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WM
생일 턱이라고 신경 깨나 쓴 모양이지. 가경이 빠지는 경우 둘이라면 종종 어울려 다니던 노포나 고깃집, 혹은 상차림이 알차게 구성된 한식 내지는 횟집 같은 곳이 아닌 양식당, 그것도 파인 레스토랑에서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하고 온 길이 노곤노곤 했다. 직접 주고 싶었는데, 부피가 커서 집으로 배송시켰다던 생일선물이 말마따라 문 앞에서 제법 존재감
라운지를 지나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넓은 사무실 중 왼편. 넓직하고 듬성듬성, 빈책상을 두고 여유롭게 원하는 자리를 골라 앉던 프로덕트실은, 이젠 사람이 자꾸자꾸 늘어 꽤나 빽빽했다. 구성원들이 개인적인 선호나 친분, 기타 등등의 이유에 따라 방랑자 마냥 자리를 옮겨다니던 때는 젊은 애들은 원래 저러는가 싶었는데 이젠 찾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
술자리가 생각보다 길어졌고, 집에서 마시다보니 차라리 자고 가라는걸 거절하기도 뭣해서 그렇게 되었단 설명을 현은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 허점이 가득한 변명일텐데 으레 돌아왔어야 마땅할 의문들은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사소한것부터 시작해, 이 관계 전체가 뒤흔들릴 만큼 거대한 것도 있었으니
전화가 오지 않았다. 진동음에 부리나케 화면을 켰다가 [22일에 제가 한국으로 가는데 그때 괜찮으시면-]으로 시작하는 공항에 마중을 나오라는, 하필이면 이 빌어먹게 시기적절한 스팸 문자를 마주했을 땐 손에 들린 글라스잔을 벽때기에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현이답지 않았다. 적어도 벌써 몇시에 올건지, 정말 데릴러가지 않아도 좋을지, 내일
귀국일을 확정하지 않은 해외출장. 합병사의 실사가 포함된 일정이니 당연히 프로덕트 헤드인 타미가 동행해야지 않겠느냔 현의 제안은 서운했고, 겸사겸사 같이 가서 둘이 얘기 좀 해보라며 현의 등을 떠미는 타미에겐 얼떨결에 자존심을 세웠다. 그런 의미가 아닌줄을 알면서도, 내가 알아서 해. 쏴붙이는 듯한 대꾸에 타미는 눈썹을 올려보였다. ‘선배가 뭘 알아서
어느시점 쯤에 개입을 해야할까, 혹은 아주 하지를 말아야 하는걸까. 평소에 비해 조용한 라운지 한구석, 슬슬 여름으로 접으들기 시작하는 계절상 매번 블라인드가 내려가 있던 통창 근처엘 자리잡은 타미는 꾸물꾸물 어두워지는 창밖의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는 쉽사리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최대한 공식화를 미루자는 타미와, 임직원
이 동네뿐 아니라 건넛동네, 그 건넛동네까지. 여느 체육관에 견주어보아도 규모에선 밀리지 않을 만큼 넓은 축에 속하는 ‘대우주짓수’ 한켠. 좀 사이코 결벽증 기질이 있는 편이라, 운동시간 사이사이 오픈짐마다 찍찍이며 소독제가 든 분무기와 밀대를 밀고 다니는 김관장 매의 눈도 피해간 좁은 구석탱이. 평소라면 존재하는지 인지도 못했을 그 공간과 공간 사이,
입을 다문채로 꼬고 있는 다리를 가볍게 흔들면서 현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타미를, 가경은 옆눈으로 살피며 업무수첩에 무의미한 줄을 몇 개 더 그었다. 생각보다? 예상외로? 아니.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고 해도 그다지 잘 어울리진 않을터였다. 일하는 현의 ‘스칼렛’ 본업 모먼트 같은 것을 자기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입사 초
쨘!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 세월이 막상 코앞으로 훅 다가오자 향수에 젖은 옛기억이 밀려들었다. 현의 손에 들려 흔들흔들 앙증맞게 출렁이는 모양새는 지나치게 낯익더라도, 분명 그게 자기 것일린 없을텐데. 들고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고개만 돌렸던 몸을 아예 현쪽으로 마주한 가경은 손을 뻗어 매끈한 옷의 질감을
평소와 다름없이 느즈막히 퇴근해, 현의 정성이 가득 담긴 저녁을 함께 먹고, 각각 설거지며 식탁을 치우고 씻고 나와 각자 할 일을 하는 일상적 풍경은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그 안에서 잘게잘게 느껴지는, 신발 속 모래알 같은 어색함의 균열 같은 것이 가경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게 저 혼자만 느끼는 어색함일까, 아님 실존하는 문제가 까슬하게
아무리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지만. 안그래도 침묵에는 좀 약한 편인 브라이언은 멀뚱멀뚱 자길 보면서 물음표를 띄워보이는 옛 동료들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두 분은 어디까지 알고 있느냔 질문에 대고, 저희 서류에 싸인만 안했지 NDA(비밀유지계약) 체결한거 아니었던가요. 싱긋 웃으며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송대표가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제정신인가. 쾅쾅- 망치로 뼈를 내리치는듯한 둔탁하고 무거운 통증이 아픈 손목을 타고 올라 목 뒤를 후려치고, 이를 악무느라 온통 굳어진 머리뼈 안을 미친듯이 휘저었다. 저기 잠시...! 도무지 견딜수가 없는 고통이라, 정말 견디고 견디다 못해, 외마디 비명같은 하지만 데시벨은 고작 기계음에 덮힐만큼 조그맣게 한마딜 내질러본 가경은 살짝 기계를 떼어주는
자칭 미식가 모임, 타칭으론 '프락치 모임(약간의 농담과 애정을 담아)', 정식명칭으로 하자면 '사내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비공식적 창구' 라는 긴 명칭을 가진 점심모임에서 타미는 꽤나 레귤러 참석자에 속했다. 최소 1인 이상의 팀장 혹은 임원이 참여하고 최대인원이 6인 이하일 경우, 점심비용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이 모임은 렙유의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타미는 습관적으로, 아니 습관이라기엔 얼마되지 않았지만 넓직한 책상 오른편 꽤나 한가득 자릴 잡고 앉은 퐁실퐁실 하얀 무민 인형의 귀때기를 손 끝으로 조물댔다. 보들부들 몰랑몰랑. 원래대로였음 조직장 보고 후, CEO 면담 및 HR 협의의 프로세스를 탔어야 할 팀장급 퇴사가 두 사람의 공백으로 인해 조직장 보고는 타미가, 현을 건너뛰고 가경과 퇴사면담
- 네 이해합니다. 앞으로 적당히 기울여 경청하고 있음을 어필하던 상체를 세운 가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식적으로 입꼬릴 올려보였다.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맘을 담고 싶었으나 잘 전달이 됐을지는 솔직히 확신 할 수 없었다. 자의로 계획을 세워서 -뒷공작을 꾸미려는 계획이 아닌- 것도 순수하게 놀기 위한 계획을 세워서, 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