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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로그

살아있는 자의 의무란 무엇일까. 이제껏 이런 철학적인 문제 같은 걸 생각하거나 고민할 이유 따위 없었는데. 고작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사과 주스나 퍼마시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게 나의 전부였다. 그렇게 느릿한 삶에만 익숙해졌던 것이 갑작스레 짧은 기간 내에, 많은 것을 잃으니 무너지는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자신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달라고 했다.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달라고 했다. 그건 단순한 부탁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었는데, 나에게는 꼭 족쇄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아이들에게 속죄해야 할 것만 같았다. 살아있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모순일까? 흔히들 배부른 소리라고 하는 말을 내가 하고 있는 걸까. 벌써 하루… 이틀이 지났나. 아직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만큼이나 무겁고 힘겹게 다가온다. 너희가 보고 싶어.

펜을 잡고 가볍게 휘갈기던 중에, 꼭 울컥한 것처럼 펜을 내려놓는다. 그다지 화난 것도 아닌데, 종이를 단번에 뜯어선 종이를 꾸깃꾸깃 접어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이곳에 온 이후로 귀찮다는 이유로 통 일기를 쓰려고 하질 않았는데, 설마 이런 좋지 않은 소식으로 첫 문두를 적게 될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두 친구의 이유 모를 죽음과, 그 진상을 밝혀내기 위한 조사… 금방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1차 조사 때와는 다르게 한층 무겁게만 다가왔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부담감은 컸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컸다.

이전의 조사에서는 그럴싸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다른 아이들까지 자신과 같은 처지였다면 부끄러울 것도 없었을 텐데, 정작 증거가 무더기로 나오니 아무것도 찾지 못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히려 거슬리는 상처만 달아와버렸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단정하게 붕대가 묶인 손목을 가볍게 흔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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