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구룡성채

delicacy by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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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성채 공각 드랍 

 

하늘같던 붉은 세상이 발 밑에 있다. 전부같던 그 도시는 겨우 지옥이라, 짓밟아버릴 것처럼 쓸어내는 바람에도 그저 꿋꿋하다. 눈 멀도록 올려다봤던 하늘은 이제 손 뻗으면 닿을 그 곳에 있고 결코 가까이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순백은 눈앞을 스치는데,

 

나는 결국 또 그 날 그 곳,

 

나를 닮은 너의 앞이다.

 

저공비행

 

"이봐요, 정신 좀 차려 봐요." 

 

말을 못 알아듣나. 도박판에서 귀 잘려나온 사람 아냐? 보청기는 좀 더 나가는데. 아, 배관 소리에 얼굴 찡그리는거 보니까 그건 아닌가본데. 발로 툭툭 건드리다 이내 쭈그려 앉았다. 객사할 거면 다른 층에서 곱게 뒤지지 왜 하필 6층이야. 아 하나님 아버지 씨발 이건 저 감당 못할 것 같은데요. 속삭이듯 읊조린 공룡이 제 앞의 얼굴 뒤덮은 검은 머리카락 쓱 걷어냈다. 여기서 살펴봐야할 기준 세 가지. 첫째, 삼합회 사람인가? 얼굴 흉터 하나도 없이 고운 거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둘째, 성채 사람인가? 이목구비 낯선 거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이쯤에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도 되는데 하필 걸리는 얼굴이 있어서 공룡이 한숨 푹 내쉬었다. 셋째, 도움이 필요한가?

 

존나.

 

"어이, 알아들으면 끄덕여봐. 홍콩 사람이야?" 

 

알 수 없는 신음만 낼 뿐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이 와중에 또 외지인이야? 하... 또 좆같이 꼬이네 이거. 업무신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 특히 외지인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무조건 돕기, 라서 그냥 지나갈 수도 없고. 밖에서 태어났으면 감사하고 얌전하게나 살 것이지 왜 이런데까지 처 기어들어오고 지랄이세요 진짜. 살짝 몸 뒤로 뺀 공룡이 제 앞에 자빠져 있는 사람 한 번 쓱 훑었다. 특별히 맞았다거나 다친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좀... 힘들어 보이는데. 많이. 그래도... 한 번쯤은 그냥 좀 지나가도 되지 않을까.

 

"그쪽도 운 좆나게 없나보네. 사세요, 여기서 뒤지면 개죽음도 못 되니까."

 

공룡이 무거운 발 떼었다. 곧 죽을 수도 있는데, 그건 뭐 내 탓 아니라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걸 수도 있는데, 대답도 없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이 땅에 발 붙일 곳 하나 없는 정말 너같은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탁. 

 

멈춰선 공룡 발목 힘없는 손이 붙잡았다.

 

도와줘,

 

분명 그렇게 말했다.

 

이젠 그저 지나칠 수도 없었다.

 


 

6樓87, 病院. 6자가 달랑달랑해서 짖궃은 애새끼들이 69방이네, 하며 낄낄거리며 지나가게 생긴 간판 단 문. 바로 앞에가 국수 공장이라 밀가루 연기인지 그 속 주방장이 피우는 담배 연기인지 아무튼 그 뿌연 시야 흩어내야만 겨우 보이는, 빛 다 바랜 福자. (병원에 왜 福자 붙여뒀는지 의문 품기에는 거기가 원래 그런 곳이라.) 정말이지 죽기 직전이라도 절대 들어가기 싫게 생긴 그 병원에는 정공룡이 있다. 

 

공룡은 정공룡이란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병원 그 자체였다. 그만큼 의술이 좋았느냐 하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저 6층 87호 병원으로 존재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그저 존재하지 않는 허상 비슷한 거였고 그렇게 알아두는 편이 공룡에게도 타인에게도 편했기에 그저 그렇게 존재했다. 

 

대부분의 불행한 사람은 슬프게도 머리가 좋아서 공룡은 허상같은 제 존재를 전부 알았다. 8할은 제 기억으로, 2할은 그의 서술로. 어린애답지 않게 감정 없는 표정 한 어린애가 5층과 6층 계단참 난간에 기대 있는 걸 바로 그 6층 87호 의사가 낚아챘고 바닥에 짓물릴뻔 한 그 어린 머리 잡고 괜찮냐 묻는데도 아무 답이 없어 보니 그 나이 되도록 말하는 법을 못 배웠더라. 얼마 지나지 않아 경남 사투리 잔뜩 묻은 한국어 그리고 욕 섞인 중국어 할 줄 알게 되었을 때 공룡은 물었다. 뭘 해야 먹고 살 수 있어요? 

 

九龍寨城. 그렇다면 이 곳은 성인가? 城이 性이었다면 조금 더 말이 되었을지도, 365일 꼬박 마르지도 않는 성욕에 눈 번들거리는 새끼들이 그보다 더 큰 물욕에 눈이 멀어 지어내버린 성이니 어쩌면 성도 맞다. 성같지도 않은 성에서 정공룡은 姓을 얻었으니, 寨라는 글자를 읽지 못해 九龍城 이 되어버린 그 성벽 속에 사는 어린애에게 그 곳은 정말 성이었고 또 세상이라 조금 행복한 것도 같았다. 寨를 읽을 수 있을 때쯤 학교가 사라졌다. 

 

성같지도 않은 성에서 그는 유일한 성자였다. 뭐라고 불러요? 물으니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랬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는 이름이 없었다. 無名. 뭘로도 불려본 적 없는 사람이 지은 어린애의 이름은 직관적이었다. 보자, 공룡 옷을 입고 있으니 공룡이로 하자. 나는 네가 정이 많은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이 지옥에서도. 그는 정도 여지도 미련도 또 그래서 웃음도 많았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어린애 정공룡은 그 거울을 보고 그대로 컸다.

 

그는 의사였다. 6층 87호의 의사. 그 높은 성에 존재하는, 유일하지는 않았지만 유일하게 사람다운 의사. 전문의 자격증도 하다못해 공립 병원에서 일해본 경력조차 없는 그는 온갖 것들을 고쳐냈다. 사소한 찰과상부터 너덜너덜한 팔다리까지. 그는 손재주가 좋았다. 후텁지근한 방 안에서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용접 기계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룡은 자랐다. 5층 카지노에서 돈 좀 썼다 하는 양아치들은 다 덜그덕거리는 팔 다리 차고 다녔다. 어린 눈에 그게 멋있어서 아저씨한테 저런 건 어떻게 찰 수 있냐고 물었다가 나사 쥔 손으로 꿀밤 맞았다. 너는 저런 삶 절대 안 살게 할 거다 이 자식아. 머리 좀 크고 나서 알았다. 그들은 그깟 돈가방 아니 그 너머의 물욕과 팔다리를 맞바꿨다는 걸. 아저씨는 그런 새끼들마저 인간이랍시고 팔다리 다시 달아주었다는 걸. 어린 공룡은 아저씨 대신해서 조금의 회의감 느꼈다.

 

그런 아저씨가 피투성이로 돌아온 게 칠 년 전 여름밤이다. 아저씨, 이게 무슨- 잔뜩 놀란 눈으로 달려가니까 아저씨가 처음으로 소리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 공룡은 말을 잘 들었다. 달라는 것만 앞에 좀 놔 달라고 헐떡거리며 말하는 아저씨 잔뜩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또렷한 눈에 온전한 오른손으로 아저씨는 제 팔에 박힌 뼈조각 다 잘라내고 울컥거리는 핏줄 꿰맸다. 삼 년 같던 세 시간동안 공룡은 딱 한 마디 했다. 아저씨, 떨 하나 안 할래요. 아저씨는 손 멈추고 공룡 빤히 바라봤다. 공룡아, 니 술 마셔 봤나. 아편 필요하냐고 묻는 열여섯살 애한테 할 질문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87호는 공룡이 되었다. 고작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이었으나 공룡은 똑똑했다. 그럼에도 겨우 어린애였어서 한참 신경 곤두세우고 있으면 여전히 따뜻한 아저씨가 단단한 손으로 어깨 툭툭 두드렸다. 가로로 터질 듯한 건물의 복도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산한 낮이면 잔뜩 지친 몸 이끌고 옥상으로 터덜터덜 올라갔다. 푸하, 잔뜩 억눌린 숨 내뱉으면 허여멀건한 하늘의 햇빛일지라도 여전히 빛인 그것이 공룡을 감쌌다. 아이들 뛰노는 소리 거칠지만 따뜻한 어른들의 외침 어렴풋이 들리는 14층의 국수 기계 소리. 이 모든 것들을 공룡은 온몸으로 빨아들였다. 운 좋으면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 공중 묘기를 부리듯 옥상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지나가는 커다란 몸체에 공룡은 어쩌면 손 뻗으면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맘만 먹으면 저 높은 곳보다도 높은 곳까지 너무도 손쉽게 올라갈 수 있는 비행기가 그깟 바닥의 성에 부딪치지 않으려 저공비행을 하는 꼬라지는 제 것과 같이 우스웠다.

 

첫째, 삼합회 사람인가? 둘째, 성채 사람인가? 셋째, 도움이 필요한가? 어느 날 부쩍 수척해진 얼굴 하고는 아저씨가 준 삼계명이다. 첫째, 삼합회 사람이면 너는 87호가 절대로 아니어야 하니 어떻게든 도망가라. 둘째, 성채 사람이라면 네 최선을 다해 친절해라. 셋째, 도움이 필요하면 첫째 둘째 그 어떤 다른 조건도 따지지 말고 도와주어라. 당부의 이름 한 족쇄는 공룡을 붙잡았다. 그 사슬에 달린 무게추는 머지않아 지하로 가라앉았다. 아저씨는 그 다음 주 비행기 날던 밤에 숨을 거두었다.

 

공룡은 그 밤 다짐했다.

 

그 누구도 아저씨처럼 죽게 하지 않겠다.

 

나는 아저씨처럼 죽지 않겠다.

 


 

"이제 슬슬 눈 뜨지? 그쪽 지금 안 죽어."

 

서서히 시야가 선명해졌다. 습하고 축축한 방에 덜걱덜걱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어디선가 두드려 맞은 듯 움직일 수 없는 몸뚱이와...

 

한국어?

 

"아, 물론 거의 요단강 건널 뻔 하긴 했는데, 내가 또 매정하게 가려는 저승사자 바짓가랑이 붙잡고 그쪽 끌고 왔지. 어어, 그렇다고 지금 완전 살아 있는 상태도 아니니까 그렇게 극단적으로 몸 일으키지 말고. 그냥 누워 있어, 나도 그쪽 죽여서 얻는 거 없어요."

 

혼잣말인지 흥얼거림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이상하게 안도가 되었다. 그럼 여긴 성채 안인가, 이 사람은... 붕대 감아놓은 꼬라지 보면 전문적인 의사는 아닌 것 같은데. 책에 눈 고정한 채 국순지 뭔지 우물거리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게 꽤 괴짜같아 보이긴 했다. 

 

"그쪽 몸 다 망가진 거 제대로 나으려면 한 일주일은 걸리거든? 근데 일주일 기다리면 그쪽 여기서 못 나가. 성채 사람들이 그쪽 얼굴 기억하기 전에 나가는 게 좋을 거예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사흘. 그게 제일 적당해요."

 

"나갈 생각 없는데요."

 

엉, 만화 한 장면처럼 국수 가닥 뱉어낸 그 남자가 귀 파내는 모션 취했다. 뭐라고요? 내가 귀가 맛이 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되묻는 남자에게 쐐기 박았다.

 

"나갈 생각 없다고요. 여기 내가 알고 들어온 거니까."

 

남자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이봐요 그쪽, 뭐 한국인지 중국인지 아무튼 어디서 얼마나 좆같이 사고를 치고 넘어온 건지는 모르겠는데 성채는 들어오고 싶다고 들어오는 데가 아니야. 여기에 뭐 얼마나 대단한 환상이 있는지는 내가 알 거 없고,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던지 아니면 여기서 그냥 개죽음 당하던지."

 

"개죽음 당하는 건 여기나 한국이나 똑같아.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야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살거든. 그리고 숨 붙어서 들어오게 해 준 건 그쪽입니다. 내가 지금 내 상황에서 목숨 살려준 거 고마워할 염치까지 탑재할 그릇이 안 되네요."

 

와 이거 진짜 미친 또라이 아니야. 지금 내가 책임 있다는 거예요? 귀찮아 뒤지겠는데 사람 하나 살려뒀더니 별 지랄을, 아 뒷골이야. 어이없는 표정으로 벌떡 일어서서는 와다다 쏘아붙였다. 

 

"아무튼, 나는 그쪽 여기서 사는 거 책임 못 져요. 뭐 카지노를 가서 팔다리 하나씩 팔든 저 밑에 국수 공장 들어가서 일을 하든 알아서 하라고. 살려줬으면 됐지 여기서 내가 뭘 더 어떻게 해. 일주일만 지나 봐, 아주 피도 눈물도 없이 내보내 버릴 거니까."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젓가락 내팽겨치는 남자 물끄러미 보다 말했다. 

 

"공돌이 하나 필요 없어요?"

 

"에?"

 

"보니까 병원만 하는 거 아니고 이것저것 하는 것 같은데, 이거 용접을 이딴 식으로 하면... 아니 대체 그동안 어떻게 먹고 산 거야?"

 

"뭐, 뭐요?"

 

열 펄펄 끓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말은 아주 청산유수. 살아남으려면 사람이 못 할 게 없다는 걸 새삼 느낀 각별이다. 이렇게까지 매달린 이유는 정말 이 사람한테만 붙어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 세상 어이없어 보이는 저 고동색 눈동자 안에 옅게 그러나 깔린 인류애. 단연 이 성같지도 않은 성에서 붙들고 있을 만한 건 아니었기에 각별은 건조한 간절함으로 매달렸다.

 

"나 한국에서 기술 배웠어. 나 꽤 쓸모 있을 겁니다, 그쪽 계속 병원 할 거면. 죽은 듯이 안에서만 살 테니까."

 

제발, 이란 말은 삼켰다. 미친 듯 흔들리는 동공은 그런 말 없이도 충분히 연약해 보여서. 하... 깊은 한숨 내쉰 남자가 두 손에 얼굴 묻었다. 대체 여기서 어떻게 왜 살겠다는 건데. 웅얼거리는 말투가 손가락 사이 비집고 새어나왔다. 으으으아아아. 고민하는 듯한 신음 내쉬다 벌떡 일어났다. 

 

"마음대로 못 나간다고 나는 경고했어요. 나중에 제발 곱게 내보내달라고 빌어도 못 나가. 아니? 죽어서 시체가 돼도 여기서 묻힐 거라고. 난 그거 책임 못 집니다."

 

고민하다 물음표 붙였다.

 

"... 이름이 뭐예요?"

 

대답은 없었다. 댐처럼 터져나온 안도감이 각별을 덮쳤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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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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