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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by 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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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이지는 이 시간이 좋지는 않았다. 제가 만든 시간이건만, 예상 외로 곤욕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다니엘의 눈 앞의 그 곤욕이 서 있었다. 곤욕은 기다란 회색머리와 커다란 보랏빛 눈을 가진 소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다니엘 페이지의 곤욕은 아이비 워링턴이라는 뜻이다.

“그리핀도르 6학년 스테판 알지?”

“… 모르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튼!”

네가 먼저 물어봤잖아. 다니엘은 속으로 궁시렁 거리다 혀를 씹을 뻔 했다.

“걔가 신시아 좋아한대. 고백할 예정이라고 그리핀도르에 소문 쫙 퍼졌어. 케빈이 알려주더라.”

뭐?! 다니엘 페이지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커진다. 손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지팡이는 툭, 힘 없이 떨어져 데구르르 굴러간다. 아이비 워링턴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먼지 속에서 구르던 지팡이는 다시 다니엘의 손에 쥐어진다. 아이비가 다시 한 번 지팡이를 휘두르자, 이번에는 지팡이에 묻은 먼지가 사라진다. 지팡이 좀 잘 쥐고 있어. 아이비의 타박에도 다니엘은 개의치 않고 벌떡 일어섰다. 다니엘 페이지의 곤욕은 이제 얼굴도 모르는 그리핀도르 6학년 스테판의 형상을 띈다.

다니엘 페이지는 깃펜을 쥐고 의미 없는 점을 찍어댄다. 양피지에 가득한 점이 징그러워질 무렵, 다니엘은 그것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무슨 일이야, 다니엘? 이라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올 참견꾼은 지금 데이트 중이라는 것이다. 그래, 행복해라 행복해. 나만 빼고 둘이 아주 그냥 깨가 쏟아져라, 딜런, 아이비. 다니엘이 중얼거린다. 세상–이라고 쓰고 여기서는 딜런과 아이비라고 읽는다–은 분홍빛으로 행복하게 물들어간다. 잿빛으로 칙칙한 나만 빼고… 차라리 시를 쓰는 게 낫겠어. 다니엘은 중얼거리다 또다시 양피지를 구겨 던진다.

다니엘 페이지는 신시아 번즈를 좋아한다. 다니엘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신시아가 좋아. 그 애가 웃는 게,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오는 게, 다정한 목소리로 괜찮냐고 물어봐주는게… 으아아악! 다니엘이 소리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책상을 쿵, 치자 그대로 잉크병이 엎어진다. 으악! 이번 괴성은 제 소리를 찾았다. 다니엘이 다급히 지팡이를 휘둘러 잉크를 치우고는 한숨을 내쉰다. 아이비 워링턴은 이야기했다. ‘너는 말로 고백할 용기는 없으니 차라리 편지를 써라.’ 그 말에 다니엘이 울컥하여 무언가 대꾸하려 하자, ‘그럴 용기가 있었으면 네가 래번클로가 아니고 그리핀도르였겠지.’ 라고 말하는 아이비에 다니엘은 할 말을 잃었다. “글 쓰는 법은 알지? 너는 화려한 미사여구 같은 건 못 쓰고 있을 게 눈에 선하니까, 그냥 본론만 써. 본론만.” 2연타를 제대로 맞은 다니엘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다. 아이비는 몸을 돌려 사라진다. 나 딜런이랑 데이트 있어. 이따 저녁식사 시간에 봐. 어쩌라고! 재수없어! 다니엘 페이지가 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다니엘 페이지가 세 장 째 양피지를 구겨넣는다. 아이비가 그랬지. 편지를 쓰라고. 본론만 간결하게…. 다니엘 페이지는 네 번째 양피지를 펼친다. 다니엘에게 기나긴 고민을 안겨준 편지는, 우스울 정도로 간단한 세 줄로 끝이 난다.

-

“미쳤어? 이걸 전해주겠다고?”

“네 말대로 본론만 썼잖아! …이게 내 최선이야.”

To. Cynthia

I like you.

Sincerly, your friend,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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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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