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ble
여기 판 하나만 키워봐.
매일 똑같은 얼굴, 똑같은 자리, 똑같은 공간. 수더분하고, 털털한 사람도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성질을 끝까지 다 볼 수 있다는 공간. 돈을 잃음으로 수익을 얻는 이 시스템. 가히 미학에 가깝지 않은가? 쏟아지는 돈더미들 사이를 활보하며 이 모든 것들을 긁어모으는 상상을 하면... 음. 작게 입맛을 다셨다.
유건욱은 당최 돈을 한 번 벌어들이면 멈출 줄을 몰라서, 하루마다 새로운 차림새를 하고 나타나고는 했다. 주특기는 딱 두 개 있었는데, 심리가 들어간 싸움이라면 기가 막힐 정도로 긁어모으고, 운에 맡기는 것들이라면 기가 막히게 다 잃어버렸다. 이따위 것을 주특기라고 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렇다고 또 운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보통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무튼, 뭐가 어쨌든 유건욱은 거기 그렇게 죽치고 앉아서 온종일 플라스틱 쪼가리를 걸고 게임을 했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누구 하나를 빤쓰 바람으로 내쫓은 후 제법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옷가지만 겨우 붙잡고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종종 무거운 몸뚱이를 흔들면서 무거운 쇠 지렛대 하나 들고 저를 쫓아오는 무서운 조폭들을 피해 한동안 어디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며칠 동안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을 적도 있었다.
뭐가 되었건, 아무튼 유건욱은 그래, 한량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도박꾼, 놀이꾼, 뭐 그런 직업 아닌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겠거니 하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 번의 실수로 카지노를 좀 일찍 경험했다가 되돌릴 수 없어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 억만금 돈을 쉬이 만질 수 있는 경험이 어디 있을까? 그 돈들을 플라스틱 칩 쪼가리에 빗대어 마구 사용하는 기회는 또 어디 있을까?
***
어떤 도박장이 아직도 호구조사를 하지?
이름
유건욱
나이
서른 다섯, 89년생... 한 겨울이었나, 여름이었나? 대충 그 즈음 언젠가 태어났겠지.
890116-1000000
어, ... 쯧, 뭘 또 그걸 보고 있냐.
신장과 몸무게
189cm ... ... ... , ...
몸무게는 그리 중요하진 않지.
지금 더 중요한 게 눈 앞에 있잖아? 칩부터 준비해, 새끼야.
***
재차 강조하지만, 아무리 상냥하던 사람이어도 그 판에 한 번 끼어들면 성질을 끝까지 다 볼 수 있는 곳이 도박장인데, 굳이 본래 자신의 모습이라는 게 중요할까? 유건욱도 그 안의 사람일 뿐인데. 과한 액션을 취하며 테이블을 내려치고, 소매 안으로 칩을 숨기고, 놀라는 시늉을 하며 옆에 있는 놈에게 칩을 뿌린다. 곧, 그건 사기행위가 되어 누구 하나가 또 억울하게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겠지. 그때부터 유건욱의 진가가 나오고... 곧, 사랑스러운 검은색과 갈색의 플라스틱들을 그 품에 안고 휘적휘적 카지노를 돌아다니겠지. 혹은 또 검은 정장들에게 쫓기거나, 코인 슬롯에 한탕 머니를 걸었다가 대차게 말아먹고 욕이나 내지르며 다음 도박을 향해 움직이던가.
그래도 정말 딱 한 번, 도박장에 드나드는 걸 멈춘 적이 있었는데, (검은 정장 아저씨들이 총들고 쫓아오는 일을 제외하고) 죽돌이처럼 슬롯 앞에서 앉아 하루 벌은 토큰을 다 털어 넣는 행동이나, 머리싸움으로 그 토큰을 또 다시 벌어오는 행동 같은 것들은 소문이 자자해서, 다들 '그 새끼가 드디어 죽었구나' 했었다. 매일같이 들려오던 '오늘은 몇 천을 벌었댄다' 같은 말이 몇 주를 넘어서 한 달 가까이 들리지 않으면 제법 그럴 법 하지. 가히 마약에 가깝다고 칭하는, 그 도박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맛을 알아챈 사람이 진정 도박을 끊는 방법은 돈을 다 파산하고 죽는 것 밖에 없다. 모두 장담했고, 모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을 때에 또 유건욱은 다시 돌아왔다. 얼굴에 대문짝만한 흉터를 새겨서는 실실 쪼개며.
어쩌다 그런 걸 얻었어?
잘~ 굴러다녔지.
별일이 다 있네. 오늘은 얼마나 털어가려고?
탕진하기 전까지는 못 나가는 거 알면서 또. 자리 잡아, 오늘은 훌라부터 가자고. 또 블랙잭으로 시작부터 탕진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 카테고리
-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