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이 그 정도로 무서우세요?
1학년 마법의 역사 과제
난 그냥, 소설 좀 썼어! 펠릭스가 회상한다.
합격했던 학교에서 배출한 영국 하원 의원의 수를 생각해 보라. 제아무리 허무맹랑하고 빈약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전문적인 이야기인 척 하며 보고서를 쓰는 일 따위는 펠릭스 리버포드에게 별것 아닌 일이다. 그러니 겨우 서면상으로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적당히 아이다운 천진함이나 솔직함을 가장해 의견을 보여주는 것 역시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펠릭스 리버포드가 만년필을 들며 생각했다.
그는 취미를 갖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 주제에 입학식이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최근에도 여가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머글 대학의 입시에 쑤셔 박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따라서 최근 그의 행보를 생각했을 때 그가 다른 모범생들처럼 신입생 참고서에 코를 박기는커녕 제대로 된 예언이나 해석 몇 줄을 찾는 것도 용한 수준이며, 과제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가 됐다. 그 탓에 제게는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주제를 양피지 위에 매끄럽게 옮겨 적으며 교수의 최소 기준을 채우기 위해 꺼내 든 것 역시, 마법사 사회에 들어와 얻은 지식이 아닌 철학책 몇 권을 일독하고 얻은 지식이었단다.
멸망하는 시간은 새벽의 아이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부담을 줄 만큼 두려운 것인가요? 다소 도발적인 서두로 양피지 위에 잉크로 글자를 그려내기 시작한 펠릭스는 ‘새벽’과 ‘새벽의 아이’가 가진 위상에 대해 짤막하게 떠올린다. 공작저에서 다섯 번이나 끌려나가는 통에 진이 다 빠진 얼굴로 마법과, 호그와트와, 새벽에 대해서 설명하던 교수도. 자신이 새벽의 아이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 기억을 지우고 입학을 거절하는 대신 반드시 입학해 달라는 그의 간곡한 부탁도… 자신이 ‘그냥 머글 태생 마법사’였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은, 이 고리타분한 차별 사회에서 머글 태생의 저를 걱정하는 블루벨의 걱정스러운 표정만 아니었다면 그도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일 지도 모른다.
평소의 활기를 띠는 얼굴 아닌 차분한 얼굴로 만년필 놀려 쓴 과제의 요지는 이랬다: 멸망하는 시간은 이런 일이다, 이런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는 해석이 있다, 그것을 막는 단서는 새벽의 아이들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두렵다는 이유로 소수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부담을 주는 것은 옳은가? 어른들이 함께 세상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 주면 안 되는 것인가? 이것이 공리주의 자체의 정신과 조금 다른 노선을 타고 있음은 명백한 일이나, 나는 이 상황에 저명한 공리주의 학자 피터 앨버트 데이비드 싱어가 이렇게 말한 것을 인용하고자 한다…
제 조모 따라하듯 몇 장에 걸쳐 우아하고 정제된 언어로 보고서의 형식을 빌린 비난을 적어내려가던 펠릭스는 문득 피로감을 느껴 창 밖을 바라본다. 룸메이트인 오스틴과 케니스가 아직 그리핀도르의 티타임에서 돌아오지 않은 탓에 남자 기숙사는 고요하기만 한 탓이다. 집에서는 지금쯤 할머니가 사람들을 물린 채 조용히 ABBA의 노래를 듣고 계실 거고, 휴게실에서는 에이레네가 차를 끓이고 있으려나. 어쩌면 하퍼가 쥐스틴에게 연주를 들려준다고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저멀리 울려퍼지는 부엉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을 휴식 시간 삼은 펠릭스가 이내 자세를 바로 하더니 과제를 마무리한다. 그렇지만 우리 중에서 누군가 ‘새벽의 아이’여야만 하는 거라면, 그게 차라리 저였으면 좋겠습니다. 윈저 왕조의 영광 아래 자란 저 펠릭스 리버포드에게는 여왕 폐하의 국민을 지킬 의무가 있고, 다행히 저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기대를 받는 일은 익숙하니까요.
이어 한참 문장을 바라보며 턱을 괴던 그가 소년다운 천진함으로 문장을 아주 끝마친다. 올리버나 오스하비 같은 친구들은 시선 받기를 싫어하는 것 같던데, 그 애들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부담스러워할 것 같거든요.
*
한참 후, 그리핀도르 기숙사에서 뛰어내려온 펠릭스가 교무실로 향하며 복도가 울려퍼질 만큼 큰 소리로 활기차게 말한다.
“나 먼저 간다, 리틀 롤리―――!”
* 공백 포함 196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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