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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이지는 어중간한 인간이다.

by 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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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도 했으니, 이제 온전한 NOTME의 일원이 되도록 해.”

엘리엇 에버스가 차를 홀짝이며 이야기한다. 다니엘 페이지는 팔짱을 낀 채 그런 엘리엇 에버스를 노려본다. 엘리엇 에버스는 웃는다. 엘리엇이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교내 퀴디치 선수를 했던 그의 다부진 몸이 말라 비틀어진 다니엘 쪽으로 수그려진다. 엘리엇이 낮게 읊조린다.

“상냥하게 말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네 차에 무언가를 타지 않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으하하핫! 엘리엇이 몸을 펴고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협박이라니, 많이 늘었군, 다니엘! 그래, 그 정도 기개는 되어야지. 커다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는 지팡이를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한다. 찻값. 그렇게 중얼거리며 엘리엇은 시클 한 닢을 다니엘 쪽으로 튕긴다. 아, 그리고, 덧붙이는 목소리,

“너 역시 피투성이 페이지란 걸 잊지 마.”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엘리엇은 사라진다. 다니엘이 분노에 가득 차 자리에 벌떡 일어났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엘리엇은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다니엘 페이지는 분한 마음에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젠장, 젠장, 젠장! 그 소리에 놀란 에스메 페이지가 달려온다. 다니엘, 무슨 일이니? 걱정 가득한 누나의 표정에 다니엘은 주먹을 거둔다. 아무것도 아냐, 누나. 그렇게 말하며 다니엘은 붉게 물든 손등을 뒤로 감춘다.

겉피부가 까진 손등은 어중간한 고통을 선사한다. 마법약을 쓰자니 재료가 아깝고, 가만히 두자니 신경에 거슬린다. 다니엘은 한참을 제 손을 노려보다 머글들이 사용하는 연고를 바른다. 오른손이 까졌으니, 왼손으로 서투르게 약을 바르게 된다. 누군가가 도와주면 좋을텐데. 그때 다니엘 페이지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스쳐지나간다. 그 애가 곁에 있었다면 분명 걱정을 해주었겠지.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것도 대신 해주었을 거야. 다니엘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린다. 정신 차려 다니엘 페이지, 그 애의 곁을 택하지 않은 것은 너야.

다니엘 페이지는 반론한다. 수많은 어둠의 손길들이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고. 자신은 그 중 하나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였다고. 자신은 피투성이 페이지니까. 이름처럼 붉은 머리칼을 갖고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가 없다고… 그러자 또다른 다니엘 페이지가 다시 반론한다. 선택한 것은 너였노라고. 그애는 분명 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도와줬을 것이라고. 붉은 것은 네 머리색만이 아니라고. 핑계를 댄 것은 너 자신이라고…

다니엘 페이지는 거울을 본다. 어중간한 빛깔의 적갈색 머리가 눈에 거슬린다. 손등의 어중간한 상처가 신경에 거슬린다. 어중간한 자신이 그 무엇보다도 거슬린다.

다니엘 페이지는 어중간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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