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일

[시즌2] 그 후의 일상 3

본부장님들의 각기 바쁜 하루, 그리고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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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미식가 모임, 타칭으론 '프락치 모임(약간의 농담과 애정을 담아)', 정식명칭으로 하자면 '사내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비공식적 창구' 라는 긴 명칭을 가진 점심모임에서 타미는 꽤나 레귤러 참석자에 속했다. 최소 1인 이상의 팀장 혹은 임원이 참여하고 최대인원이 6인 이하일 경우, 점심비용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이 모임은 렙유의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스타트업 나름의 복지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딱히 놓쳐야할 이유도 없고, 또 송가경을 제외하면 하필 내가 젤 리더 아니야? 좋은 일에 동참해야지! 허울도 실속도 좋은데 입도 즐거운 모임에서 타미는 자연스레 장을 자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은 이런식의 모임, 내가 먹고 싶은걸 남에게 은근하게 강요하든 혹은 그 반대가 되어야 성사될 타입의 모임은 대쪽같이 거절하는 편이고, 가경은.....산통 다 깰 것도 아니고 대표가 이런데 있어봐야 그 취지의 달성이 소원하니까. 

- 저도 바로에 있는 동기한테 듣긴 했는데, 잘 안되나봐요

- 오- 해외대 동기?

- 네네. 검은 머리 외국인이요. 걘 한국어는 아예 못하는데 굳이 한국계 회살 들어가더라구요. 뿌리는 못 속이나. 

새우까기에 열중하느라 대화에는 건성이던 타미는 자기의 맞은편, 제니에게서 타미는 뭐 들은 내용 없으세요? 하는 질문에 대답을 생각해내느라, 잔뜩 힘을 주느라고 뻐근한 오른손의 나이프를 슬쩍 내려놓았다. 이거 왜이렇게 뻑뻑해 덜익은거 아니야..? 

- 이번에 사업 접는단 얘긴 못 듣긴 했는데. 제가 바로에 재직할 때도, 해외 사업 쪽은 가시적인 성과가 좀 안나오긴 했어요.

- 꽤 다양하게 시도하는거 같긴하던데. 동남아도 건들이고 북미는 꾸준하고. 

- 그러게요. 자본은 충분하니까 시장을 좀 넓혀보려는 취지인거 같은데, 글쎄. 제3자가 보기에는 뭐랄까....헤드에서도 성과를 크게 기대하는 눈치가 아닌것 같달까, 좀 소극적이랄까. 아무래도 계열사로 분사한 것도 영향이 있겠구요. 

대충 껍질이 좀 붙은채로 입에 넣은 새우의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톡 터지며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입안으로 퍼져나갔다. 그 와중에 입 안에서 걸리적대는 남은 조각들은 대충 같이 나온 펜네 면과 함께 넘기면서. 흠 발란스가 괜찮네. 송가경 추천맛집일만 해. 

어쩌다보니 바로의 해외사업 방향성이 안건으로 올라온 오늘의 점심자리는 타미의 미각을 끌어올리는데 하등의 불편을 끼칠 것이 없었다. 뭐 이를테면, 릴리즈 일정 푸시 때문에 스트레스로 탈모가 올 것 같다는 푸념이나, 그로쓰 조직에서 자꾸 말도 안되는 기능 만들어달라고 조르는거 이건 회사 차원의 리소스 낭비 아니냔 분노라든가. 뭐 그런 주제로 불타오를 땐 차마 10여만원을 호가하는 우대갈비도 목구멍에서 위장으로 넘어가기를 힘겨워 하는터라, 이런 날엔 맘을 좀 풀어내고 즐기는 것이 편협한 양심에도 거릴낄 것이 없었다.

- 스칼렛도 바로 출신 아니세요? 스칼렛이라면 그렇게 어영부영 돌아가는 사업 그냥 보고있지 않을 것 같은데. 막 어? 이걸 지금 일이라고 합니까? 놀러 왔습니까? 이럴거면 당신 남는 시간에 동아리 활동으로 하세욧! 돈 받고 하는 일에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감이 모자란거 아닙니까?! 이러면서. 그쳐? 

- 헐 제이콥 스칼렛 성대모사 좀 된다

- 제-에가 또! 마케팅 출신 아닙니까. 스칼렛 밑에서 인턴 내내 디지게 깨지고 구르고-

- 구르긴 뭘 굴러요. 스칼렛이 엄청 챙겨줬지.

명실상부 스칼렛의 오른팔, 제니의 참견에 제이콥은 히죽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좀 그런 편이긴 하죠? 빠른 수긍 뒤엔, 프로덕트 팀의 팀장 데니스에게로 화살을 돌려, 데니스 스칼렛이 절 얼마나 챙겨줬는지 아십니까. 능글대는 제이콥의 태세전환은 웃길 망정 밉진 않았다. 일부러 저러는걸 뻔히 알만큼 그가 얼마나 자기 일에 진심인지 잘 알아서도 그렇고, 앞에서는 저렇게 너스레를 떨어대도 뒤에선 남 이야기를 하지 않는 그의 성정 때문에도 그렇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란 말이지 제이콥은. 

- 스칼렛이야 뭐, 바로에서 제일 중요한 사업인 소셜본부의 진두지휘를 책임지는 본부장이었잖아요. 워낙에 자기일도 산더미라 바빠가지고 변방의 해외사업..? 돈 안되는 일 접지 그러느냐 한마디 했을진 몰라도, 적극적으로 개입은 안했을거 같은데. 

- 타미는요? 타미는 해외사업 관심 없으세요?

- 관심이 있으니까 여기있죠. 다만 나는 되게 하는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고, 되야만 하는 일을 해내는거에 쾌감을 느끼는 타입이라. 

- 오 그 말 되게 멋지다. 써먹어도 됩니까 탐본부장님! 

- 안됩니다 제이콥~ 그리고, 스칼렛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말 몰라요? 없는 자리에서 자꾸 얘기 꺼내면 스칼렛이 잡으러 온다. 

- 엌 저는 하룻강아지라 스칼렛 무서운줄을 모르죠~ 

웃기고 있네 엄청 무서워하면서. 킬킬 웃으며 영수증을 요청하려 손을 들고 시선을 올렸던 타미는, 식당 통창에 비친 길쭉한 인영 방향으로 들었던 손가락을 가르켰다. 어- 진짜 왔는데..?

- 엥...? 소환술인줄. 타미 흑마술사 아니에요? 어? 써머도 같이 계신데요? 부를까요? 

- 둘이 같이 있는걸 왜 불러요. 눈치 좀 챙기세요 제이콥. 점심시간 다 끝나가는데 어디가지? 


- 보호대 하고 있으면 되는거 아니야?

- 보호대는 당연히 하구 있어야되구 선배. 염증 생겼을 땐 빨리 치료 안하면 석회화돼요. 이미 됐을지도 모르구요. 이런건 하루라도 빨리, 뻐근하다 싶을 때 갔어야 했는데......정말. 

- ....석회화? 됐으면 어떻게 되는데?

듣고 싶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질문을 하는 눈빛이 흔들렸다. 온몸으로 가기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안가면 안되겠느냐 혹은 이대로도 별로 불편치 않으니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다는 등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가경스럽다고, 현은 생각했다. 자기가 하겠다는 일엔 손쉽게 안돼. 를 말하는 가경이지만, 역설적으로 해달라는 부탁에는 영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의 불편과 어려움 같은 것들은 꾹 눌러 참는데에 익숙해 차마 싫다는 소릴 못해봤던 것도 한몫을 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담배도, 술도, 심지어는 저놈의 턱없이 부족한 식욕에도 현은 강요하는 말을 되도록이면 참아왔으나 이거는 또 얘기가 달랐다. 

-

그동안 어지간하면 가경과 둘이서 점심을 먹던 현이, 쥴스와의 일 이후로 어느정도 패턴의 변화를 준 것은 꽤나 최근의 일이었다. 이를테면 종종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라운지에 앉아 함께 먹는 식으로. 

뭐 대단히 큰 변화냐 하면 그렇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도시락을 먹는 다른 임직원들과 섞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가끔은 점심 배달 모임에 가경과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도 하는게 현으로선 꽤나 큰 노력이 아닐 수 없었다. 가경과의 단란한 시간을 그만큼 포기해야 된다는게, 자기로선 얼마나 큰 희생인지를 도시락을 싸면서 구구절절 토로한 점만 보더라도. 

그리고 그 노력의 이유도, 방식도 이해하기 때문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가경도 솔직히 아쉽긴 매한가지였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어떤 말도 얹지 않았다. 

다만, 그런 날이면 조금 이르게 식사를 마치고 (주로 이 목적으로 회사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는 다른 임직원들과는 달리) 자기 사무실로 찾아와 소파에 자리잡고 앉거나 눕는 현의 옆을 지킬 뿐. 보통은 둘이 저녁 일정에 대해 잡담을 하거나, 각자 소일거릴 하면서 몸을 붙이고 앉아있거나 하는 평화로운 시간. 그 시간은 꽤나 달콤해, 바뀐 패턴에 대한 아쉬움을 상쇄시켰다. 

- 선배 율무차? 아님.....유자? 

- 어...글쎄. 밥 먹었으니까 입가심을 하기에는 커피가 좋지 않을까

자연스럽길 바라는 대답에 말없이 커피캡슐 수를 세는 현을 보며 어색하게 웃던 가경은, 오늘은 이게 마지막이에요. 다짐을 주면서 따듯한 컵을 내미는 현에게 고갤 끄덕이며 잔을 받았다. 아니, 받으려고 했는데. 

- ....!! 

당황스러워 현의 시선을 찾던 가경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저의 팔을 붙들고 결을 따라 가볍게 쓰다듬었다가 꾹 누르는 몸짓에 움찔- 몸을 떨며 동공이 흔들렸다. 현이 자길 아프게 한 것도 믿을 수 없거니와, 그 기색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과의 말도 없이 본능적으로 빼려고한 팔을 꽉 붙들어 막은 것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심지어는 몇 번씩 누르는 족족, 뜨-끔하고 묵직한 통증이 찌르르 팔목부터 팔꿈치를 타고 올라 입술을 깨물고 신음하는데도 놓아주지 않는데엔 아픔도 아픔이지만, 놀랍고 서러워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 왜그래에...아파. 현아 잠깐만, 아!

- 아프죠?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 어? 그냥...일할 때 좀 뻐근한 정도...아악! 

손등과 팔목이 이어지는, 손목뼈가 튀어나온 안쪽을 꾹 누르자 억누르던 비명이 튀어나온 가경은 저도 모르게 현에게 붙들린 팔목을 강하게 빼 가슴앞에 모아잡고 눈을 그렁였다. 왜..왜그러는데. 미간이 좁아들어 눈썹이 쳐진 현. 입술을 말아물고 꾹꾹 누르며 살짝 모로 꺾인 고개. 그 모든 기색과 바디랭귀지가 가경을 더욱 당황시켰다. 왜 현이 화가났지. 뭐가 문제지. 

- 선배 손목 아픈거 왜 말 안하셨어요? 

- 아픈거....? 아픈거 아니라, 그냥. 사무일을 좀 오래하면 다 이렇게 뻐근하고..

- 아니요. 원래 그런게 어딨어요. 이거 건초염이에요. 

- 어? 아. 예전에도 종종 그러기도 했구. 좀 쉬면 나아지구우...

- 만성이니까. 

옷입어요 병원가게. 옷걸이에서 코트를 들고와 거꾸로 들고 기다리고 서있는 현의 재촉에 못이겨, 종종걸음으로 조심스레 팔을 꿰면서 굳은 표정을 살폈다. 몰랐어. 소심하게 뱉은 목소리가 힘없이 떨려나와 흠. 목을 가다듬고 시선을 피한 채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많이 쓰면 그냥 그런건줄 알았지이 나는... 왜 화를 내. 딱히 뭐라 더 타박하는 말도 없는데, 괜히 혼자 서운해져서 좀 더 궁시렁거리는 혼잣말이 말그대로 궁색 그 자체였으나, 어깨를 감싸안은 현의 표정을 푸는데는 꽤 큰 공헌을 했으니 모로 가도 서울로 가는 목적은 달성한듯 했다. 

- 아이 걱정되서 그랬죠, 선배 아플까봐.... 저 화낸거 아니에요!

- 아프다고 했는데. 막 꾹꾹 누르고.

- 어느정돈지 알아보려구- 선배 왼팔 줘봐요. 왼팔은 눌러도 안아플걸요? 이봐- 

- 아!! 

- ....죄송합니다. 

머쓱하게 뒷목을 만지작대며, 그치만 그 정도로 아프진 않잖아요. 그쵸? 물어보는 투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쳤다. 아프거든? 황당하단 가경의 대꾸에 눈썹을 긁적이면서, 아무래도 두 쪽 다 진찰을 받아봐야겠다. 모르쇠인 현은 더 무슨 말을 듣기 전에 냅다 가경의 팔짱을 꼈다. 

일단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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