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of Love

라이에 루 모젤에게

Felix by River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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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그렇게 초콜릿을 좋아하니? 수두룩한 발렌타인 초콜릿을 함께 정리해주며 라이에가 물었다.
편지의 답장을 위해 분주히 만년필을 놀리던 펠릭스는 퍽 즐거운 투로 답했다. 그건 사랑의 맛이니까.


최초의 마법은 초콜릿의 맛
마법사들은 오직 마법사만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고 자만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마법이자 거대한 기적 속에서 살아 왔다. 그리고 그가 느낀 첫 마법은, 초콜릿 한 조각이었다.

보수적이고 금욕적인 가문 기조에 따라 아너스차일드 공작저의 식사는 귀빈이 방문하지 않은 날이면 담백하다 못해 다소 밋밋한 편이었고, 조지 리버포드 각하 슬하의 두 형제에게도 그 명제는 통용되었다. 그러니까 펠릭스의 현재 요리에 길들여진 새벽들이 기겁할 소스가 거의 쳐지지 않은 그린 샐러드, 쓸데없이 품이 많이 드는 주제에 겨우 전채 요리로나 소비되는 콩소메 수프, 소박하되 정성을 다해 노릇하게 구운 감자와 아스파라거스 따위의 메뉴들로 자극을 원하는 어린 미뢰들을 엄격하게 진정시키기 바빴을 뿐 가족 내에서 사치는 거의 금기시되기 마련이었다는 의미다. 저녁 식사에 올라오는 음식들이야 언제나 하트퍼드셔를 빼곡히 대기업으로 채운 주역 이레네 리버포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공작저의 쉐프가 불 앞에서 땀흘려가며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들이었고, 달달한 것을 원하는 혀에는 그릭 요거트며 제철을 맞이한 딸기 같은 것들이 올라오곤 했으나 이미 만찬의 맛을 알아버린 어린 마음을 달랠 만큼은 아니었다.

그나마 이런 공작저의 식사가 완화되기 시작한 건, 현재의 에드먼드 실비오 리버포드 소공작과는 아홉 살 터울인 삼남이 언어를 배우고 사용인들과 제대로 된 교류를 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그가 특유의 공손하고도 애교스러운 태도로 평생을 딱딱한 귀족만을 상대해온 사용인들의 벽을 부수고 마음을 녹이기 시작한 후로, 형들과 나눠 먹고 싶으니 초콜릿을 달라고 말할 줄 아는 기특한 막내 덕에 장남 에드먼드와 차남 퍼디난드는 달콤한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작은 손에 몰래 초콜릿을 쥐여준 공작저의 사용인들은 기꺼운 표정으로 그의 형들이 몰래 나눠준 쿠키 반 개를 공범의 표식이라도 된 양 삼켰다. 그렇게 둑스의 뱀주인자리는 아직 반바지를 입은 채 ‘엘윈 도련님’으로 불리던 시절, 네 번째 생일도 지나지 않은 몸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온 공작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사용인 중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의 애정에 저항하던 집사장 앨버트 해먼드가 결국 귀빈을 위한 초콜릿 다섯 알을 몰래 꺼내어주며 엘윈 도련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기어이 항복했을 때, 두 손으로 그 초콜릿을 가득 쥔 엘윈의 머릿속에는 여러 명의 사람이 흘러지나갔다. 첫째 형의 방과 부모님의 집무실을 돌고, 둘째 형의 방문을 닫고 나서며 방으로 돌아가며 딱 한 알 남은 초콜릿을 보던 그는 문득 집무실에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을 제 조모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낼름 남은 고급 초콜릿을 입에 밀어넣는 대신 또 한 번 공작저를 달리고 달렸다. 손에서 이 기회가 형편없이 녹아버리지 않도록.

“조모님, 엘윈이에요.”

“그래, 들어와. 그러나 용건만 말하거라.”

“앨버트가 초콜릿을 주었는데요, 하나만 남아서요.”

엘윈은 형편없이 말꼬리를 흐리는 대신 그는 초콜릿 하나를 즉석해서 손에서 반으로 갈라 그나마 큰 부분을 제 조모에게 내밀며 해사하게 웃는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조모님께 못 드린 것 같아서요. 나눠드시지 않겠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걸 나눠먹는 건 멋진 일이래요. 아너스차일드와 리버포드로 들어오는 모든 선물은 자신과 자신의 권력을 향해 들어온다는 것을 모르는 듯 맑게 웃는 어린 낯과 반으로 갈라진 초콜릿을 한참이나 감정하듯 쳐다보던 그의 조모는, 프랄린 표면에 코팅된 초콜릿이 그 성격만큼이나 서늘한 체온에 적응하여 조금 녹아들 때가 되어서야 그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기 직전의 직전까지 엘윈의 작은 머리에는 온통 비상이 걸린 채였다. 귀족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혼내시려나, 혹은 사용인에게 이런 걸 요구해서 곤란하게 해선 안 된다고 하시려는 걸까. 그래도 초콜릿은 드셔주었으면 좋겠는데… 엘윈은 그 마음을 짓밟는 것이야말로 제가 좋아하는 조모께서 평생 고수해온 원칙을 저버리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저도 모르게 책상 아래 비치된 쓰레기통에 시선을 두었다가, 그의 음성에 시선을 바로 했다.

“감사를 표하마, 리틀 럭.”

그런데 이러면 너는 이 근사한 초콜릿을 반밖에 즐기지 못하는구나. 조모의 음성은 초면의 사람마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일순 동작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잡을 만큼 차갑고 명징했지만, 그걸 목전에서 듣는 엘윈의 푸른 눈에는 꼭 마법에 걸린 것 같은 다채로운 감정이 맴돌았다. 이레네 리버포드가 손수건을 꺼내어 그 위에 볼품없이 토막난 초콜릿을 올려둔 후, 정제된 손짓으로 우아하게 세공된 상자의 뚜껑을 열어 오로지 당신만 즐길 수 있게 안배된 초콜릿 한 알을 선선히 내밀었던 탓이다.

“그러니 너는 내가 챙겨 주마. 가져가거라.”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부터, 먼훗날 사랑하는 이들에게 펠릭스 이레네 리버포드로 기억될 이 소년은 평생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초콜릿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발렌타인은 온다
19세기부터 영국은 초콜릿을 선물함으로써 주변인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그리고 연인들이 주로 이 날을 향유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를 발렌타인 그 자체로 칭하기도 했다.

“넌 왜 그렇게 초콜릿을 좋아하니?”

벌써 얼마나 친구를 사귀고 다닌 건지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초콜릿을 좋아한다 노래하고 다닌 이에 대한 호의의 표시로, 차마 챙겨주지 못한 생일에 대한 미안함으로, 친해지자는 의미로 선물받은 초콜릿의 수가 제법 되었다. 타의에 의해 초콜릿 산의 소유자가 된 펠릭스 이레네 리버포드는 하루종일 그리핀도르 휴게실조차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붙잡힌 탓에, 결국 궁여지책으로 부장 하퍼 해밀턴의 동의 아래 연주동아리 부실 한 켠에다 그를 모아 두기로 했다. 그걸 분류하여 담아가기 위해 가방을 들고 당도했을 때는 당연하다는 듯 라이에가 따라붙었다. 이어 수두룩한 발렌타인 초콜릿을 함께 정리하다 말고, 보기만 해도 질릴 것 같은 초콜릿의 산을 앞에 둔 채 잠시 분류를 쉴 겸 감사 카드를 읽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펠릭스에 새삼 의아함을 느끼는 듯 라이에가 물었다. 넌 왜그렇게 초콜릿이 좋느냐고. 그 말에 답장을 위해 만년필 뚜껑을 열던 펠릭스가 웃었다.

“나 초콜릿 좋아하는 거 알잖아.”

“아무리 좋아해도 이 정도 양은 대개 질리기 마련이야.”

“난 아니야, 라이에.”

“어째서인지 물어봐도 될까?”

2개월 하고도 닷새 전, 펠릭스는 이미 한 차례 생일을 맞이했다. 바니카에게 받은 모자를 유니폼마냥 쓴 채 지금 같은 빈 부실에 앉아 받은 것들을 소중히 정리하는 모습을 라이에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쥐스틴의 뜨개인형과 하퍼의 토끼 인형, 캐서린의 깃털 장식, 이삭의 세잎클로버 키링 따위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모습을 저 너머에서 훔쳐보던 그는 세레니티가 문을 열고 다분히 거친 손길로 화관을 씌워준 다음 떠나는 것에 활짝 웃으며 감사함을 표하는 광경까지 본 다음에야 열한 살 소녀같은 얼굴로 아연하게 물었더랜다. 펠릭스, 오늘 생일이었니? 그건 처음으로 라이에 루 모젤의 얼굴을 봐준 친구의 생일조차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 사죄와 축하의 뜻을 양피지 세 장짜리 편지로 전한 지도 2개월 하고도 닷새 전이었다는 의미기도 했다.

펠릭스는 제 상냥한 친구에게 공작저의 사용인들이, 제 형제들이, 제 조모가 비마법사의 몸으로 보여준 마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생일 소식이며 초콜릿 따위에 아연해진 그의 얼굴까지는 참을 수 있었으나 알 수 없는 먼 풍경을 바라보는 얼굴로 변하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음을 알았던 탓이다. 그래서 그는, 그저 편지의 답장을 위해 만년필을 놀리다 말고 퍽 즐거운 기색으로 답하기를 택했다.

“그건 사랑의 맛이니까.”

그저 이 단언이 제법 낭만적으로 들리기를 빌며.



사랑의 맛
우리의 관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거대한 저택과 밤하늘, 초콜릿과 와인, 그리고 약간의 눈물과 키스로 이루어져 있지.

현실로 돌아와,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꺼내어 보자면 펠릭스는 아주 오래 전 당신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를 기억한다. 또한 샹들리에 아래 아닌 척 뭇 귀족들의 시선을 잡아끌던 황금의 소녀라는 형상으로, 모젤의 황금이 계승될 수단으로, 누군가의 장식장에 아름답게 장식될 인간 트로피로 그 때의 당신을 기억했다. 가엾은 운명을 타고나 조명 아래 욕망 그득한 눈동자를 집중시키며 자신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는 듯 구는 소녀의 손등에 형식적으로 입맞추고 형들의 곁으로 떠난 후, 제게는 필요없을 황금과 그의 황홀한 이명을 달달한 샴페인과 함께 삼키며 소년은 무심하게 생각했었다. 저 애는 참 잘 다려졌네, 나와 달리. 그 생각을 한지 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생각을 했던 시절을 죽도록 후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그는 이제 처음으로 모젤의 레이디 아닌 라이에 루 모젤을 마주했던 밤을 떠올린다. 막연히 대단한 이를 보면 고명하고 우아하신 제 조모와 겹쳐 보던 어린 마음에 저 애는 저렇게 태어났을 것이라며 지나쳤던 어린 소녀를. 막연한 자신감과 계획 아래 엄격한 억압과 통제로 자라 성상처럼 깎아지기 위해 땅바닥에 떨어트렸을 피와 살이 있었음을 자각했던 그 때, 내려앉은 것만 같던 심장의 무게는 여전한 충격으로 남아 막연히 당신을 시선 끝에 두게 된 계기가 됐다. 신입생 시절 이미 그 손을 잡으며 막연히 네 행복을 바라게 되었음을, 얼마 가지 않아 ‘나’의 행복을 이루는 축이 천천히 ‘당신’에게 옮겨졌음을 당신은 알까.

“누구나 잘못 한두 번은 할 수 있고, 넌 내게 얼마건 실수해도 되는 사람인 거 알고 있잖아. 애초에 겨우 누군가의 실수로 내 빛이 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날 좋아하잖아, 너.”

눈물을 닦아주며 열한 살, 호그와트에서 걸었던 마법을 떠올린다. 그는 가을에 막 접어든 교정에서 한여름밤의 꿈을 이야기했고 입학식 직후에 수업도 듣지 못해 여전히 비마법사에 가까운 몸으로 감히 당신에게 호그와트 안에서만이라는 조건을 걸며 그 선이 둘 사이의 대단한 마법이라도 되는 양 읊었다. 제 용기가 쓰레기통에 처박힐 수도 있는 반쪽짜리 초콜릿 취급을 당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두려움 없는 사람처럼 그 눈을 바라보았고 단 한 번도 거절당한 적 없는 사람처럼 미소지었다. 손을 거두고 짓궂은 농담이었노라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손을 내민 건 누군가 자신이 내민 손을 잡아준 경험이 있었던 탓이었으리라.

아, 이렇게 널 울릴 줄 알았으면 지금보다 조금쯤 더 고결하고 순수했던 과거의 나는 네게 손을 내밀었을까. 그러나 이미 과거는 아주 오래 전에 지나갔고 너는 몇 번이고 주어진 기회를 마다하고 결국 내 곁으로 돌아왔다. 심장을 뜯어내는 감각으로 너를 보내주려 했던 이전의 행적이 무색하게도 나는 이미 너를 내 손에 쥐었고 이제 네가 울어도 나는 너를 보내줄 수 없는데, 이제 우리는 어떡하지. 그가 속으로 조소한다.

“그러니까 도망치지 마, 라이에. 나도 네가 필요하니까. 네가 내 행복을 바란다면, 내 진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면, 제발 떠나지 마. 나도 도저히 널 거부할 수 없으니까, 널… 놓을 수 없으니까.”

당신이 제 옆자리에 서기 위해 운명을 걸고 숙명을 선택했노라 믿을 때 나도 네 옆자리를 택하는 것을 사명 삼겠노라며, 공자로 살아갈 각오로 네 손등에 입 맞추던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오로지 정체된 감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역동하던 자신이 스스로의 자리를 지정했음에도 전혀 불유쾌하지 않았음을 느낀 이야기는 차후로 미뤄두어도 될 것이다. 내 무대의 장막을 걷는 권리를 네 손 위에 얹어버린 것 역시, 지금의 제게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

“그러니까 내가 나더러 이기적이라고 했잖아,”

대신에 그는 고해한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네게 건넨 모든 내 언어는 우정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채 네 곁을 맴돌기 위한 속임수였고, 내 모든 감정은 다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네가 도망치지 않게 하기 위한 연막이었을 뿐이라고. 나는 그저 네 약혼식에서 네가 다른 이와 입 맞추는 모습을 보며 참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한심한 치이고, 한 톨의 진심 없이 그러나 진실되게 타인과 평생의 언약을 맹세하는 목소리를 듣기 싫었던 사람이며, 그저 오래토록 너를 사랑해왔을 뿐이라고.

“네가 괴로워도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라이에.”

소중하게 여기고자 거리를 두던 시간도, 열일곱 살 기원제에서 망설였던 입맞춤도 이제 우리 사이에 더이상 무용하리라는 것을 안다. 상대의 두 손 모아 손끝에 간원하듯 입맞추던 그의 얼굴이 다가선다. 오로지 저 하나 행복해지고자 저열한 욕망으로 감히 맞춘 입에서는, 빌어먹게도 여전히 사랑의 맛이 났다.

너는 나로 인해 행운을 믿게 되었지, 나는 네 눈 안의 새벽별을 찾아버렸어. 방랑하던 길 끝의 이정표를, 영원불멸에 가까울 종착지를, 여정 도중에도 올려다볼 빛을 찾았어.

그러니까 이제 넌 내 거야. 네가 이미 내게 줬으니까.

저희 이런 관계입니다 여러분…! 원래는 성사한지 조금 되었는데요, 여러 현실적 사정이 겹쳐 그냥 간단하게나마 로그로 선언하려 조금 미뤄 두었습니다. (시험만 문제일 줄 알았는데 정부 차원에서 이럴 줄은 저희도 몰랐습니다) 시위에 나가서 쓴 글들이라 다소 중구난방하여 언젠가 퇴고를 거칠 것 같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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