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플랫폼(3) - 플랫폼이 해야 할 역할
지금 당장 난립해있는 웹소설 플랫폼이 없어지면 벌어질 일을 상상해보자. 작가들의 단행본 작업에는 크게 타격이 없을 거다. 단행본 시장의 절대 강자가 리디북스라지만 웹소설 단행본 자체는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점은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인터넷 서점에서도 프로모션에서 자유롭진 못하단 한계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작가들의 연재장이 아예 없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제 와서 팔리지도 않아 kg당 500원에 수출되는 새 신문에 소설을 연재할 수도 없거니와 잡지 시장도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빠르게 쇠퇴했으니 인터넷 공간에 남은 연재 영역은 그간 오래 살아남아온 출판사 사이트로 회귀하거나(예전엔 출판사의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연재도 했다... 아주 옛날엔.) 딜리헙이나 포스타입 같이 개인이 소형 플랫폼을 통해 파는 게 고작일 거다.
이렇듯 웹소설 플랫폼들이 존재하기에 작가들이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을 수준의 연재장이 확보된다는 장점은 있다. 아니면 단행본을 팔아서 그 정산이 끝날 때까진 손가락만 빨며 어떻게든 버텨야한다는 작가의 슬픈 현실을 그나마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게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연재란 건 부정 않는다. 그러나 플랫폼 또한 작가의 연재로 인해 분명한 이득을 보고 있다.
본디 소설 연재는 고료를 작가에게 지급하고 그 대가로 원고를 자신들이 게시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지금 플랫폼이 만들어낸 연재의 형태는 고료는 아예 없고, 전송과 그 광고를 대가로 작가의 고유 권한인 창작물의 수정 조차 통제하려 든다. 특히나 카카오 페이지가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연재했던 소설의 단행본의 개정을 통제하려드는 건 엄연한 월권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연재는 연재에 불과하다. 마감 기한이 극도로 짧은 연재기 때문에 오히려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거니와 독자의 연령대를 고려해 표현의 정도를 조절했던 걸 판매량을 일부 포기해도 자유롭게 풀어내고 싶은 작가의 자유를 무슨 권리로 막는단 말인가? 까놓고 말해 회사가 고용한 작가에게나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을 고용도 안 하는 주제에 요구하는 건 유통업자들의 유서 깊은 양아치 짓에 불과하다.
유통업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자에서부터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담당하는 산업이고, 이 자리를 플랫폼이 끼어들면서 도매, 소매, 운송, 보관, 정보 등의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건 사실이나 본디 유통업이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여 경제의 원활한 흐름을 유도하는 기능은 크게 기대할 수 없어졌다. 플랫폼 산업이 보이는 행태는 생산과 소비 모두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플랫폼이 해야 할 역할은 기존 유통업이 만든 악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시장 자체를 확장하는 개척자다. 일반적으로 유통업에서 품을 들이는 수송, 보관, 재고, 포장 등을 플랫폼은 극단적으로 단축시켰고 소설을 바탕으로 한 만화, 소설이나 만화를 기반으로 한 영상매체 등이 성공을 거두며 이 시장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와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보여줬다. 이 시장을 개척하기도 전에 다 살라먹는 짓만 하지 말길 바라며 플랫폼 측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할 제시를 하겠다.
1. 프로모션 선정 기준을 공개하라.
프로모션의 선정 기준을 공개한다 해서 이를 악용할 소지가 있는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작품이라는 건 결국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만들어지는데다 코드의 유행 흐름은 예측불가능하다. 그런 고로 선정 기준을 예측해 맞춘다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플랫폼의 프로모션 선정 기준이 단순히 작가의 실력과 인기에 좌우되는 게 아닌, 특정한 코드가 있다면 기실 이는 마케팅 요소로 활용 가능하다. 로판 장르에서 예시를 든다면 리디북스는 20-30대 여성 위주의 로판에서 유니크한 요소가 들어간 작품들을 주로 계약해가고, 네이버 시리즈는 3-4권 사이의 분량의 연애물을 선호하지만 헌터물 관련한 픽이 괜찮은 편이며 브릿지는 클래식 판타지 계열과 SF 쪽의 픽이 좋은데 이는 민음사의 영향으로 다져진 고전적인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헤비한 독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정도 아니던가. 특정 플랫폼의 자회사가 작가를 컨텍할 때 이 선정 기준과 전혀 무관하게 선정했는지를 따지고 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오히려 궁금할 지경이다.
2. MG 제도를 전면 개편하라.
지금의 MG 제도는 선투자도 무엇도 아닌 일수꾼의 행태나 다름 없다. 모든 종류의 플랫폼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벤트 캐시가 작가의 정산 때 수익으로 계산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광고 하기 위해 거액의 광고비를 이중으로 모자라 삼중으로 치르고 있다.
이제 와서 연재하는 원고비를 제대로 계산해 지급하는 것까진 기대하지도 않으니 '선투자'라는 말이 어울리도록 수수료를 조건으로 한 지급을 그만두길 바란다. 그간 웹툰 업계에서 해오던 악습의 범위를 없애지는 못할 망정 넓히지 마라.
3. 작품을 보호하라.
그간 플랫폼 업체들은 어마어마한 수수료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통 관리를 손놓고 있어 작품들이 불법사이트에 도둑 맞는 걸 수수방관해왔다. 그런 불법 사이트들을 플랫폼들이 가뭄에 콩나듯 한 대씩 치긴 하는데 그럼에도 엄연한 헛점은 존재한다. 피해를 입은 작가가 그 이상은 커녕 자신이 받은 피해만큼이라도 배상을 받을 방법은 실질적으로 없고 불법사이트 운영자가 내야하는 벌금 또한 이 범죄 수익금보다 적은 경우가 허다하다.
고로, 이 불법 사이트의 도둑질에 있어 플랫폼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애초에 도둑 안 맞을 수준의 보안을 유지하고 불법 사이트를 빨리 포착해 운영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조지는 방법 뿐이다. 유통되는 작품들의 관리감독의 책임이 플랫폼에게 없으면 대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단순 조회수로 계산해도 대충 추정되는 작가들의 피해액을 보상 받을 방법이 생긴다면 좋겠지만 이는 의회의 몫이니 괜히 노조 소리를 하는 게 아님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4. 작가를 보호하라.
작가 관리에는 작가에 대한 보호도 포함되어있다. 작가 관리 자체는 출판사의 업무가 맞으나 플랫폼은 작품에 댓글 기능을 붙임으로 인해 화제성은 누리되 작가의 보호는 조금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여왔다. 아니, 오히려 그 폭력에 동조해왔다. 특히 요즘 네이버 시리즈가 보이는 행태를 보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작가가 특별한 혐오발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셀들이 어디서 좌표 찍고 우르르 몰려와 작가의 연재 중단, 즉 당장의 생계를 위협하고 협박, 폭언을 일삼으며 작품의 별점을 말도 안 되는 저점을 주며 판매량에 지장을 주려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는데 네이버 시리즈의 대응은 허탈할 지경이다. 검토해보겠다는 말로 있는지도 모를 관련 부서는 아무 것도 안 하고(진짜 없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 지경이다.) 있는 걸로 모자라 작가 개인이 직접 나서서 사과문을 쓰게 하질 않나 한심할 지경이다. 정작 장애인 혐오, 여성 혐오 같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가는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말이다. 이게 기업이 보일 태도가 맞긴 한가? 리스크 관리 부서가 아예 존재하지 않나 보다.
무엇보다, 별점을 고의로 낮게 주는 행위로 인해 별점이 떨어지면 판매량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는지 공개하고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이러한 손실을 어떤 식으로 막을지 정도는 얘기해봐야하는 것 아닌가? 지독한 인터넷 상의 괴롭힘으로 작가가 스트레스성 질환을 얻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 급사하거나, 자살하게 될 경우 산재 처리도 안 되는 마당에 말이다. 댓글란을 완전히 닫아버리던지 아니면 이러한 행위가 모욕죄로 기소될 수 있음을 인지 시키는 행동이라도 하길 바란다.
웹소설 시장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플랫폼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인간의 본성은 매체를 크게 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만화만 보는 사람, 소설만 보는 사람, 영화나 드라마만 보는 소분류야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시놉시스에 내제되어있는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구석이 같단 소리다.
그러니 앞으로도 지속성장 가능성이 높고 실패 없는 2차 투자가 가능하게 만드는 이 소설 시장을 조금쯤은, 그간 벌어들인 수익에 합당한 정도로라도 아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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