사회보험 오디앙스(AUDIENS) 같이 말이다.

이야기가 도중에 조금 다른 곳으로 샜지만, 어쨌거나 그럼 이제 예술인도 노동자란 명제를 두고 이 노동자에게 펼쳐져있는 노동시장, 플랫폼의 실태를 보자.

웹소설의 경우 플랫폼이 기능하도록 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 플랫폼에 전송/게시할 작품을 만드는 작가, 작가와 계약한 작품을 받아 편집하고 플랫폼과 계약해 이를 편집/전송하는 출판사, 플랫폼을 이용해 소설을 읽기 위해 재화를 소비하는 독자, 플랫폼 공간에 작품을 게재하고 광고를 띄우는 플랫폼 직원과 광고주(카카페와 네이버는 무료 캐시 어쩌고 하면서 광고를 따로 받아서 게재하고 있다. 잘 따져보면 이것도 짜증나는 일인 게,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이미 전송 서비스를 대가로 재화를 지불하고 있는데 플랫폼 이용자 풀에서 자체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 광고를 받고 있는 거고 그 중에서도 카카페는 클릭미스를 부러 유발하는 위치에 이 섹션을 설정해 두고 있다. 소비자의 호오는 묻지도 않고 말이다.)가 있다. 

이들 중 한 측만 없어도 플랫폼은 기능할 수 없다. 아 물론, 광고주는 빼고 하는 말이다. 카카페랑 네이버 말고 다른 플랫폼들은 그런 거 없어도 멀쩡히 수익을 내고 있지 않은가.

자 그렇다면 플랫폼은 이를 인지하고 '이익을 적당히 공정하게'라도 나누고 있는가? 그럴 리가 있나. 애초에 잘 따져보면 이 안에서 플랫폼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자체가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을 거다. 잘 와닿지 않는 분들을 위해 좀 더 구체적인 부연설명을 붙이겠다. 

작가 / 출판사 직원 / 플랫폼 직원이 일해서 만든 컨텐츠를 독자가 소비하는 걸로  이 업계는 사이클이 완성된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깊게, 좀 더 원론적으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져서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자.

판매상품인 작품을 만드는 작가는 1. 마감을 지켜서 2.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야 한다. 이 두 가지 일은 일견 간단해보인다. 하지만 세상 어떤 일이 그리 쉽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마감 주기와 그 양이다.

1회 분의 원고는 약 5000자다. 이게 어느 정도의 양인지 예상이 안 된다면 직접 써보길 바란다. 빨리 쓰는 경우는 5~6시간 정도면 된다고 하지만 느리게 쓰는 사람의 경우 x2를 하거나 x3을 해도 된다. 

여기서 자신을 작가라 두고 가정해보자. 웹소설 업계에서 오래 버티는 작가는 한 줌 밖에 안 되고 대다수는 막 데뷔한 신인이니 신인이라는 가정 하에 5천 자 원고를 뽑아내는데 8시간 정도 걸리는 사람이라고 치자. 컨디션이 좋을 때는 6시간이면 되지만 안 풀리는 날에는 10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가정하고, 보통 사람들처럼 주 5일 근무하듯 컨디션이 안 좋아 마감이 밀릴 것까지 감안해 주 4일의 연재를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멘탈이 티타늄 합금급의 작가라 한들 항시 괜찮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쓰레기 내 글도 쓰레기 어쨌든 쓰레기' 모드라 쓰고 슬럼프라 읽는 정체기가 오면 원고의 완성은 작가도 모르고 편집자도 모르고 신도 모르는 상태가 되기 마련이고 못 놓는 작가 손에서 편집자가 원고를 뺏어야만 하는 그런 무간지옥 루프가 생긴다. 이 때를 대비해 보통은 쉬는 동안 비축분을 쌓아놓는데 한창 연재 중일 때 슬럼프가 생긴다? 그날로 적당한 노동강도와는 영영 이별이다. 카페인, 피와 근육, 기대수명을 갈아넣어서라도 쓰는 수 밖에. 게다가 완결을 내기 전까지는 작가가 휴재를 한다는 건 연재할 동안의 비축분을 만드는 거지 정말 쉬는 게 아니다.

이렇듯 작가는 연재를 하는 동안 노동력은 물론 건강을 갈아넣는데 받을 수익은 극도로 불안정하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 플랫폼은 작가는 물론 편집자에게까지 대단한 노동착취를 하고 있다. 바로 연재 주기와 비축분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장르별 탑 랭킹을 살펴보다 보면 주3~4일은 무슨, '매일'연재인 작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부분은 플랫폼도 출판사도 원하는 부분인데 주 3회 연재라는 비교적 작가가 덜 무리하는 스케쥴로 진행되는 연재보다 매일 연재되는 쪽이 수익이 더 높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 더 높은 수익은 매력적이나 이는 냉정히 말해 병자로 가는 일방통행로다. 농담 하는 거 아니다. 웹툰 작가도 그렇지만 웹소설 작가도 손가락이나 손목, 허리가 망가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갖은 질병은 바리에이션이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가 힘들다. 그간 과로사가 아닐까 의심되는 몇몇 작가분들의 부고도 있었는데 평범한 직장인도 과로사로 인정받기 힘들고 산재로 인정받기는 더 힘든 마당에 그분들의 이름을 거론해서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으니 이 글에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의심사례는 이미 존재한다는 걸 기억해두고 이 얘기를 들어보자.

최근 들어 카카오페이지가 작가들에게 런칭 시 원고 비축분을 100화를 요구한다고 한다. 100화가 얼마나 되는 양이냐? 책으로 4권이다. 단순계산해도 약 5000자 x 100이니 50만 자를 요구하는 거다. 1화에 8시간 걸린다고 가정했으니 단순계산만으로는 800시간의 사전노동을 요구하는 셈이기도 하다.

더 최악인 점은 이 100화로 깔끔하게 완결내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 카카페는 장편을 선호한다. 장편이 수익률이 더 좋단 이유로 장편을 선호하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다. '선호'가 뭔 잘못이겠나. 하지만 최소 100화 + a를 원해서 작가와 출판사에게 요구 하는데 이에 관련된 지원은 무엇이 있는가? 

카카페는 아마 이렇게 변명할 거다. '우리는 그래서 작가님들의  안정적 생계를 위해 MG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착취라 매도하지 마십시오.'

대단한 개소리다.

이들이 대단한 복지인양 말하는 MG가 뭐냐, 미니멈 개런티(Minimum Guarantee)의 약자다. 카카페의 MG 정책이 복잡하다는 말은 워낙 유명하나 최대한 쉽게 설명해서 MG는 결국 선인세를 다른 말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계약서를 직접 확인할 수 없어서 건너들은 얘기들을 종합한 것이란 점을 필히 염두에 두고 읽어주길 바란다. 카카페의 MG 정책은 어렵고 복잡하다는 평이 압도적이었다. 무엇보다 최악인 부분은 선인세를 받게 되면 카카페가 선투자란 명목으로 무조건 45% 수수료를 받아간다는 점이었다. 작가가 이를 거절하면 기다무 런칭 포기하겠냐는 은근한 압박이 들어온다고 한다. 당연히 카카페와 척지고 싶은 작가는 없으니 싫든 좋든 오케이 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 이 선인세는 개인 / 브랜드로 나뉘어져있다고 한다. 개인에게 주는 선인세는 작가 본인에게 직접 들어가는 거고 브랜드는 그럼 뭐냐, 출판사다.

개인에게 들어가는 선인세가 그렇다고 바로 플랫폼이 작가에게 다이렉트로 꽂아주는 건 또 아니다. 당연하지만 출판사를 통해 전달된다. 여기까지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개인 MG라는 게, 제일 처음 1회 줄 때는 카카페의 주장대로 '선투자로 인한 리스크' 성격이 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작가라 해도 그 작가가 쓰는 작품이 100% 히트칠 수도 없거니와 얼마나 팔릴지는 정말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 작품 내에서 두번째로 받는 선인세부터는 이미 그간 축적된 판매 데이터가 카카페에게 있다. 사실 소설이라는 게 초반이 제일 많이 팔리고 그 다음화부터는 서서히 판매량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어느 화만 팍 많이 팔릴 리 없잖은가. 고로, 작품 매출 추이가 분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카카페는 딱 자신들이 팔 수 있는 만큼만 선인세를 더 지급한다는 말이 있다. 이럴 거면 굳이 수수료를 45%나 떼갈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이 개인 MG가 갱신 되는한 작가는 수수료를 지속적으로 45%씩 떼이는데 작품의 매출이 저조해지면 이 선인세 지급이 사라지고 그때부터 30% 수수료가 적용되는 모양이다. 여기서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선인세를 받은 만큼의 매출을 작품이 내지 못 할 때가 그렇다. 그 '선인세보다 마이너스 수익인 작품'을 쓴 작가가 같은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카카페에서 다른 작품을 연재하게 되면... 이 다른 작품으로 낸 수익으로 전작에 지급된 선인세의 잔액을 청산해야한다.

여기까지 읽고 '개인 MG가 이렇게 거지 같은 거구나. 그럼 브랜드 MG는 좀 더 나은 건가?'라고 생각하는가? 브랜드 MG는 더 개판이다. 아까 위에 짧게 설명했듯 브랜드 MG의 브랜드는 출판사를 가리킨다. 

이 브랜드 MG란 거 자체가 카카페가 정산 귀찮아서 저지른 짓이다. 브랜드 MG랍시고 출판사는 카카페로부터 거액의 선인세를 받는다. 작가 개개인을 이리저리 따져가며 계산하기 귀찮으니 일단 이-만큼을 뚝 떼서 자기네들 기준으로 신용이 있는(기준이 뭔지는 또 모른다.) 출판사에게 떼줘버리고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하란 식인데... 잘라 말해 브랜드 MG는 작가랑 전혀 상관 없다.

이렇게 거액을 받은 출판사는 자신들 회사의 작품을 카카페에 전송함으로써 수수료를 무조건 45%로 고정시켜버린다. 그래, 거기까진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렇게 받은 거액의 선인세를 출판사가 작가에게 나눠주는지 꿀꺽 해버리는지는 카카페의 소관이 아니다. 그렇지만 당연히도, 이 브랜드 MG를 받는 출판사와 계약한 작가는 선인세를 받든 못 받든 수수료가 30%로 낮아질 가능성이 완전히 제로가 되어버리는 거다. 그런 고액 수수료를 대가로 건넨 선인세니 말이다.

선투자는 출판사에게 해놓고 수수료는 작가한테서 삥 뜯는 구조가 이렇게 완성된다. 더 최악인 점은 출판사에게는 작가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출판계약시 계약서에 이 항목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작가와 출판사는 개인과 회사다. 어느 쪽에게 법무법인이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면 명확해진다.) 이 의무를 아예 유기해버리는 걸 이 브랜드 MG는 권장하고 있는 거나 다름 없다.

두 가지로 나뉘는 MG긴 하나 둘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도 있다. 먼저 입금 시기가 너무 제멋대로고, 선인세를 주는 것 자체도 돈이 되는 연재를 하는 작가에게만 해당된다는 거다. 또 이 MG라고 나오는 선인세 또한 출판사와 했던 계약의 비율 대로 나눠 갖는다고 한다. 물론 들어오는 돈은 원천 징수료를 떼고 들어온다고 한다. 즉, 선인세가 1000만원 들어왔고 계약 비율이 6 : 4라면 작가가 정작 손에 쥐는 건 600만 정도란 소리다. 

게다가 이 'MG 받을 만큼 팔릴 만한 작품'들이 바로 심사를 거쳐 기다무로 런칭되는데 기다리면 무료랍시고 24시간 마다 한 편씩 무료가 되는 그 분량은 전부 작가 부담이다. 놀랍지 않은가? 더 놀라운 건 이 프로모션 심사가 짧으면 2~3개월, 길면 6개월까지도 걸린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그 동안은 돈이 안 나온다.

결국 작가들은 프로모션 위해, 작품이 잘 팔리도록 잘 홍보해달라는 목적으로 수수료를 45%나 내고 있는 셈이다. 정작 그렇게 무료분으로 풀리는 홍보비마저 작가가 부담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고 말이다.

대체 이게, 어떤 구석이 '투자'란 말인가? 이익을 얻기 위해 자본과 시간을 붓는 걸 투자라 한다. 즉, 실패했을 때는 손해를 본다는 걸 각오한 결정이기도 하다. 언제나 100% 수익률을 보장하는 투자란 게 세상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이 MG 제도를 통해 카카오페이지가 대체 어떤 손해를 각오하고 투자를 하고 있단 건지 한번 생각해보라. 이 개인 MG 제도에서 카카페가 손해를 볼 수 있는 경우는 '예상을 심하게 벗어날 정도의 매출 급락이 발생했는데 작가가 그 이후로 카카페에서 연재를 하지 못하는 경우' 뿐이다. 이건 그냥 투자도 무엇도 아닌 자신들의 고액 수수료 책정을 위한 갑의 지위를 이용한 일방적 착취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게 대체 어디가 이중구조라는 거야, 싶은 분들이 계실 거다. 글쎄... 국내 주요 대기업이 독과점 지위를 확보하고 있어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걸로 먹고 사는 하청기업이다보니 불공정 거래가 발생하는 걸 너무 쉽게 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카카오페이지가 하고 있는 행태가 바로 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이용한 것과 뭐가 다른가? 단순히 이런 맹점을 이용만 하는 게 아니라, 이중구조를 더 공고히 하고 있기도 하지 않은가.

카카오페이지는 이 웹소설 업계에서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플랫폼들을 다 합쳐도 카카오페이지의 점유율을 못 이긴다는 걸 이미 다들 알고 있다. 그래, 이미 반쯤은 독과점 생태계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거다. 이 압도적 점유율을 권력으로 카카오페이지가 운영하고 있는 방식은 분명한 문제다.

물론 이번 글에서는 카카오페이지를 주로 다루었지만 다른 플랫폼이라고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이 기존 유통업의 악습을 모아놓은 것과 무엇 하나 크게 다룰 것 없으며, 이러한 점 때문에 말이 플랫폼 산업이지 그 근간은 디지털 기술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착취에 불과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해야할 일은 자명하다.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공론화는 기본이고, 더 직설적으로는 웹소설 작가 노조가 필요하다 판단하고 있다. 프랑스가 지금의 예술가 복지제도를 가지게 된 건 누군가가 그들을 존중해서 배려의 차원으로 내준 것이 아니라 파업을 통해 현재의 지위를 획득해냈기 때문이다. 

정부가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업체, 쿠팡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 등 플랫폼업체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대폭 강화한다고 말은 했지만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나가는 집단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의 공정위가 대단한 권한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벌금을 청구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개인이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한 금액도 아니거니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구제안이 지극히 제안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마지막으로 플랫폼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어려운 구석이 있는 글이기에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만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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