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일

그후일 외전 - 만우절!

남일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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쨘!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 세월이 막상 코앞으로 훅 다가오자 향수에 젖은 옛기억이 밀려들었다. 현의 손에 들려 흔들흔들 앙증맞게 출렁이는 모양새는 지나치게 낯익더라도, 분명 그게 자기 것일린 없을텐데. 들고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고개만 돌렸던 몸을 아예 현쪽으로 마주한 가경은 손을 뻗어 매끈한 옷의 질감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 어디서 났어? 명찰까지? 내꺼는 졸업하고 버렸던거 같은데

- 엥. 선배 기억안나요? 선배 졸업할 때 명찰 저 주셨잖아요. 어어- 서운한데?

그러고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졸업식 당일도,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다음날도, 석식 먹고 일곱시부터 같이 공부하기로 되어 있는 마당에 어디서 한바탕 울고왔는지 붕어눈이 돼가지고 꽃다발을 안기던 현에게 온통 맘이 쓰여던터라, 그런 사소한건 기억에 별로 남질 않았던 모양이었다. 뭐 평생 간직하겠다는둥, 감사했다는둥, 마치 다신 안볼 사람처럼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훌쩍이는 현 때문에 어찌나 불안하고 마음이 스산했던지. 명찰이 아니라 교복을 내놓으라 했어도 당장 벗어줬을테니, 그쯤을 그 손에 넘겼던 것을 잊은 것도 무리는 아니였던 것 같았다.

- 별게 다 서운해. 그걸 여태 가지고 있었어?

- 아이- 진짜 서운해!! 당연히 가지고 있었죠 선배. 저 이거 대학 때 혼자 자취할때도 가지구 갔어요. 차현 보물상자 붙박이 아이템이란말이에요

볼을 부풀리고 투덜대는듯 했지만, 눈가에 건수 하나 잡은듯한 반짝임이 어디로 갈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어서 어색하게 고개를 비딱히 저어보였다.

- 이거는..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대도 있잖아? 오늘이랑 아무 상관도 없어. 차라리 할로윈이라면 모를까.

- 선배. 뭘 모르시네. 오늘 교복이나 군복 입고 가잖아요? 영화관에서 청소년 요금 받아요.

-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청소년 요금을 내야할 이유가 있느냐구..

- 아 빨리요. 저 이거 구하느라 진짜 힘들었어요. 우리 교복 디자인 바뀐거 아시죠 선배? 이때 교복은 요샌 팔지도 않아요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아아!! 빨리이! 얼른!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어거지가, 진짜 이러시면 자기만 교복 입고 모자쓰고 선배 팔짱끼고 딱 붙어 다닐거다. 막 길바닥에서 우리 이래두 되는거냐고 로미오와 줄리엣 놀이할거다. 정말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로 발전한 나머지, 코웃음을 친 가경이 아무리 현이 너라도 교복 입는다고 학생같아 보이기엔 좀 무리지 않느냔 코멘트로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발끈해가지고 그럼 내기하자고, 자기가 교복입고 오늘 편의점 돌면서 민증 검사 하나 안하나 테스트해보겠다는데, 그 꼴을 두고 보는것도 고역일 뿐더러 저걸 입고 도대체 어딜 헤가리고 다니겠다는 건지도 의문인 가경이 져줄밖에.

그럼 대신 영화관 가잔 소린 하지 말아라. 출퇴근은 하겠지만, 이러고 밖을 나가는건 못하겠다, 혹시 회사에 손님오거나 외부 나갈 일 있음 갈아입고 갈거다, 아주 평이한 수준의 조건을 붙이는 가경에게 현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당연하죠. 와 이게되네ㅎㅎ..

-

이 나이에 교복이라니. 그래도 동복인게 다행인가. 빳빳하고 거친 싸구려 옷감의 셔츠도, 겨우 골반까지 닿을랑 말랑 애매한 길이의 조끼와, 묘하게 각이져 핏이 어색한 교복마이까지. 가경은 막상 입어보니 생각보다 익숙하고 기억보다 더 불편한 옷을 만지작댔다. 안정감있게 목선을 감싸는 넥타이 만큼은, 아무래도 어색한 저와는 달리 아마도 진짜 자기가 입던 교복을 가져다 입은듯 반질하게 길이들어 윤이나는 소매를 하고 운전중인 현이 매어준 것이었다. 매랄땐 안매고 그렇게 여기저기 붙들려 혼이 나고 있더니만, 막상 자기는 가물가물해 자신이 없는걸 솜씨 좋게 길이를 맞춰 매어주었다. 어디서 누구한테 그렇게 매주고 다녔길래 여전히 자유분방하게 풀어헤친 셔츠단추는 잠굴 생각도 없으면서, 남한테 매주는게 그렇게나 익숙할까.

그런 불만일랑은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처럼 한 방에 끽- 소리를 내며 주차를 마치고 안전벨트를 풀어주는 현은 자기 말마따라 어두운 주차장 조명에서 보고있자니 좀, 좀 그랬다. 왜요? 뒷자리에 내려둔 쟌스포츠 백팩을 팔만 뒤로 보내 가져온다고 가슴이 거의 어깨에 닿을듯 스치며 물은 현이 자리로 돌아가며 베시시 웃음을 지었다. 어둠에 반쯤 가려져 생글대는 표정은 기시감이 과했다. 여기가 도서관인지 차 안인지.

- 반했어요?ㅎㅎ

- 어.

까르르 자기 허벅지를 토닥이며 웃는 현은, 그때엔 상상도 못했을 일인텐데도 마치 우리가 이렇게 교복을 입고 연애를 했었던 것 마냥 왜곡과 날조를 거듭하는 머릿속이 망상을 기억같이 재구성했다. 야무지게 백팩을 매더니만 먼저 차문을 열고 나가려던 현의 가방끈을 당긴 가경은, 어어? 도로 시트에 풀썩 주저앉은이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슬그머니 입술을 댔다. 왠지 그때라면 그랬을거 같아서. 말랑하게 입술을 붙인채, 20여년 전의 도서관 어두운 통로 안쪽을 상상했다. 어깨에 올라왔던 손이 빳빳한 셔츠깃을 쓰다듬으며 목을 받쳤다.


- 아잌!!! 스칼렛- 진짜 미쳐-ㅆ! .. .. .. 잘어울리십니다.

- 어 여기 외부인- 아.. 오.. 네. 멋지세요 두 분. 학생 같으세요. 와.

- 만우절이라고 다들 거짓말이 술술나오네. 저기요 두분. 우리 작년에 만우절 행사 한 번 하고 이제 안하기로 한거 아니였어?

교복 차림의 스칼렛을 먼저 발견하고 놀릴 생각에 와글와글 장난치러 왔다가, 옆에 같은 차림의 가경을 보고 백스텝을 밟은 주니어들은 타미의 한소리에 빙그레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재밌었지 그때. 맞아 맛있었지.

- 그땐 타미 땜에 나만 조마조마하고! 나도 재밌는거 할거야.

- 아 할거면 좀 한다고 말이라도 해주든가. 겸사겸사 회사 SNS에 홍보사진이나 올리게.

- 말도 꺼내지마

와락 흥미를 보이는 현에게 절대 안된다 눈을 치켜떠본 가경은, 오 좋다 자유로운 분위기, 수평적인 조직문화- 한술 더 뜨면서 웅성웅성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라운지에서 퇴각을 맘먹었다. 오늘치의 사회성이 오전 10시도 안된 마당에 다 털려버렸으니, 달리 일정이 잡히지 않는다면 대표실에서 끽소리도 내지 말고 있자. 어차피 만우절이라고 자기네끼리 또 이상한 이벤튼지 뭔지를 하겠다 설쳐대는 임직원들의 흥분된 분위기라며는, 굳이 꼰대 대표가 껴들어 찬물 끼얹길 바랄 사람도 없을테니.

-

밖으로 나가는건 안하겠다 미리 약속을 해둔 덕분에, 빼꼼 문을 열고 들어온 현이 사다준 도시락으로 느긋한 점심을 보내는중인 가경은 몇장씩 간간히 슬랙과 카톡으로 업데이트 되는 현의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애들 노는데 낑긴 교감선생님]

설명과 올라와있는 인생네컷 사진에, 언제 또 갈아입고 왔는지 서로 다른 교복을 갖춰입은 햇병아리 주니어들 사이에 독보적 존재감을 뽐내는 현이 있었다. 아까는 진짜 학생 때로 돌아간마냥 기분이 좀 이상하더니만, 이렇게 보니 그냥 실실대는 웃음만 나왔다. 교감선생님. 그래 그쯤 되긴 하겠다. 편의점이든 어디든, 이 차림의 현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는게 성년임을 확인할 의도는 아닐거 같다는 강한 확신.

뭐 남들 시선도 딱히 다르지는 않은지, 맥주잔을 서빙중인 서버가 현의 앞에 잔을 내리는 사진속엔 한껏 웃고 있는 직원들과 그를 노려보는 현이 담겨있었다. 아니 근데 누가 근무중에 술을 마시지. 그걸 또 회사 슬랙에 올리는 용맹함은 뭐고. 아무래도 그로쓰 본부장의 흔치않은 동행으로 한껏 들뜬 사원들이 호기를 부리는 것 같아 약간 걱정스러웠다. 술도 잘 못마시는 애들이 어쩌려구.

- [현아. 적당히 풀어주구. 사고 안나게 조심하고]

- [타미한테 인계하고, 저는 들어가고 있어요~]

아 뭐 타미라면 알아서 하겠지. 무의식중에 스친 생각에 급 미안해진 가경은 현이 선물해준 이모티콘 리스트에 하트를 찾아 보내며 테이블을 정리했다. 현이 오기 전에 담배나 한대 피우고 올 요량으로 급해진 손놀림으로 착착.


- 어허. 어디 학생이 지금 담배를 피고- 어? 빨리 안끕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가경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까워지는 중인 현을 발견하고 가볍게 손을 저어보였다. 왔니. 오기 전에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가까운데서 연락을 한 모양인지 자켓의 단추를 풀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채, 씁- 안되겠네 이거. 으름장을 놓는 목소리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

- 안되겠어?

- 누가 이거! 교복을 입고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지? 학생, 몇학년이야

- 너보다 두살 많아

- ..네

겸연쩍게 웃더니만 그때도 선배 담배피고 있을 때 만났다 그죠? 난간에 등을 기댄 현이 발끝을 까닥였다. 근데 그러고서는 선배 학교에서 담배 피는거 못본거 같기도 하고. 중얼거리는 혼잣말 덕분에 킥 터진 가경은 응 못봤을걸. 대꾸하며 과거를 반추했다. 누가 운동부 출신 아니랄까봐, 길가다 담배 연기만 맡아도 인상 찌푸리면서 아 길빵 진짜! 대놓고 꼽을 주는 현에게 밉보일까 싶어 초조하게 닌자마냥 숨어다니던 고3시절을. 선생님도 기사님도 부모님도 알바가 아닌데, 자기가 공부시키는 두살 아래 후배한테 담배 피우는걸 들킬까봐 매번 현인 지금 어디있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다닌걸 넌 모르겠지.

- 너한테 안 들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도대체 수업 안듣고 얼마나 밖을 싸돌아다니는지. 어딨는지 종잡을 수가 있어야지 현아.

- 그러게요. 끊었으면 됐을텐데.

씩 웃으며 고개를 드는 얼굴이 진심이라 스르륵 시선을 피하며 짧아진 담배를 눌러껐다. 좀만 빨리 나올걸. 어깨로 난간을 밀며 몸을 일으킨 현이 다가와 허리를 감으며 출구쪽으로 인도하는걸 잠자코 터벅터벅 발길을 옮겼다. 예나 지금이나 안피우는게 아니라 안들키는 쪽이었구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혼잣말치곤 큰 목소리에 대고 말대꾸는 하지 않았다. 해봤자 긁어 부스럼인데다, 여태까지의 경험상 이렇게 슬슬 잔소리에 시동 걸려는 분위기엔 입을 닥치는게 상책이다. 엘레베이터가 우웅- 소릴 내며 하강하는 동안 내부 거울로 이쪽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현의 시선을 눈치챘음에도 그냥 문짝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말하자면 비슷한 이유였다. 눈을 마주치면 이제부터 잔소리를 듣게 돼..!

나 손 좀 씻고. 화장실을 손짓하며 슬그머니 반댓방향으로 걸음을 옮긴것도, 올리브영 들렸다가 가겠단 내향인의 핑계 같은건데 불행히도 우리 슈퍼극대문자E 외향인은 눈치가 없는건지 놔줄 생각이 없는건지 싱긋 웃은채 졸졸 쫓아와서 옆에서 나란히 손을 씻고 있었다.

불안한데.

거울로 마주친 눈이 반달을 그리며 휘어졌다. 그러고보니 교복 조끼는 또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자유분방한 와이셔츠는 치마 밖으로 꺼내진채 레이어드한 마냥 자켓 아래로 비죽였다. 팔을 걷은 자켓 밖으로 접힌 셔츠 소매 위로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걸 흘끔대다가 수도꼭지를 잠궜다.

- 어..들어가볼게?

- 어딜 자꾸 도망가요

- 뭐..?

교복 입고 옥상에서 담배피다 걸려놓고. 빤히 지 옆에도 있는 핸드타월을 굳이 이쪽에 있는걸 뺀다고 훅 좁혀진 거리, 나즈막히 속닥대는 목소리에 뒷목이 삐죽섰다.

- 아니 이거는 니가- 입힌..!

- 가경학생. 그러게 들키지 말았어야지.

어깨가 닿을 거리에서 또 한 번 싱긋- 고른 이를 보이며 웃는 현의 눈빛이 맑았다. 맑고. 광채가 돌고. 약간 좀 불길하게 반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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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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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귀여운 개구리

    오,, 익명댓글 닉넴 귀여움

  • WWM 창작자

    머야 댓글언제 생겨써어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 안녕허세요 작년인가 재작년엔 만우절썰 틔타에 썼는뎈ㅋㅋㅋ 올핸 외전으로 써봅니다 ~_~ 4월 1일에 땡 올릴라다가 걍 지금 올림 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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