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충돌계획
테스타 좀비 아포칼립스 AU
※ 테스타가 대상을 받기 이전의 어느 시점입니다.
─── 끼익, 끽.
요즘 테스타는 온종일 바닥을 끄는 신발의 소리만 듣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했다. 곧 연말이었으니까. 아이돌의 필수 연례 행사라고 불릴만큼, 가요축제 같은 연말 무대는 온갖 팬들이 집합하는 장소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다른 아이돌과 직접적으로 비교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는 것. 무대 바깥에서 특히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쟁이 이어지는 시즌.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테스타는 시상식 별로 특별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만 동시에, 뭐든지 과한 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그룹에 있었다. 곡이 끝나자 류청우는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았다.
“얘들아, 그만. 우리 조금만 쉬고 딱 세 번만 더 맞춰 보자.”
““네.””
다수의 긍정을 끝으로 누구는 엎어졌고 누구는 물을 마셨다. 박문대는 굳이 꼽자면 엎어진 편에 속했다. 연습 중 다른 곳에 보관했던 핸드폰을 찾아 연습실 벽에 기대어 주륵 주저 앉았다. 능숙하게 화면을 켜고 위튜브에 들어가는 일련의 행위는 분명 모니터링을 위함이었을 테다. 박문대는 바로 검색창에 들어가려고 했다. 옆에서 물을 건네는 선아현이 아니었다면.
“무, 문대야. 이거.”
“아, 고맙다.”
짧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검색창을 바로 들어가지 않은 탓에 한 영상이 미리보기로 재생되고 있었다. 평소였으면 그냥 돌릴 시선이었으나 잠깐의 변덕으로 영상을 시청했다.
제목은 ‘ㅅ울ㅎ역 좀ㅁㅂㅣ.’ 어그로를 위해 일부러 오타를 낸 듯 싶었다. 잠시 감상한 결과, 박문대는 연출이 꽤나 리얼하다는 평을 내렸다. 서울역 1번 출구 부근에서 좀비가 우르르 뛰쳐 나와서, 서로를 물어뜯고, 금방 아수라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메라 방향에도 좀비가 한 마리 달려들었다. 액정이 새빨간 피로 물들었는지 시야가 한정적으로 변했다.
곧 바닥으로 떨어지는 카메라.
그리고 암전.
보통 연출을 이렇게까지 하던가? 고통에 젖은 소리가 꼭 현실 같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새로운 영화의 홍보성 매체겠지. 뻔했다. 이런 데 시간 쓸 여유가 있으면 차라리 털복숭이를 보는 게 나았다. 괜히 봤다고 후회하며 보려던 영상이나 찾으려던 때였다. 쉬는 시간이 벌써 끝났는지 류청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다 쉬었어?”
“네, 이제 연습해요!”
차유진 쟤는 얼마 쉬지도 않아놓고 지치지도 않나. 박문대는 속으로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모니터링을 하지 못 한 건 아쉬웠지만 마찬가지로 더 쉴 생각은 없었다. 연말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으니. 스스로도 만족하지 않는 무대를 보여줄 수야 없지 않나.
“우리 러뷰어한테 멋진 무대 보여줘야죠~ 힘내서 맞춰 봅시다!”
그 와중에도 지치지 않게 팀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놈도 있었고. 뭐… 이제는 제법 익숙한 광경이다. 파이팅을 끝으로 소란은 잦아들었고 자리를 잡았다.
노래를 틀기 바로 전, 그 순간.
───!!
문자 수신음이 들렸다. 그것도 재난문자.
관계자들을 빠르게 훑었다. 박문대는 이런 류에 빠삭한 이세진과 순간 시선을 교환했다. ‘짠 건 아닌 것 같지?’ ‘ㅇㅇ’ 실험 카메라는 아니고. 오히려 저건… 진짜로 당황한 사람의 눈빛이다. 상황을 재고 있음에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면… 시끄러울 정도의 소음이었다.
처음 재난문자를 시작으로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 어느새 달라진 내부의 공기.
긴급재난문자
[서울시재난대책본부]
오늘 14시 서울역 중심 폭동 사태로 인한 피해 속출. 외출 및 야외 활동 금지.
[서울시청] 서울 내부의 도로를 대부분 통제하오니 우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청] 폭동 진압 중이므로 일반 시민 분들께서는 조속히 귀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
.
...
잠시 확인이라도 해볼 것을 요청한 후 모두의 말문이 막혔다. 폭동? 그런 기색도 없이 무슨….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정보를 얻으려는 손길이 점차 다급해졌다. 폭동, 통제, 귀가… 서울역. 서울역? 문을 열려던 누군가의 손길이 막혔다.
“열지 마!”
문을 열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서려던 누군가 당황한 표정으로 멈췄다. 형님? 박문대는 자신이 꽤나 침착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맞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 특별한 상황이라는 것. 특정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아까 봤던 영상이 여러 차례 보였다. 그것도 다양한 각도로.
‘아, X발.’
이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나?
이런 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거 아니었냐고.
인생에 장르가 있다면 상태창이 있는 현대 판타지물에 더 어울리지 않냐?
이를 악물었다. 즉시 상태창을 띄웠으나 시스템 창에 오류가 났다. 스크래치가 여러 번 일었다. 아니, 이걸 오류라고 할 수 있나? 박문대는 이 현상을 알고 있다. 분명 비슷한 걸 겪어 봤었다.
[돌발!]
상태이상 : ‘관객이 아니면 죽음을’ 발생!
상태이상 : ‘관객이 아니면 죽음을’ 발생!
‘전염이 아니면 죽음을’ 발생!
‘살■이 아니면 죽음을’ 발생!
‘자■이 아니면 죽음을’ 발생!
‘감염이 아니면 죽음을’ 발생!
‘상해가 아니면 죽음을’ 발생!
그리고 일순 잠잠해졌다.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허공을 바라보던 박문대는 입술을 세게 짓씹었다. 상태창까지 이 X랄이 난 걸 보니 거짓은 아니라는 건데. 재난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았는데. X발…. 막막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발랄한 음이 들렸다.
띠링!
[‘백신이 아니면 죽음을’]
: 정해진 기간 내로 백신을 개발하지 못할 시, 박문대의 사망
남은 기간: D-50
‘백신이 아니면… 죽음을?’
이게 뭔 개소리야. 다짜고짜 낯선 몸에 빙의를 시키더니 요구하는 건 아이돌이었다. 그래서 회귀 전 알던 모든 걸 탈탈 털어 데뷔했다. 그 과정이 빈말으로라도 순탄했다고 말한다면 X신이지. 그런데 뭐… 백신? 혹시 몰라 스탯창을 켜봤지만 여전히 보컬, 외모, 춤 따위밖에 없었다. 아이돌 때려치우고 연구원이라도 되라는 건가. X발 아는 게 없는데.
…박문대가 굳어버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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