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1)
오늘은 알람 소리가 잠시 울렸다가, 빠르게 꺼졌다.
휴대폰 화면을 더듬거리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시간은 6시 정각, 날짜는 12월 24일. 청년의 하루는 특별히 고려할 법한 사정이 없다면 늘 같은 시간에 시작된다. 단체 생활을 오래 한 탓에 규칙적인 일과가 익숙한 전직 선수는 휴일에조차 늦잠을 잘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직 어두운 침실 안, 그는 생각보다 밝은 휴대폰 불빛 탓에 눈을 오래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기상을 미루는 일은 방금의 것으로 끝이라는 듯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분쯤 지난 뒤, 복도와 거실의 불이 차례로 켜졌다. 그는 부엌으로 향하며 아침 메뉴와 오늘의 일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렇게 이른 시간에 불을 켜 두지 않지만, 그의 딸은 오늘까지 같은 반 원생의 집에서 자고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언제나처럼 그녀가 깰까 기척을 죽이던 버릇마저 곧 관두었다. 혹시라도 바라던 연락이 와 있을까 휴대폰을 다시 살펴본 것이 그 대신이었다. 딸은 저보다 일찍 잠들고 늦게 일어나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침으로는 채 썬 양배추를 샐러드로 조금 먹었다. 전날 딸의 도시락에 넣어주려고 양배추를 골라 와서 썰었다. 정작 딸은 함께 넣어준 드레싱만 조금 먹고 샐러드는 남겼다고 해도 말이다. 딸의 식성과 건강한 식단 사이에서 타협하는 건 늘 쉽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나보다는 입이 짧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지…. 청년은 소스도 없이 잘만 풀들을 씹어 넘긴 끝에 일어나 그릇 하나를 씻어 둔다. 부엌을 조금 더 정리하고, 욕실에서 간단히 씻고 나온 뒤에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지부로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 다행일 만큼 할 일이 많은 하루였다. 그는 부지런히 집 안을 쓸고 닦으며 흔쾌히 딸을 하루 맡아준 나나우라 부부에 대해 생각했다. 그 부부도 딸을 키우며 맞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부부가 청년과 딸의 아파트에서 아이 걸음으로 걸어서 십 분쯤 되는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부쩍 부모 사이에서도 연락이 잦아지게 되었다. 서로 아이를 맡아주게 되는 날이 제법 늘어서였다. 자신도 나나우라 씨들도 저녁에 불가피한 일정이 생기는 날이 가끔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 때 어린 자식을 빈 집에 혼자 두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천운이었다. 외가와는 아내를 잃은 뒤 조금씩 서먹해지는 중이었고, 자신은 제 부모님에게 아무 때나 딸을 맡아 달라 아쉬운 소리를 해볼 만큼 살가운 아들이 못 되었기 때문에. 딸만큼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지내는 것 같아, 그는 가끔 기뻤다.
어린 나나우라 양은 하고픈 말도 하는 말도 많아 시도때도 없이 흥분으로 볼이 빨개지는 어린애였다. 청년의 집에는 여리고 하얀 피부에 바르게 할 로션이나, 몸에 맞는 잠옷, 머리끈, 비슷한 입맛의 또래가 먹는 음식이 늘 준비되어 있었기에 딸이 친구의 손을 잡고 집에 오는 게 그 부부가 미안해하는 것만큼 곤란하지 않았다.
청년은 창틀을 닦다 말고 시선을 올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이 끼어 흐릿한 회색이었다. 요 몇 주간 하늘은 아주 드물게 잿빛이었다. 아빠,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오겠지? 그는 아이를 품에 안고서 올해에는 그럴 것 같다 대꾸했다. 일단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예고한 기상청을 믿기로 했었는데. 다행히 딸아이의 실망한 낯을 볼 필요는 없게 된 모양이다.
그는 창고를 뒤져 작년에 넣어 두었던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 먼지를 닦고, 미리 깔아 두었던 카페트 위에 두었다. 감아 둘 전구와 크리스마스 장식이 든 상자는 작동이 된다는 것만 확인하고서 근처에 두었다. 저녁까지 시간이 부족했다면 직접 꾸몄겠지만, 딸이 직접 꾸미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오늘 오전까지 친구와 일일 공예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천천히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히루야는 상자를 덮어 놓고서 일어나 휴대폰을 쥐었다. 기다리던 연락이다.
「오늘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따 봬요!」
그는 아이카와가 덧붙인 이모티콘을 살피다, 저녁은 먹지 않고 오면 된다고 답장을 보냈다. 두 사람은 오늘 자신이 준비해 둘 식사와 함께 사키가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미묘한 맛의 쿠키까지 먹어야 했으니까. 작년에는 쿠키 위의 아이싱까지 선생님이 올린 것 같았는데, 이번 것은 삐뚤빼뚤 두꺼운 모양으로 산타나 양말, 트리 따위가 겨우 그려져 있었다. 언니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며 제 손에 올려 놓았던 봉지를 도로 뺏어가려 들었던 것마저 새삼스럽게 애틋했다.
딸이 가져오는 수공예품은 해가 지날수록 정교해져 갔다. 그렇다고 다섯 살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게 특출나게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네 살이던 딸이 만든 것보다는 그럴 듯 했다. 아직 받지 못한 크리스마스 카드도 작년에 받은 것과 달리 내용이라고 할 만한 게 적혀 있는 것 같았고, 십 년쯤 더 키우고 나면 용돈을 모아 산 선물 같은 걸 받게 될 지도 몰랐다.
그는 제 딸도 십대 후반이 되어서는 매일같이 방 문을 잠가 두고 자신과의 잡담을 줄이려 들 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전에, 우선 집에 돌아온 딸을 맞이하고 손을 씻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