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프세카] 세상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어
포타 백업
세상은 바야흐로 AI의 시대였다. 업무도, 과제도, 숙제도, 결정도, 모두 컴퓨터에게 의지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루이의 지식과 기술은 빛을 발했다. 그의 괴이함은 비상함이 되었고, 하늘 끝에 닿았다.
“…그래도 쇼는 사람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
“나도….”
당연한 수순으로 원더랜드 쇼타임은 와해되었다.
“…미안. 네네로봇과 떨어지긴 힘들 것 같아.”
남은 건 츠카사와 에무.
그리고 세카이.
츠카사와 에무는 노력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없어져도 포기하지 않았다. 떠나간 이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츠카사의 마음에서 태어난 세카이의 모두는 그들의 기원을 따랐다. 절반이 사라진 원더랜드 쇼타임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했다. 쇼를 더 이상 세상이 보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마지막 관객이 되겠노라고도 생각했다.
쇼의 연습을 할 공간이 없어져, 세카이에서 연습을 진행하는 나날이 이어졌었다. 그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다들 어서와.”
“카이토, 항상 고마워.”
“너희가 쇼를 이어갈 수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카이토 오빠, 오늘은 준비를 일찍 했네!”
활기차게 먼저 무대를 둘러보고 온 에무가 말했다.
“…준비?”
웃음을 지으며 남아있는 원더랜드 쇼타임을 맞이하던 카이토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그의 얼굴을 본 두 사람 또한 웃음이 사라졌다.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세카이는 애초에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무형의 무언가였다. 세카이에서 태어난 카이토는 그 세카이를 전부 둘러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카이토조차 알아채지 못한 일이라면 세카이가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카이토는 서둘러 무대를 향해 달렸다. 세카이가 잘못된다면 세카이에서 태어난 모두가 잘못된다. 어쩌면 지금 들어와있는 츠카사와 에무에게도 영향이 갈 수 있었다.
무대에는 조명이 켜져있었다. 마치 이제 곧 쇼가 시작이라도 할 것 처럼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뒷편에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불안한 눈을 한 인형들 사이로 박수를 치는 인형들이 간간히 섞여있었다. 못보던 인형들이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무대를 다시 보았다. 무대 뒷편에서 배우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나왔다.
…세카이에 있는 모두와 같은 얼굴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같은 행동을 했다. 같은 목소리를 냈다. 같은 말투를 가졌다. 이미 없어진 얼굴들도 보였다.
무대 아래의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쇼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쇼는 자신들이 한 것만큼 완벽했다. 아니, 그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도대체 누가?
체감상 짧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 짧았던 것인지 쇼는 금세 끝났고 배우들이 일제히 퇴장했다. 무대의 막이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올라갔다.
커튼콜이었다.
“안녕.”
커튼콜에 등장하는 이는 한 명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배우들은 가짜니까. 남는 이는 배우들을 만든 사람이었다.
“루이….”
“쇼는 어땠어?”
답은 없었다.
모두가 대답을 꺼렸다.
“별로였나? 아쉽네. 옛 동료들한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는데.”
무대에서 훌쩍 내려온 루이가 다가왔다. 카이토가 모두를 막고 앞에 섰다.
“루이.”
“카이토 씨.”
루이가 빙긋 웃었다.
“어땠어? 이제 세상은 AI가 전부야. 세카이에 있는 여러분도…이렇게 만들 수 있어.”
“츠카사, 에무.”
루이와 시선을 맞추면서 카이토가 말했다.
“세카이에서 나가. 얼른.”
루이가 카이토의 양 어깨를 꽉 붙잡았다. 카이토가 손을 한 번 휘젓자 츠카사와 에무의 모습이 점점 사라졌다.
“여러분은…카이토 씨는…나를 이해해 줄 거지?”
뒤에서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카이토는 신경쓰지 않았다.
세카이가 무너지고 있었다.
“왜….”
카이토는 제 어깨에 있던 루이의 두 손을 내렸다.
“루이, 츠카사와 에무는…, 우리는 그래도 사람이 하는 쇼만이 가지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
“왜?”
살짝 떨어졌던 루이가 점점 다가왔다.
“이렇게 완벽한데…어째서?”
“그건…세카이에서 나가면 설명해줄게.”
거짓말.
카이토는 무너지는 세카이에서 루이 또한 쫓아내려고 했다.
“거짓말 치지 마!”
세계의 틈 사이에서 루이가 카이토에게 손을 뻗었다. 카이토는 잡히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세카이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가 디딘 곳에는 세카이의 잔해만이 남아있었다.
“아,”
카이토의 가슴팍에서 세카이의 잔해가 튀어나왔다.
피는 나지 않았다.
그저 박힌 잔해와 함께 카이토가 부서질 뿐이었다.
“루이….”
루이는 흔들리는 눈으로 부서지는 그를 쳐다보았다. 이게 아닌데.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여기서 눈을 돌렸던 옛 동료들을 다시 한 번 설득시키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비록…이 세카이는 무너져내리지만….”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그런 기술로 끝을 보기에는….”
너의 세상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어.
그런 입모양을 본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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